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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말산 토끼 May 26. 2021

수술과 시술

Feat. 마비와 방사통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키는 사람은 극소수 이리라.

나 역시 급하면 뛰게 되고, 지름길을 찾는다. 그 지름길이 때로는 낭떠러지임을 지금은 알고 있다.


퇴원 후에 아내의 집안일을 도왔다. 복대를 푼 나는, 작은 통증 정도는 개의치 않고 아내의 집안일을 도왔다. 아내는 기겁을 했지만, 나는 불룩한 배를 가지고 집안일을 하는 아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냥 좀 쉬고 있어, 자기는 환자잖아’

‘나 이제 다 나았어, 내가 가장인데 누워 있으면 되겠어? 걱정하지 마’


결국, 다음날 아침, 나는 또다시 출근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참 가엾고 딱한 사람이다.


건강을 지키지도, 가정을 챙기지도 못하는 나.

40대의 몸을 가지고 30대의 마음으로 살아간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했다.


이번 통증은 지난주 와는 또 달랐다.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상태.


똑바로 눕지도 못하고 모로 누워 신음하고 있는데, 때 마침 친한 형님이 전화를 하셨다. 형님의 전화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문병 오셨을 때, 좋은 의사가 있으니 괜히 시간만 보내지 말고 같이 가자고 하셨었다. 하지만, 허리 수술은 하는 게 아니라던 주변의 말이 생각나 거절했었는데, 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여 다시 연락하셨다고 했다.


‘토끼야, 내가 지금 너 데리러 갈게’

‘감사합니다. 저 지금 죽을 지경이에요…’


형님은 나를 데리러 오셨고, 고통에 신음하던 나는 그 차에 냉큼 올라탔다.

그 차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그때는…


나를 데려간 곳은 우리 집에서 상당히 떨어진 용인의 어느 척추 전문병원이었다.

형님과 친한 사이라는 의사는 MRI를 찍자고 했고, MRI 결과 심각한 퇴행성 디스크 판정을 내렸다. 그는 지체 없이 다음날 아침에 수술하자고 했다.


‘저… 저는 수술은 싫고요, 시술로 어떻게 해 주세요’

‘상태가 시술로 나아질 상태는 아닙니다. 시술해도 다시 수술해야 할 거예요’

‘그래도 수술은 싫습니다. 시술로 부탁드립니다.’


수술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나는 시술을 주장했고, 결국 시술을 하게 되었다.


시술과 수술의 차이

시술은 대개 절개를 하지 않고 기구를 이용하여 하는 것이며 수술은 절개를 하는 의료 행위이다.


자세한 내용은 안용 님의 브런치에  나와 있다.

https://brunch.co.kr/@ns-ay/4 


시술 후 통증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양쪽 허벅지에 방사통이 왔고, 똑바로 몸을 세우면 갑자기 힘이 빠져서 뒤로 넘어졌다. 일종의 마비 증세이다. 허리도 여전히 아팠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그때 대학병원에 갔어야 했다.

정말 바보 같게도, 나는, 나에게 가벼운 마비를 선사한 그 의사에게 다시 한번 나의 몸을 맡겼다.


‘역시 수술을 했어야 하는구나. 내가 시술을 하는 바람에 방사통이 왔고, 마비가 온 거야… 이 의사 말이 맞네.’


이렇게 생각 회로가 움직였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시술 후 방사통과 마비가 있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던 그 의사는, 지금 생각하면 의사라기보다는 장사꾼이나 기술자 수준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정신이 나갔었는지, 그의 말을 완전히 신뢰하고 말았다.


게다가, 내일이면 태어날 나의 아들을 내 손으로 안고 싶은 급한 마음에 이성은 완전히 고장이 났다.

아마도, 보이스 피싱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하리라…


너무나도 큰일이 닥치면 (닥쳤다고 생각하면) 뇌는 그 기능을 잃고 만다.

주위의 누군가가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공포와 탐욕에 사로잡혀 엉뚱한 판단을 하고 자기 합리화를 계속하게 된다.


그 끝은, 너무나도 처참하다.  


수술하면 2~3일 이내에 퇴원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 나의 사랑하는 아이를 안을 수 있다는 희망.


나는 그 말에 나의 몸을 맡기고 다시 한번 수술대에 엎드렸다.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했다. 허리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내일이면 태어날 아기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다.


그날 저녁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고통이 양쪽 허벅지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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