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성사전'에 따르면 '떠도는 물의 혼백'이라는 안개. 비 따라 도시 사이사이를 부유하며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나그네. 밖에 있는 그것들이 나도 몰래 안으로 들어왔을까. 우리 집 냥이의 옷 사이사이로 젖어든 듯, 물의 혼백은 냥이의 털옷을 무겁게 무겁게 누르는지 눈꺼풀 덮고 종일 조불고.
내 눈꺼풀도 종일 무겁고.
어두운 낮을 이불 삼아 잠자기 좋은 날.
삼라만상 라면 세 그릇으로 가득 채운 상.
정신병자 제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인격자.
수면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일용하는 밤의 양식. 불면의 세월 속에 무성하게 자라오르는 허무의 수풀을 잠재우고 허약해진 육신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안식의 초대자. 꿈의 동반자. 소음 제거제.
달팽이 한여름의 고독한 여행자. 그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집을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여행자.
어디선가 간간이 들리는
개구리 노랫소리
여름을 데려왔으니
마중하라는 전언.
절망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희망.
아파트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
자만심 이 세상 만물들이 모두 자신의 스승임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가장 심오한 착각.
땅이 좁으니
집은 흙을 밟지 못하고
하늘로 하늘로.
사람도 덩달아
하늘로 하늘로.
똑같은 캐비닛 모양
이름표 잃어버리면
집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주의 요망.
영혼 우주 무임 승차권.
인생 인간답게 살기 위해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야 하는 비포장도로.
눈물 지상에서 가장 투명한 詩.
비포장도로를
걷다가 걷다가
낡아버린 신발.
잠시 벗어놓고
고단한 발에게
따뜻한 눈인사라도.
감성사전의 초판은 1994년에 출판되었다. 위 사진은 그때의 작가의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작가란에 있던 사진이다.
사전답게 짤막한 풀이의 글들이다. 작게 작가의 그림들도 그려져있다. 그중에서도 아주 짧으면서도 강렬한 몇 개의 글(단어)들을 발췌했다.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글도 보이고, 작가 특유의 감성에 뭉클한 글들도 보인다. 쉽게 읽어도 쉽게 넘겨지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몇 번을 되뇌어 읽으며 의미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