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다정함의 대물림에 대하여
결혼하고 3개월쯤이었을까, 아내와 함께 시골에 있는 부모님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외출 후 돌아와 잠시 쇼파에 몸을 뉘우고 쉬는 중에 아버지가 내 모습을 보시더니 베개를 꺼내와 머리에 넣어주셨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아내가 흠칫 놀라더니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에게 그렇게 다정할 수 있냐며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애들도 아니고 무려 서른을 넘긴 거구의 아들이 거실에 누워있다고 조용히 베개를 안방에서 꺼내와 건네주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환경에서 자라온 본인에게는 생각지 못해본 상황이었던 것. 내겐 너무나도 일상이었던 모습이기에,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 다정함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몇가지 중 가장 큰 자산이 그런 당연한 다정함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에 앞서 아버지의 당연한 다정함이란 이런 것들이다. 위에서 언급된 에피소드처럼 새벽이라도 꼭 자녀 방에 들러 이불을 덮어주고 벗어난 베개를 제대로 베어주시는가 하면 온가족이 외출을 하거나, 식당에서 나오는 길이면 꼭 앞장서서 신발 방향을 돌려 신기 편하게 바꿔두시고, 아침에 잠에서 일어나기 피곤해하는 날이면 조용히 물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건네주시곤 하는 것들이다.
이런 아버지의 다정함을 100%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못하지만, 아들이기에 자연스레 나오는 50% 수준의 아버지표 다정함만해도 주위에서 다정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올 수 있었고 그 다정함 덕분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싶다. 아내 역시 가끔 내가 스스로의 외모에 신경쓸때면 장난처럼 본인이 나와 연애하고 결혼하게 된 결정적인 사항은 다정함이지, 외모는 굉장히 미미한 부분이라며 놀리곤 하는 걸보면 ‘다정함’이라도 없었으면 어쩔뻔 했나 싶기도.
물론 이런 단편적인 부분 이면에는 다소 다혈질적인 모습이라던지, 고집스러움 등 나 역시 아버지의 닮고 싶지 않은 모습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다정함이 그 모든 단점을 상쇄시킬만큼 큰 것은 목적이 있는 다정함이라거나, 단순히 자녀만을 향한 다정이 아닌 무의식적인 본연의 다정함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받는 이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심지어 알아차리기도 힘든 가랑비에 옷젖는 듯한 스며드는 다정함. 내가 생각하는 진짜 다정함이란 그런 것이다.
이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 전, 아버지께 아내가 그러했더라는 이야기를 하니 본인이 그랬는지도 잊으신 모양새였다. 신발 이야기도 드리니, 그저 본인도 자신의 부모님께 받은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 그랬다. 돌이켜보면 할아버지께서도 내게 쉼없이 다정하셨다. 윗대의 대물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가지 걱정되는건 혹여 내가 그 대를 (어떤 방식으로든) 끊어먹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스쳐지났지만 대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전할 수 있는 다정함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리라.
기왕 나온 김에 조금 더 자랑하자면,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의 아버지상과는 다르게 애정표현도 풍부한 편인데 이 때문인지, 여전히 외출할때면 나는 아직도 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다닌다. 성장이 남달랐던 내가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키를 훌쩍 넘어버린 것도, 아버지의 오른쪽이 선천적으로 조금 불편하신 것도 한 몫을 하겠지만 아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우리 부자가 걸어다니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한가지 바뀐게 있다면 어릴 땐 아버지가 아들 손을 귀여운 맛에 잡아주셨겠지만, 지금은 내가 아버지 손을 반대로 귀여운 맛에 잡아드리는 느낌정도일까.
같은 아버지를 둔 여동생과 한번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가정형편도 넉넉치 않은 시골에서 우리가 엇나가지 않고 나름 (우리 둘의 평가로는) 잘 클 수 있었던 건 8할이 어머니의 헌신과 아버지의 다정함 덕분일 것이라고. 이 대화 전까지는 우리 둘다 흙수저라며 자조하곤 했었는데, 이후 우리는 우리를 다정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으로 하기로 했다. 나 역시 아버지가 그러했듯 누군가에겐 스며드는 다정함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