월간 조선에서 한국 의료 시스템의 역사를 잘 정리한 기사를 올렸다. 난 이 기사를 조선일보에서 썼다는 게 매우 놀라웠다. 왜냐하면 올해 4월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며 의사 악마화에 앞장선 언론사 중 하나가 조선일보이기 때문이다. 의정 갈등의 원인은 배부른 의새 놈들 잘못이며 정부는 대의를 위해 칼을 빼 든 거라며? 그런데 9월이 되니 이제 와서 중립적으로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언론사인 척한다.
그땐 맞고 지금은 다르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젠 정부의 광고비(내 세금...)가 거덜 났기 때문일까. 오랜 세월 이과적인 태도로 세상을 살아온 나는 정치인이나 언론사의 '문과적' 행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조선일보가 싫고 여전히 의새 놈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더라도,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기사는 현재 내려간 상태다. 이를 놓고 또 온갖 추측이 오갔다.
- VIP의 입맛에 반하는 내용이라 언론통제 당했다는 설
- 월간 조선 10월호 출간 예정인데 미리 올라와서 내렸다는 설
#2
내용을 보면 난 정부와 의사 둘 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배 세대가 문제 해결을 못 하고 후배 세대에게 떠넘겨온 결과라는 거다.
처음 건강보험이 만들어진 목적은 비유하자면 지금의 의료급여 기초생활 수급권자와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의료급여 기초생활 수급권자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진료받는다. (그들은 병원에 올 때 아예 지갑을 안 들고 온다) 어려운 이들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인 만큼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일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의사도 좋은 뜻으로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계속 의사를 야금야금 착취해 왔고 선배 의사들은 문제를 마주하지 않고 자꾸 임시방편으로 해결해 왔다.
모든 환자에게 저수가 진료를 강제하는 정부에게 선배 의사의 대책은
나중에 수가를 올려주겠지 → 지금도 안 됨
리베이트(?)로 손해를 메꿔야지 → 의약분업으로 약사가 가져감. 아예 의사 리베이트를 범죄라고 규정
비급여로 손해를 메꿔야지 → 비급여 진료를 마치 범죄처럼 홍보, 더불어 실손보험도 악마화(?)
이제 보험 급여 진료과는 도저히 희망이 없다. 미용하자 → 미용 의사 악마화
그렇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며 외면하고, 자꾸 임시방편인 샛길로 살길을 모색해 온 결과가 현재 이 모양 요 꼴이라는 거다.
이젠 리베이트도, 비급여도, 미용도, 직업 이미지도 모두 박살 났고 필수 의료를 전공하는 건 하이 리스크 로(LAW) 리턴 뿐이다. 그걸 후배 의사에게 사명감으로 하라고 강요하는 게 현 상황이다. 안 하면 이기주의라고, 범죄자라고, 사회전복 세력이라고 윽박지르면서 말이다.
후배 의사들은 더는 선배 의사를 믿지 않게 되었으며, 이는 후학양성도 끊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추석 연휴는 무사히 넘겼다고 치더라도 한국 의료 시스템은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의사도 같이 망했으니 단지 그걸 원했던 분이 있다면 적어도 소원은 성취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