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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 do it May 21. 2022

너와 100일을 살았다.

결혼 D+100의 소감

시부모님이 아직 애기 얘기 안하셔? 친구 J가 물었다.

야, 우리 결혼한 지 이제 100일 됐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엥? 거의 1년은 된 것 같은데 100일 밖에 안됐어?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을 미룬 탓에 1년이 넘는 유난히 길었던 결혼 준비 때문인지 다들 아직 그것 밖에 안됐냐고 되묻는데, 정확하게 오늘로서 결혼한 지 110일이 되었다.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되기까지 누구는 21일, 누구는 66일, 누구는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이상인 100일 이상이면 누군가와 살을 맞대고 사는 것이 습관을 넘어 자연스러움이 되는 걸까.


결혼하면 초반에 서로 맞춰가느라 가장 많이 싸운 다는데 다행히도(?) 우리는 연애 때와 비슷하게 크게 싸우지 않는다. 물론 서로 약간의 삔또 상함이 있긴 했지만 그 때마다 서로 조금씩 저자세를 취하며 눈치를 보는 덕분에 큰 위기는 없었다. 작은 위기들은 몇 번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청결함의 기준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남편이 청결 기준이 낮냐고들 물어보는데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 남편은 청결 기준이 매우 높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혹여나 물이 샐까 비닐을 두 세겹은 기본, 아무리 급하다고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 건 금지, 화장실 맨발로 들어가는 것도 금지, 밥을 먹을 땐 꼭 화장실 문을 닫고 먹는다. 혹여나 화장실 문을 열어두면 실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그렇게 불만이면 (그가 예전에 살던) 신림으로 돌아가라, 난 혼자 살겠다 엄포를 놓기도 하지만 그의 알뜰 살뜰한 살림力 덕분에 세탁기를 구석구석 닦는 법도 과일을 깨끗이 씻는 법도 재활용을 잘하는 팁도 배운다. 30년을 넘게 엄마랑 살면서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아마 지금 엄마랑 살고 있으면 영원히 몰랐을 것들을 그를 만나 어린아이처럼 하나씩 배우고 있다. 100일쯤 되니 이제 살림꾼이 다 되었다며 궁디팡팡해주는 덕에 재미가 붙어 쑥 컸는지도 모른다.


그와 살며 좋은 점 중 하나는 마사지이다. 마사지를 주기적으로 받을 만큼 마사지를 좋아하는 나에게 잠시 동안 펼쳐지는 그의 야무진 마사지는 감히 최고다. 처음엔 감을 못 잡아 조금 아플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오빠, 나 종아리’ 하면 귀신같이 내가 피곤해 하는 부분을 꾹꾹 주물러준다. 혹여나 그의 손이 아플까 아냐 괜찮아 하다 가도 조금만 주물러주면 바로 스르르 몸이 녹기에 그는 늘 꽤 오랜 시간 주물러 준다. 그렇게 청결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양말을 벗고 씻지도 않은 발을 30분을 주물러 주는 걸 볼 때면 꾹꾹 눌러주는 손길이 이만큼 널 생각한다는 도장이라도 되는 듯 그 마음이 오롯히 전달된다.


우리는 해외축구를 좋아하는 취미도 비슷하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주로 보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소 늦은 신혼여행조차 영국 축구를 보기 위해 런던으로 가기로 했다. EPL 특성상 밤 늦게나 새벽에 하는 경우도 많다. 늦은 시간 TV 앞에 앉아 우리나라 손흥민 선수가 있는 토트넘 경기를 보며 맥주 한 잔 할 때면 ‘크~ 이게 신혼의 낭만이지’라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같은 마음으로 한 팀을 응원하는 우리는 약간 다투다가도 그 시간 만큼은 원팀 인냥 같은 마음이 된다.


분명 좋긴 하지만, 결혼이라는 일상은 아직 낯선 길이다. 아빠 엄마의 딸로서는 30년 이상을 살았으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대략 알겠고 길을 빗겨 가다가도 익숙한 길로 되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와의 결혼은 처음 가는 길이라 이 길이 맞는지 저 길이 맞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가끔은 가만히 주저 앉아 멈춰 서고 싶기도 한데 옆에 누군가 있으니까 속마음을 숨긴 채 뛰기도 한다. 너와 내가 만나 1+1= 1일까 2일까 궁금했는데 1일 수도,2일 수도 심지어 3일 수도, 100일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다양한 결과 값이 나오니 정답이 없다. 우리가 한 선택을 우리 답게 만들어 갈 뿐.


얼마 전 온 결혼식 DVD 영상을 유달리 우리의 혼인서약서 중에 마음에 콕 박히는 문구가 있었다. “결혼 생활이 에덴이기 보다는 광야와 같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챙겨주고 손을 잡고 나아가는 동반자로 세상의 빛이 될 것을 약속한다는” 문장.             

그래, 백점 만점이라지만, 백일 만점은 아니니까. 앞으로 우리의 100일이 100번 지나가는 동안 광야와 같은 고르지 못한 길을 걷더라도 서로가 세상에서 든든한 존재로 스며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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