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재현 시대 개인의 욕망과 디지털 이미지 생산에 대한 고찰
MZ는 왜 밈meme이 되었을까. 2021년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SNL코리아’에 등장한 ‘주 기자’, 인턴기자 주현영은 대표적인 밈이 된 MZ 캐릭터에 해당한다. 배우 주현영이 연기하는 캐릭터, 주기자는 사회 초년생 인턴 기자로 항상 “젊은 패기로 신속 정확하게 팩트를 전달한다!”라는 당찬 포부로 말을 시작하지만, 번번이 어수룩한 모습을 보인다. 눈을 부릅뜨고 의욕적으로 보도를 이어가다 앵커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떨리는 눈꺼풀과 목소리로 시종일관 버벅거리고 마는 주기자 영상 클립은 숏폼 콘텐츠의 전파를 타고 밈이 되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발표를 하는 대학생, 면접을 보는 취준생, 처음 PT하는 신입사원을 본 적이 있거나 본인이 그랬던 적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연출된 리얼리즘의 단편이 확산되면서 MZ의 전형을 낳았다. 세대 전체를 매도한 것 내지는 희화한 것이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좋고 나쁨을 논하기보다는 기꺼이 캐릭터를 기획하고 연기하고 밈이 된 배우 주현영도 96년생, MZ세대라는 것에 주목하기를 권한다. 인간 주현영은 왜 연속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전인全人의 위치에서 내려와 평면적인 캐릭터, 이미지, 그리고 밈이 될 각오를 했을까? 본 글에서는 밈의 매체적 물성과 밈이 된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여 포스트-재현 시대에 생산되는 디지털 이미지에 함의된 개인의 욕망에 천착하고자 한다.
밈이 된 사람들을 톺아보기 위해서는 밈 자체를 논할 필요가 있다. 밈은 짤방, 짤, 클립 영상 등을 아우르는 콘텐츠이자 매체로 원본에서 추출되고 리믹스와 합성 등의 변형을 거쳐 특정 맥락을 표상함으로써 공감을 일으키는 저용량 저화질의 디지털 그래픽, 사진, 영상 이미지를 통칭한다. 다양한 맥락에서 수많은 형태로 창발하는 밈은 원본이 되는 콘텐츠에 기초하지만 이것에서 분리된 조각이다. 원본에서 돌출되어 나온 사본은 무한정의 복제 과정에서 해상도를 잃지만 오히려 간결함과 저용량을 동력으로 용이하게 전승되고 전송된다. 밈은 해상도를 파괴하는 복제와 공유 과정에서 인터넷 사용자에 의한 조작과 편집을 통해 원본의 맥락과 무관한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밈은 ‘빈곤한 이미지’다. 독일 태생 미디어 아티스트 히토 슈타이얼이 제시한 빈곤한 이미지라는 개념은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과 순환과정에서 파생되는 복제물이자 파일을 일컫는다.¹ 이 이미지는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 다수의 변환, 재포맷, 재편집을 거침으로써 화질과 해상도가 극도로 저하된 것이다.² 질적으로 떨어지더라도 빈곤한 이미지는 디지털 미디어의 비물질성과 저용량에 기인하여 쉽고 빠르게 확산한다. 그리하여 빈곤한 이미지는 영화관 스크린에서는 추방당했을지언정 창작자와 관람자 간의 그리고 삶과 예술 간의 간극을 축소시키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³ 빈곤한 이미지는 디지털 쓰레기에 가까운 것일지라도 사용자를 이미지의 편집자, 비평가, 번역가 그리고 공동 작가로 만든다.⁴ 이를 미루어보았을 때 밈은 디지털 이미지로서의 비물질성, 저용량 저화질에 기인한 복제 및 전송 용이성, 인터넷 사용자에 의한 생산적 소비 경향을 모두 띤다는 점에서 빈곤한 이미지에 해당한다.
새로운 기술은 매체를 발명해 새로운 예술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새로운 감성적 지각을 낳는다.⁵ 빈곤한 이미지로서의 밈은 회화나 아날로그 사진과 같은 이미지이자 예술로써 감성적 지각을 생성한다. 히토 슈타이얼은 빈곤한 이미지가 에세이 영화와 같은 원본으로부터 파생될 때 원본의 매체적 물성에서 발현되는 아우라를 파괴하고-예컨대 영화라면 고화질과 상영의 일회성이 자아내는 진품성–전복적으로 무한 복사와 재활용 능력을 단초로 새로운 아우라를 풍긴다고 주장한다. 밈은 디지털 혁신이 연 파일 복제, 편집, 전송 기술과 미디어 발달에 힘입어 일종의 현대 예술로 대두되면서 새로운 감성적 지각을 선사하고 있다.
히토 슈타이얼이 빈곤한 이미지의 아우라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밈은 빠른 전송과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저해상도에 연유하여 특수한 지각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사유를 담는 매체의 바이트Byte 값이 치솟고 있는 정보화 및 예술사의 흐름에 착안하여 볼 때 매우 특징적이다. 텍스트(문학)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영화)으로 사유와 담론을 수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담지체의 데이터값은 점점 방대해져 왔고 현재는 그 값이 극한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시류에 특이하게도 밈은 현저히 적은 데이터 값으로 디지털 시대 정보의 바다를 유유히 항해하고 있다. 이를 보고 밈이 짧고 피상적인 사유만을 담지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각 언어로 사유하는 것이 만연해진 시대에 밈은 집약적이고 함축적으로 사유를 붙잡아 전파한다. 그리하여 밈을 마주한 수용자들은 체화된 영상 문법을 기반으로 순식간에 맥락을 파악하고 이미지 내부에 압축되어 있는 사유의 내용을 단박에 이해하는, 마치 아바타의 ‘샤헤일루’와 같은 교감을 경험하게 된다. SNS상에서 밈은 상술과 부연 없이 가장 간단명료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다. JPG, GIF 형식이나 릴스, 쇼츠 혹은 틱톡 영상과 같이 숏폼 콘텐츠로 올라오는 밈은 채팅창에서 공유하고 전송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이제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에서 친구와 대화하거나 생각을 공유할 때 텍스트 없이 밈만으로도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밈의 이러한 형식적 특성은 그것이 다루는 내용과도 긴밀하게 결부한다. 시각 언어로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밈은 공감대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밈을 보고 있노라면 좋아요나 추천으로 하나가 되는 사용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해당 밈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이다. 밈은 사람들의 동질적인 욕망, 태도, 경험, 기억, 감정, 성격, 역할 등을 표상함으로써 시각적 유대를 형성한다. 사례를 통해 이해를 돕자면, 먼저 특정 캐릭터나 동물을 앞세워 공감 가는 상황이나 기분을 묘사하는 밈들을 제시할 수 있다. 양파쿵야 밈, Huh? cat 밈, Pou 밈은 각각 은은하게 광기 어린 눈빛으로 일상적 세태를 살아가는 모습, 세상의 굴레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비관적인 삶의 태도를 대변한다. 사용자들은 위와 같은 귀여운 캐릭터와 동물에 자기를 대입하고 투영하여 공감한다. 그리고 해당 밈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를 하거나 자신의 계정에 재업로드 혹은 리믹스를 만드는 등의 행동을 취하며 그들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그들과 같이 귀여워지고 싶은 욕망을 표출한다. 일종의 ‘자기 모에화’를 통해 인터넷상에 귀여운 자신을 만들어 남기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군으로는 Uni 밈과 컨템포러리 아트 밈을 들 수 있다. 대학생이나 미술학도, 예술가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소름이 돋을 만한, 있음 직한 경험들을 보여주는 밈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특정 역할과 직업을 수행하는 주체로 자신을 규정한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밈을 이용해 자신이 누구이고 싶은지를 욕망하고 그에 따른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밈을 향유하는 것은 자신의 성격, 감정, 태도, 점유한 시공간, 역할, 욕망, 취향에 형태를 부여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본인 SNS 계정이나 채팅창에 밈을 공유하거나 좋아요, 댓글 등을 남기면서 형태 부여를 실행한다. 디지털 사회의 상호작용성은 참여 문화를 견인한다는 점에서 미루어볼 때, 사람들은 위와 같은 적극적 관조 내지 감상 행위를 취함으로써 참여자, 궁극적으로 창작자의 일원이 되어 이미지가 표상하는 인간상을 조망하고 그곳에 자취를 남겨 원하는 모습으로 자기를 창조하고 보여준다. 그렇게 개인은 밈을 타고 디지털상에 파편화된 상태로 편재한다. 무맥락의 캡처본에서 출발한 이미지에 의미를 덧씌우고 거기에 본인을 투사해 자기 일면을 포착하며, 동시에 디지털 공간 안에 자신의 페르소나를 부상시킨다. 포스트-재현 시대에 이르러 이미지와 스크린은 현실과 의식을 반영할 뿐 아니라 이를 생산하기에 사람들은 밈을 매개로 나를 보는 동시에 ‘나’를 만들고 자발적으로 ‘나’를 보여준다.
이렇듯 포스트-재현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디지털 이미지에 자신을 투사해 가시화하는 행태의 양식화는 당연지사다.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생산한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사람들은 기존의 이미지가 아닌 현실의 자신을 원본으로 하는 밈을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이른바 ‘밈이 된 사람들’이다. 앞서 언급한 인턴기자 주현영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인터뷰에 따르면 주 기자는 인간 주현영과 90% 일치하는 캐릭터다.⁵ 주현영은 학창 시절 가졌던, 교수님께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와 늘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기초한 자신의 성격과 경험을 재료 삼아 주 기자 캐릭터를 주조하였다. 주현영 본캐에서 태동한 주 기자 페르소나는 MZ로 불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감대를 이루었고 여기서 다시 주 기자의 성격과 행동을 본 삼은 MZ들의 페르소나가 무수히 파생되었다. 밈이 된 사람들의 또 다른 사례로는 가수 이찬혁이 있다. 그는 확고하고도 엄청난 기믹⁶으로 뮤지션 이찬혁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이는 허구가 사람들 만드는 시뮬라시옹 현상을 보여준다. 미디어에 비추어지는 그의 꾸며진 컨셉, 연출, 스타일이 역설적이게도 진짜 그를 만든다. 이른바 ‘GD병’에 잡아먹힌 듯한 거들먹거림과 탈색한 눈썹, 선글라스, 무대에서 머리를 자르는 기행적 퍼포먼스, 비대해진 자의식을 공간화한 개인 전시, <영감의 샘터> 등 겉치레뿐일 것 같다가도 진정성이 묻어나는 그만의 행보와 가치관이 담긴 이미지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공상가들의 전형이자 아이콘이 되고 있다.
기믹, 페르소나, 부캐 형성을 기반으로 밈이 되는 사람들의 자발적 가시화는 자기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 공인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개인들도 SNS 포스팅을 이용해 각자가 원하는 ‘나’를 깎고 빚어낸다. 예를 들어 굳이 본인 사진이 아니어도 가수 검정치마를 비롯한 인디 가수의 음악, 소설이나 시집의 한 페이지, 분위기 있는 카페의 풍경과 음식 사진 등 자신의 추구미aesthetic, 코어core, 취향이 담긴 사진을 업로드하면 그 사람은 대상을 어떻게 감상했는지와 관계없이 감성적인 사람이 된다. 또 에어팟 맥스나 트렌드에 맞는 힙한 옷을 걸친 사진은 그 사람의 폼을 만든다. 여기서 백미는 눈물 셀카다. 싸이월드 시절부터 유구한 전통을 가지는 눈물 셀카는 진짜 나와는 별개로 업로드된 순간부터 나를 센티한 사람으로 만든다. 여기서 이미지 기저의 진위를 따지고 드는 사람이 있을 터인데 시뮬라크르로 작용하는 이미지에서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펭수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중요한 점은 SNS 사용자들이 현실의 자신을 미디어에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밈이 된 사람들처럼 전인의 위치에서 내려와 미디어를 통해 디지털 공간 안에 자기가 추구하는 ‘자신’을 객체화하여 창조한다는 것이다. 밈이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몰리듯이 SNS 포스팅을 구심점으로 비슷한 취향과 이상향을 가지는 개인들의 이미지들이 결집하여 하나의 문화적 공동체를 구성한다. 이는 일종의 ‘나’로부터 출발하는 세계다.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나’의 성정에 동의한 사람들은 이 세계의 주민이 된다. 그리고 확산적으로 불어나는 주민들은 공통의 취향과 취미를 추구하는 포스팅을 쌓아나감으로써 영토 확장과 주권 확립을 이룬다. 한 조각의 ‘나’가 좋아요를 받아 여러 사람의 정체성을 지지하는 대문자 ‘나’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개인의 욕망을 기원으로 하는 디지털 이미지로서의-일종의 아바타와도 같은-‘자신’과 이웃한 타인과 함께 고유한 하위문화를 만들고 연대를 통해 자기 지시를 이룬다.
자기표현과 자기 지시의 욕망은 비단 MZ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MZ세대가 미디어 환경과 SNS UI에 익숙할 뿐이지 윗세대들도 모두 비슷한 욕망 실현을 염원하였다. 영화 <토니 에드만>(2016)의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분)는 디지털 이미지의 비물질성에 기대지 않고 현실의 차원에서 기믹을 통해 자신의 기질과 열망을 실현한 캐릭터다. 딸의 삶에 융화되고자 하는 마음, 매사를 심각하게 만드는 진지함에서 벗어나 삶을 유쾌하게 바라보는 관점을 전파하고자 하는 빈프리트의 열망은 ‘토니 에드만(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분)’이라는 기믹을 탄생시켰다. 현실 세계에서 밈이 된 빈프리트는 덥수룩한 가발과 튀어나온 틀니를 스타일 삼아 ‘인생 코치 토니 에드만’이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회사원인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 분)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딸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관을 설파하고 다녔다. 영화 속 토니 에드만이 된 빈프리트를 통해 자기표현과 자기 지시가 세대를 막론한 보편적인 욕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물질세계에서 빈프리트는 토니 에드만을 연기하고, Z세대의 윗세대들은 싸이월드에 눈물 셀카를 올리면서 자기실현을 이루고자 하였다.
확장성 및 전송 용이성을 지니는 디지털 이미지와 밈, 이를 담지하는 SNS, 숏폼 플랫폼을 비롯한 매체의 발달은 인간 보편의 자기표현 욕망 실현을 뒷받침하는 화력으로 작용하였다. 포스트-재현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영상 문법을 체득하고 시각 언어로 사유와 소통이 가능해진 대중은 기존의 물리적,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고 밈이라는 창작의 틀을 활용하여 디지털 이미지를 소비하는 동시에 생산하였다. 사람들은 공감 가는 밈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는 행동 기록을 남김으로써 디지털 이미지에 자기를 투영해 표시하는 형태로 본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여기에서 나아간 공인들은 자의적으로 객체가 되어 자기 연출을 통해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전시한다. 공인들의 이미지를 관조하고 이를 선망하게 된 사람들은 밈을 향유하듯이 그들의 이미지에 반응을 남겨 취향을 매개로 자기 정체성을 가시화한다. 또한 이들은 SNS 계정에 본인이 원하는 모습의 자신을 만들어 보여주는 방식으로 자기표현을 실현한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디지털상에 일종의 디제시스적인 공간을 만들어 생활한다. MZ세대는 가장 친숙하게 디지털 기술과 형식을 받아들여 위와 같은 방식으로 본인의 정동과 욕망에 형태를 부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디지털 공간의 비물질적인 거주민들은 동질적인 정서를 표상하는 타인과 연대하여 고유한 하위문화 국가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일찍이 디지털 세계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MZ는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인정받기 위해 기꺼이 밈이 되었다.
[각주]
1) 김지훈, 「포스트-재현, 포스트-진실, 포스트인터넷」. 『현대미술학 논문집』 21집, 2017, 59쪽.
2) 강미정, 「포스트 인터넷 시대 사진의 존재론 : 히토 슈타이얼의 이미지론과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을 중심으로」, 『美學(미학)』, 88권 3호, 2022, 54쪽.
3) 강미정, 위의 논문 54쪽.
4) 히토 슈타이얼, 김실비 옮김, 『스크린의 추방자들』, 워크룸프레스, 2018, 53쪽.
5)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예술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새로운 감성적 지각을 낳는다. 안료와 캔버스의 발명은 전통 회화 예술을 태동하였다. 미메시스에 기반하여 현실 재현을 추구하는 전통 회화는 원본성과 진품성에 의해 발현되는 경배 가치의 아우라를 지녔다. 그러나 아날로그 사진 기술의 발달은 이미지 복제를 가능하게 하여 단일한 작품이 지니는 원본성과 진품성의 상실을 초래하였고 전통 회화의 아우라를 몰락시켰다. 그리고 사진은 오직 피사체가 거기에 있었음만을 지시하는 여백의 이미지로써 감상자에게 뻗어 나가 기억과 경험을 추동하는 환유적 속성을 발휘하여 확장함으로써 푼크툼이라는 고유한 감성적 지각을 낳았다. 발전을 거듭한 디지털 기술은 데이터 손실 없이 원본 이미지의 무한 복제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자유로운 이미지 재창작을 가능하게 했다. 이 환경에서 생겨난 시뮬라크르로서의 디지털 이미지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하이퍼-리얼리티를 무기로 이례적인 몰입경험을 제공하였다. 요즘에 이르러서는 웹 3.0과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NFT가 이전의 감성적 지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새로운 감각질을 낳았다. 탈중앙화적으로 토큰 거래가 이루어지고 기록되는 환경 아래 NFT의 형태로 디지털 이미지의 개인 소유가 가능해지자 복원된 작품의 원본성과 진품성이 경배 가치에서 기인하는 아우라를 부활시켰다. 하지만 NFT가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지던 과거 테크네로서의 예술과는 달리 대부분 AI에 의해 무작위로 생성되는 제너레이티브 아트라는 점에서 생경함을 자아냈다. 전통 회화와 NFT는 경매에 붙여지는 아트 컬렉션임에는 다를 바 없지만 물성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NFT는 비가시의 영역에서 코드화된 과정을 거쳐 비물질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의뭉스럽다. 비물질성, 확장성, 호혜성 등 디지털 환경의 거의 모든 특질을 내포하는 NFT는 가상 화폐를 통한 매매-SNS 업로드를 통한 전시-컬렉터 커뮤니티 구성으로 이어지는 참여적 움직임을 만들어 독자적인 하위문화를 형성하였다. 취향을 매개로 자기 정체성을 표출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디지털 베뉴의 입장권으로서 NFT는 콜렉터들에게 일련의 문화적 체험 여정을 선사한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은 계속해서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고 이 과정에서 출현하는 제2, 제3의 아우라들이 감성적 지각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6) 고경석, 주현영 "SNL 인턴기자가 비하라고요? 90% 제 모습인데요", 한국일보, 2021년 10월 26일, 24면,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02410150003292.
7) 기믹Gimmick은 사전적으로 인물이나 상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특이한 전략, 혹은 전략에 쓰이는 독특한 특징을 말한다. 보통 술책, 상술, 눈속임, 기교와 같은 단어로 번역되는데 음악, 게임, 예능,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에서 넓은 스펙트럼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기믹은 다름 아닌 프로 레슬링에서 기원하였다. 순수 스포츠 라기보다는 경기자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수행이 주가 되는 엔터테인먼트 쇼에서 기믹은 경기자와 혼연일치를 이룬 캐릭터의 특징과 소위 말하는 ‘어그로’를 끄는 컨셉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현재는 이 용례가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장되어 기믹은 페르소나, 인격, 컨셉질, 부캐, 자아와 자기, 캐릭터성, 정체성 등을 관통하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참고 문헌]
1. 김지훈, 「포스트-재현, 포스트-진실, 포스트인터넷」. 『현대미술학 논문집』 21집, 2017.
2. 강미정, 「포스트 인터넷 시대 사진의 존재론 : 히토 슈타이얼의 이미지론과 그레이엄 하먼
의 객체지향철학을 중심으로」, 『美學(미학)』, 88권 3호, 2022.
3. 히토 슈타이얼, 김실비 옮김, 『스크린의 추방자들』, 워크룸프레스, 2018.
4. 김지훈, 「가속화된 디지털 이미지의 정치학 -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문학
동네』 제23권 제4호, 2016.
5. 고경석, 주현영 "SNL 인턴기자가 비하라고요? 90% 제 모습인데요", 한국일보, 2021년 10
월 26일, 24면,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02410150003292.
6. 이병철, 오타쿠는 사실 엘리트 문화였다, 온큐레이션, 2023년 9월 18일, https://oncuration.com/준-이나가와/.
7. 나무위키, 이찬혁, https://namu.wiki/w/%EC%9D%B4%EC%B0%AC%ED%98%81, 2023.12.17.
8. 틱톡, 밈으로 소통하는 밈, https://www.tiktok.com/@il0ve.memes/video/7222580707984493851?is_from_webapp=1&sender_device=pc&web_id=7312855651688056322, 2023.12.17.
9. 인스타그램, 양파쿵야 밈, https://www.instagram.com/p/CxEv_xrPvue/?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2023.12.17.
10. 인스타그램, Huh? cat 밈, https://www.instagram.com/reel/Cyi9EDbun0Q/?igshid=MzRlODBiNWFlZA==, 2023.12.17.
11. 인스타그램, Pou 밈, https://www.instagram.com/reel/Cz4Ka8jspLo/?igshid=MzRlODBiNWFlZA==, 2023.12.17.
12. 인스타그램, Uni 밈, https://www.instagram.com/p/C0vMkjNp-k-/?igshid=MzRlODBiNWFlZA==, 2023.12.17.
13. 인스타그램, 컨템포러리 아트 밈, https://www.instagram.com/p/C0vMkjNp-k-/?igshid=MzRlODBiNWFlZA==, 2023.12.17.
14. 나무위키, 기믹, https://namu.wiki/w/%EA%B8%B0%EB%AF%B9, 2023.12.17.
15. 인스타그램, SNS 밈 계정 운영을 통한 하위문화 형성 사례, https://www.instagram.com/p/C0yaICBJNOL/?igshid=MzRlODBiNWFlZA==, 2023.12.18.
16. 심혜련, 『아우라의 진화 (현대 문화 예술에서 아우라의 지형도 그리기)』, 이학사, 2017.
+사족을 붙이자면, 포스트-재현 디지털 이미지 시대에 희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공감 가는 밈에 반응을 남기고 SNS에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등의 형태로-자발적으로 가시화되길 원한다고 한들 히토 슈타이얼이 우려한 바와 같이 대중은 권력과 체제 안에서 자신이 은폐하고자 하는 부분까지도 강제적으로 보임 당할 수밖에 없다. 또 밈과 같이 의도된 저해상도의 이미지와 구별되는, 순전한 저해상도의 존재는 가시화될 기회조차 획득하지 못한다. 또 사람들은 여전히 코드화된 불가지의 디지털 영역을 두려워한다. 시계를 사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유튜브에 시계 광고가 뜨면 섬찟함을 느낀다. 에스파의 광야 세계관 속 블랙맘바는 알고리즘이 진짜 나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을 경우의 공포감을 형상화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비관론만을 지지할 수는 없는데, 블랙맘바가 등장하는 에스파의 광야 세계관이나 히토 슈타이얼의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MOV 파일>(이하 <안 보여주기>) 무빙 이미지 또한-자본주의 기틀 위에서라면 피할 수 없는 강제적 보여주기에 잿빛 조소를 날리는-‘엄연한 보여주기의 이미지’ 아닌가? 안 보여주기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안 보여주기>도 안 보여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안 보여주기가 언제나 상책이 아니라는 점을 증거하는 것일지도, 예술로 대표되는 자기 지시 혹은 자발적 보여주기가 가지는 실낱같은 변혁의 힘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 보여주기>를 보는 것과 돈을 주고 자본주의 현실을 다룬 블랙코미디 영화 <슬픔의 삼각형>를 보는 것을 누가 체제의 복속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나는 비굴하지만 꿋꿋하게-고고한 체하는 나를 애써 부정하지 못하며-디지털 체제와 자본주의 권력 안에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질문 그 자체를 표상하는 예술들을 긍정하며, 동굴 안에서 그림자를 보고 만들며 살겠다. 그런 의미에서 히토 슈타이얼의 <안 보여주기>가 SNS에 클립으로 뜨면 좋아요를 누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