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 사태를 막는 고객 응대 전략
마치 만화 속 먼지가 되어버린 악당을, 주인공의 '해치웠나'라는 대사가 살려내는 클리셰처럼 한 달 간의 펀딩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예상 수치를 2배 뛰어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애초에 준비했던 수량은 전량 소진, 더불어 긍정적인 피드백들이 빠르게 쌓이면서 제조공장에 기존 2배 물량을 추가 발주했다. 사실 1차 제작 과정에서 정말 문제가 많았고, 잼을 더 만들다가는 제 명에 살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만두려 했는데 지구 대표 망각의 동물답게 시간이 지나고 장사가 잘되니 ‘이정도 했으면 이제 문제 없이 잘 해주시지 않겠나’라는 헛된 행복 회로를 돌리고 말았던 것이 문제였다.
마지막 예약 배송이 시작될 때쯤, 추가로 생산한 제품 전량에 1차 생산 당시와 똑같은 문제가 생겼고 공장 측과는 문제의 책임 소재를 찾고 대책을 씨름하는 또 한번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전량 재생산에 돌입하면서 예정된 일정보다 입고일이 2주나 지연될 상황.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약 수십 명의 고객 분들께 이미 1달 가량을 기다린 배송을 2주나 더 기다려달라고 설득해야 하는 일이었고 스포하고 들어가자면 100% 방어에 성공했다. 그렇다. 이 글은 '기본만 잘 지키면 성공하는 고객 응대 방법'되시겠다.
먼저 기본적인 응대 흐름은 복잡할 것 없이 큰 맥락에서 아래와 같이 진행되고, 각 진행 단계별로 우리가 어떻게 진행했는지 간단히 정리해봤다.
변명 말고 안내를
문제 상황 안내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말들로 말이 길어질 필요 없이 짧고 간결하게 안내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전화응대의 경우, 대부분 길게 통화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응대가 끊기거나, 가장 쉬운 선택인 ‘환불’ 등의 정책을 선택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 ~ )다름이 아니라, 현재 제조공장 측 문제로 인해 주문해주신 쌀잼 생산이 최대 2주가량 지연되게 되어 안내차 전화드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구매 후 오래 기다려주셨음에도 이렇게 또 다시 지연되게 된 점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길게 변명할 필요 없고,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문제의 발생은 100% 브랜드의 귀책 사유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진심으로 상황에 대한 마음만 전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구매 프로세스에서 고객들은 생각보다 간결하고 명료한 선택들을 선호한다는 걸 기억하자.
진짜 사과하는 법
이어지는 감정 공감과 대안 제시를 위해서는 고객별 특이사항을 사전에 미리 정리해두면 기계적인 응대가 아닌 1:1 맞춤형 응대로 느껴지게끔 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케어받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응대가 필요한 고객들을 리스트업하면서 재구매 여부, 구매 옵션, 수량, 기존 리뷰 데이터, 구매 시기, 본인 구매 여부, 선물 여부 등 특이사항이 될 법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기록해둔 시트를 활용해 응대를 시작했다.
앞서 예시로 제시된 문장 중 다음 문장의 경우, 미리 준비해둔 고객별 특이사항에 맞게끔 변경하여 응대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 양식) 먼저 구매 후 오래 기다려주셨음에도 이렇게 또 다시 지연되게 된 점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재구매 구객의 경우) 앞서 한차례 구매하시고 재구매해주셨더라고요, 저희 브랜드를 좋게 봐주시고 한번 더 찾아주셨는데 빠르게 전해드리지 못하게 된 점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에 약 20%의 고객들은 서비스도 마다하시며 오히려 위로해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는 대부분 감정공감 대화에 비중이 더 높았던 경우들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문제 안내까지 조금 딱딱하던 분위기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인간적인 관계 속 대화가 형성되게 된다.
최선의 정해진 '답'
3가지 단계 중 어쩌면 마지막 대안책 제시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수 있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서 많이 활용되는 ‘프레이밍 효과’*를 잘 활용하는 방법인데 쉽게 말해 브랜드에게 최악의 선택지는 처음부터 제외하고 논하는 방식이다. 본 상황에서 고객은 다음과 같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프레이밍 효과(Framing)란, 같은 문제라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사용자의 판단과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하는 사회과학이론인데 일상 속 다양한 마케팅 최근 유사한 개념으로는 넛지(Nudge)를 예로 들수 있다. (참고 링크 https://blog.naver.com/mosfnet/222786851136)
1) 오래기다렸지만 까짓꺼 2주정도 더 기다린다.
2) 주문 제품 중 바로 발송이 가능한 제품으로 교환한다.
3) 취소 후 환불한다.
여기서 프레이밍은 고객이 브랜드와 동일하게 최선의 선택지와 최악의 선택지를 느끼게끔 구성해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유도 선택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저희가 꼼꼼히 검수하여 입고되는대로 보내드리고자 하며 죄송한 마음을 담아 블루베리잼을 서비스로 함께 구성해드리고자 합니다.
(비교 선택지) 혹 불편하실 경우, 취소처리를 도와드리고자 합니다. 다만 펀딩 특성상 취소 과정이 다소 복잡하실 수 있는 부분 안내드립니다.
우리의 경우는 조금 더 나아가서 취소 선택지를 아예 제외하고 아래와 같이 응대를 진행했다.
(유도 선택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저희가 꼼꼼히 검수하여 입고되는대로 보내드리고자 하며 죄송한 마음을 담아 블루베리잼을 서비스로 함께 구성해드리고자 합니다.
(비교 선택지) 또는 현재 지연 예정인 쌀잼 대신 블루베리로 교환해도 괜찮으시다면 금일 바로 교환하여 보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찌보면 간단한 위 일련의 방식들을 통해 앞서 스포했듯 모든 고객들에게 교환 옵션 선택 없이 지연 배송을 기다리겠다는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항상 최악의 수를 먼저 상상해두고 일을 시작하는 편이라, 이번 문제에서도 전량 환불까지 염두해두고 진행했던 과정이었는데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근거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브랜드에 처음 함께해준 고객들이었고, 놓쳐서는 안되는 관계라 생각했기에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응대하다보니 고객들도 그 마음을 느끼셨던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있다. 뭐 이건 사설로 남겨두더라도, 핵심 요약은 [잘 준비된 가이드]와 [진심]이 아닐까.
이제껏 광고만 하다가 프로덕트의 기획, 제작, 광고 > 고객관리까지 다 진행하려니 참 어렵지만 이만큼 배우는 것도 많고 재미있는 일도 없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타는 부분이니 이전에는 없던 인사이트도 많이 생기고 더 애정도 가게 되는 듯. 여하튼 오늘도 다사다난한 자영업자들 모두 파이팅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