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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Sep 22. 2024

블랙리스트 전공의 구속 사건을 보며

#1

다른 집단도 비슷하겠지만, 의사도 여러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공의도 있고, 교수도 있고, 페이닥터도 있고, 개업의도 있고, 병원장도 있고, 사업가도 있고, 공무원도 있다. 어지간한 중소기업급의 부를 가진 이도 있고, 그냥저냥 사는 이도 있고, 큰 빚을 지고 죽지 못해 사는 이도 있다. 정치 성향은 또 어떤가. 못 말리는 태극기 부대도 있고, 온건한 보수도 있고, 중도도 있고 (그런 게 정말 있다면), 적당한 진보도 있고, 사실 북한 간첩이 아닐까 싶은 이도 있다. 따라서 이들이 100% 통일된 생각으로 똘똘 뭉친다는 거 자체가 망상에 가까운 거다.


그렇기에 난 이만큼의 전공의가 사직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지금 의료계가 개판이라는 거고.


#2

저번에 세계관의 차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분명 누군가는 전공의 사직을 기득권(?) 의새의 이기적인 불법 집단행동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타도하고 싶을 '기득권 의사'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거나, 오히려 권력에 붙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고 있다. 전공의 선생님의 젊은 혈기로 바라본 한국은 부조리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권력 있는 부모의 자식, 물려받을 병원이 있는 자식들은 오히려 싼 값에 흙수저 의사를 부리며 부를 쌓기 더 쉬워졌기에 고분고분, 아니 앞장서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줄어 힘든 건 맞으므로 나간 이들에게 어서 돌아오라고 말한다. 어차피 의사는 정부를 못 이긴다며, 의사가 있을 곳은 환자 곁이라며. 그래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자 이젠 간호사 PA를 합법화해서 이용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즉,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고 무조건 간호법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선배 의사(아마 나도 여기 속할 것이다)들은 패배주의에 빠져 빨벌튀('의료 개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까지 최대한 벌고 의사를 그만두겠다는 것)할 생각만 하며,


한의사, 간호사, 민노총, 시민단체는 너나 할 것 없이 미래 의료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단 어떻게든 정부에 편승하여 콩고물을 타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의사가 몰락해서 신명 난 건 덤일 뿐). 앵무새처럼 환자의 권익을 말하지만, 내심 의정 갈등이 지속되어 VIP와 공무원들이 좀 더 판을 흔들어주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욕하던 각종 고인물들 교활하게 더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그것도 너무나 마음대로 뜯어고쳐지고 있는데, 그걸 미쳤다고 반대하는 젊은 의사들이 오히려 '기득권'이라고 대중에게 욕을 먹고 있다. 이들은 아직 학자금도 다 못 갚았는데 말이다.


사직 전공의들은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전공의는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심지어 정부가 모든 걸 전부 원점으로 되돌린다고 해도? 그런데 수시모집을 이미 강행해 버렸네?


그래서 이젠 수습할 수 없다는 말이 의료계에서 도는 것이다.


#3

의료계 블랙리스트 "유포" 전공의가 구속되었다고 한다. 정작 "작성"한 이들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잡히지 않은 건지, 가장 먼저 잡힌 (만만한) 놈을 대표로 때려잡아 전공의의 기를 꺾어놓겠다는 건지 의도는 알 수 없다.


구속된 전공의의 '죄명'을 놓고 의사 사이에 논란이 많았다. '블랙리스트'를 만든 건 실존 인물을 조롱할 목적이 분명히 있으므로 사실만을 적었더라도 범죄는 맞다는 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다만, '오죽하면 그랬겠냐'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그래도 그러면 안 됐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 등 온도 차이는 있다. 특히 그게 '중범죄자처럼 포토라인에 세우고 사람들이 돌을 던지게 만들만한 정도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었다.


2020년에 있었던 '보이콧 호스피탈'이라는 웹사이트를 언급하는 의사도 있었다. 해당 사이트는 파업에 동참하는 의사의 실명과 의원 명단을 만들어 조롱했다. 사실 법적으로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못 잡는 건지 안 잡는 건지, 아무튼 운영자는 잡히지도 않았고 유야무야 잘 넘어갔다.


모 커뮤니티에서 한 때 인기였던 '수박 리스트'를 떠올리는 의사도 있었다. 수박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해서 해당 커뮤니티가 철퇴를 맞았다거나 유포자가 잡혀 포토라인에 서는 일은 없었다.


그걸 보면서 블랙리스트 유포 전공의가 중범죄자 취급을 받는 게 정말 정당한 건지 말이 많은 것이다. 그냥 '심히 괘씸죄' 아니냐고. 마침 범죄의 종류와 상관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 면허가 박탈되는 의료법 개정안이 시행된 상태이므로 해당 전공의 운명에 의사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4

그런데 놀랍게도 의사협회는 구속된 전공의에게 변호사비 등 지원을 하나도 해주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사실 여부 확인 필요). 언론과 대중에 물어 뜯기게 생긴 전공의는 자비로 변호사를 구했고 이를 보다 못한 지인이 알음알음 후원용 계좌를 홍보했는데, 아뿔싸! 이로 인해 전공의의 실명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다 퍼지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해당 전공의는 정부가 인정한 맛 좋은 장난감이 되어 사이버 오체분시 능지처참을 당하고 있는데, 구속되어 스마트폰이 압수되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으므로 멘탈이 쿠쿠다스 급인 난 그저 숨죽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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