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차이
얼마 전 한국의 친구들과 SNS로 설 인사를 나누다 보니, 새해 덕담에 이어 기혼인 친구들은 자연스레 이야기가 시가와 친정의 비교로 흘렀다. 평소에는 그럭저럭이지만 명절 즈음에는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것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것이다. 외국에 나와 있어 비록 시한부나마 ‘팔자 좋은 며느리’인 나는 대체 이 시가와 친정의 차이가 얼만큼인지 계량할 수 있을까, 하는 참으로 한가하고 팔자 좋은 궁금증이 들었다.
시가와 친정의 차이. 그 미묘하고도 설명하기 어려운 두 집의 온도차는 대체 얼마일까.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나에게 있어 시가와 친정의 차이는 ‘원재료와 밀키트의 차이’ 정도인 것 같다.
꼭 한국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연말연시를 낀 시기라 “작년부터 자가격리 중이다.”, “2년 동안 격리하고 있다.”라는 개그를 꼭 써먹으리라 다짐하며 한국에 도착했다.
당시의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규정에 따르면, 해외에서 들어온 사람은 씻기와 식사, 세탁 등이 독립적으로 가능한 공간을 구해 2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했다. 수도권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이 호텔로 이동하시고 그 집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2주간이나 부모님께 호텔 생활을 하시라고 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그리웠던 한국 음식들을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마음껏 배달시켜 먹고 싶다는 욕심에 나는 아예 서울 한가운데, 배달 음식이 다양할 것으로 기대되는 마포구에 에어비앤비를 구했다. 옥상까지 단독으로 쓸 수 있어 가끔 콧바람을 쐬러 올라갈 수도 있는 곳이었다.
반드시 먹어야 할 ‘먹킷리스트'를 만들고, 자가격리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운동량이 부족해져서 배가 안 고플까 봐 친구에게서 '닌텐도 링피트'도 빌려 놓고, 옥상에서 할 줄넘기줄도 챙겼다. 그간 읽고 싶어 온라인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두었던 한국 책들도 에어비앤비로 배달시켜 하루 종일 책 읽고, 먹고, 운동하고, 책 읽고, 먹고,... 를 반복한다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한국 도착하여 먹은 역사적인(!) 첫 배달 음식은 숙소 근처의 음식점에서 주문한 뿌팟뽕 커리와 팟타이, 볶음밥 등의 태국 음식이었다. 뿌팟뽕 커리가 그동안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왜 텍사스 우리 동네 태국 음식점에서는 이걸 팔지 않는 걸까, 이것도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하나 백만 번 고민했던 음식. 먹으면서 거짓말 좀 보태, 기쁨의 눈물이 날 뻔했다.
이후로 며칠 동안 나는 그야말로 가열차게 이것저것을 배달 주문했다. '전통의 강호' 짜장 짬뽕과 치킨은 물론이고 생선회, 초밥, 과메기, 생선 조림, 대창 볶음처럼 먹고 싶었지만 텍사스에서는 쉽지 않았던 한식부터 크로플, 딸기 샌드위치, 생딸기 우유, 터키식 디저트 카이막처럼 한국에서 지금 핫하다는 간식과 디저트까지. 때로는
"이런 것도 배달이 된다고? 이런 것도 있다고? 한국 정말 너무 좋다!"
고 감탄을 연발하며. 때로는 하루에 세끼밖에 먹지 못하는, 줄넘기에 링피트까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껏해야 거기에 한두 번의 간식 정도만 더할 수 있는 나의 지나치게 일반적인 위장 용량을 한탄하며.
그런데 나의 이 위대한 계획에 아주 약간의 차질(?)이 생겼다. 첫날에도 "2미터 거리에서 손주들 얼굴이라도 보고 가겠다"며 에어비앤비 입구에 감자탕-작은아이가 먹고 싶다고 한 것이긴 했지만 내 '먹킷리스트'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은 아니었다-을 두고 가신 엄마와 아빠가 또 음식을 놓고 가시겠다는 것이었다. 한 끼도 빠짐없이 다소 특이한 음식들로 착착 배달을 시켜 나가던 나는 갑자기 엄마아빠가 '가정식 백반'류를 갖다 주실까 봐, 차마 거절은 못 했지만 내심 걱정을 했더랬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가 두고 가신 음식 보따리에는 내가 오매불망 먹고 싶던 생굴이 들어있었다. 루이지애나 식으로 치즈를 얹지도 않고 굽지도 않고, 개당 $3 정도로 어마무시한 가격도 아닌 굴. 잔뜩 쌓아놓고 소박하게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굴. 화이트 와인보다 맥주나 소주가 어울리는. 기억하고 계셨구나.
그리고 엄마가 동봉해 놓은 떡국 재료를 열어 본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 씻고 다듬어진 마늘과 파, 건져낼 필요 없이 태블릿 형태로 만들어진 해물 육수 몇 알, 4인분 정도의 떡과 만두, 작은 그릇에 담긴 국간장과 소금, 참기름 등등.
2주간 쓰레기조차 마음대로 내놓을 수 없는 우리의 사정을 고려하고,
"아이 참, 나 배달 음식 실컷 먹을 거라고! 밥 하기 지겹다고!"
라며 징징댈 것이 뻔한 딸내미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주고 가면서도 엄마아빠는 배달해서 꼭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떡국, 그까짓 것이 뭣이 중헌디' 먹으라고 하냐고 딸이 투덜거릴까 봐,
"새해 첫날 먹어. 배달 음식점들이 다 닫을 수도 있잖아."
라고 덧붙이셨다.
며칠 후, 엄마아빠는 한 번 더 음식을 주고 가셨다. 이번에는 간장게장과 새우장을 먹기 좋게 살만 바른 것이었다. 비린내 나는 게와 새우 껍질을 우리가 숙소 안에 내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걱정되고(자가격리자는 쓰레기를 마지막 퇴거할 때에야 비로소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오면 간장게장이 제일 먹고 싶다고 한 큰 손주도 걱정된 엄마아빠가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요즘은 아예 '순살 게장'으로 판매되는 제품도 있지만, 엄마아빠는 단골 식당에서 껍질이 붙어있는 것을 사다가 일일이 손으로 까서 보내신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건 세상 어디에서도 안 파는 엄마아빠표 '밀키트'였다.
자가격리 기간이 며칠 안 남은 무렵, 지방에 사시는 시어머니로부터 도착한 택배를 열어보고 나는 살짝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스티로폼 박스에 포장된 내용물은 미역과 다시마, 국물용 멸치, 국간장, 그리고 마늘, 파 등 기본적인 식재료였으나 대부분 원재료 상태, 그러니까 내가 세척하고 손질하고 남는 부분은 버려야 하는 것들이었다.
딱 이만큼이 친정과 시가의 차이구나, 엄마와 시어머니의 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것을 그저 두 분의 개인적인 성격 차이로 생각하지 않고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차이'라고 확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머니가 나의 큰 시누이, 그러니까 당신의 큰딸에게 해다 주시는 음식들을 익히 보고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건강, 특히 먹을 것에 정성인 분이셔서 어떤 어떤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지론이 아주 확고하신 편이다. 그래서 생강과 각종 약재를 달인 물이나 닭백숙처럼 다소 특별하게 챙겨야 하는 음식부터 미역국, 된장찌개, 김치찌개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음식까지, 심지어 밥까지 해다가 큰 시누이의 집에 가져다 두신다. 밀키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완조리된 상태로, 때로는 그대로 그릇에 넣고 데우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이 힘든 '배달'을 이틀이 멀다 하고, 그것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니신다.
우리의 자가격리 숙소는 어머니가 직접 들고 오실 수 없고 택배로 부쳐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내가 만약 어머니의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었다면 미역국을 만들 수 있는 원재료-심지어 1차적으로 다듬어지지도 않은-가 아니라 다 끓여서 얼린 미역국이 왔을 것이었다. 아니면 최소한, 얼린 육수와 투하만 하면 되는 미역이 왔거나.
엄마의 밀키트를 더 나중에 받았다면 별 생각이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택배 박스를 연 순간, 이것들을 다 다듬어야 한다는 데 대한 귀찮음과 며칠간 집안에 두어야 할 음식물 쓰레기 걱정이 덜컥 들었다. 거기다 그걸 사용해서 완성될 메뉴는 미국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먹었던 미역국이었으니, 이걸 굳이 한국에서, 그것도 자가격리 기간에 해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솔직히 스쳐갔다. 비록 남편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이게 친정과 시월드의 차이야, 여봉봉. 차이가 없다고? 내가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라고 중얼거렸다.(어쩌면 남편이 나의 눈빛을 읽었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택배 상자가 싫거나 서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간 존재는 하지만 계량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던 시가와 친정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는 생각에 퍽 흥미로웠다.
세상에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본가가 불편한 경우도 있고, 오히려 시부모님과 더 살갑게 지내는 며느리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며느리에게 시가는 어려운 곳이다. 아무리 잘해주셔도 그 '잘해줌'이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손님에 대한 예의 같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내가 운이 좋아서', 혹은 '나의 시가가 매우 관대해서', '시혜적으로' 잘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의 본가에서, 내가 시가에서 똑같이 아무것도 안 하고 TV를 본다 해도 남편과 내가 느끼는 '가시방석 게이지(Gauge)'는 사뭇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남편은 '결론적으로 똑같이 일 안 하고 TV를 보지 않느냐'라고 가끔 애써 우기지만, 그게 똑같지가 않다는 건 그도 사실 알고 있다.
말하자면 ‘똑같이 부모님이 공수해다 주신 음식들'이라고 우길 수야 있지만, 시가는 원재료를 주시고 친정에서는 밀키트를 만들어서 갖다 주시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