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일을 핑계로 챙겨야 하는 죽음도 살피지 못한 채 지나가곤 했다. 그사이 죽음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의 주변에 다가와 있었다.
지금보다 젊을 때는 유명 인사의 죽음에 대해, 그 죽음 자체보다는 배경이 되는 사회적 문제나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40대에 접어들어 죽음을 더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니, 유명 인사의 죽음도 더 가까이 느껴진다. 죽음은 그 어떤 부와 권세를 누리던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적어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그 죽음이 공평하지 않다. 어떻게 살고, 마지막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걸까.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는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나 보다. 리즈 트러스가 새로운 영국 총리로 당선된 직후, 엘리자베스 2세와의 면담 사진을 보고 내심 충격을 받았다. 불과 몇 달 전, 재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 때와 비교하더라도 너무나 쇠약해 보이는 여왕의 모습은 웃음으로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인도 아니건만 왠지 허한 마음에 보다 말았던 영화 The Queen을 봤다. 사흘이 지난 오후 BBC를 켜니 온종일 여왕이 위독하다는 보도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서거가 알려졌다.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영국 왕실을 세금 루팡처럼 받아들이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왕실이 유지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영국 왕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 콘텐츠이고, 점진적인 변화의 상징이고, 영연방의 구심점으로서 영국인의 마음속에서 영국을 이웃과 구별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영제국의 마지막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는 'The Queen'이다.
여왕의 일생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곳에서 얘기를 하고 있으니 몇 달 전 영국 곳곳이 유니언 잭으로 물들고, 아이 학교에서는 왕가의 색상(파랑, 빨강, 흰색)으로 코스튬을 입고 오라고 했던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되새겨본다. 플래티넘 주빌리 시기, 행사와 파티 광인 영국인들은 그저 즐길 핑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영국 왕실은 결국 거대한 컨벤션 산업의 피고용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정도로 시골 구석까지도 파티 분위기였다. 우리 동네에선 파티를 좋아하는 집이 이웃들을 초대해서 퀴즈와 빙고 게임을 진행했는데, 퀴즈 문제가 여왕이 키우는 동물, 즉위식에 썼던 모자의 재료 등등 상상을 초월하게 매니악한 것들이었다 (영국인 입장에서도 매니악하긴 했던 것이, 다들 찍어서 맞히다 보니 이방인인 내가 상금을 탔다). 개인주의적인 영국에서 이런 것들이 퀴즈로 나오다니 여왕은 참으로 impersonal한 존재였나 보다. 플래티넘 주빌리 전후로 영국인들의 왕실에 대한 생각을 살짝 들을 수 있었는데, 익히 들어오던 대로 찰스 왕세자는 인기가 없고 그 이유는 'Queen Camilla'를 생각하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이방인인 나로서는 능력이나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가정사 문제로 왕세자에 대한 평판이 모아지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어쩌면 거기까지가 입헌군주제인 영국에서 왕실의 역할일 터다 (그 연장선에서, 찰스에 대한 비호감은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반감도 섞여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주빌리 행사는 당분간 영국에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들 했다. 여왕의 주빌리는 이제 마지막일 테고, 찰스 왕세자는 이미 73세이니 25년(Silver) / 50년(Golden) / 60년(Diamond) / 70년(Platinum)을 기념하는 주빌리는 쉽지 않을 것이고, 왕실이 이어진다면 윌리엄 대에 가능하지 않겠냐고. 뭐랄까, 마음 같아선 80주년도 기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여왕의 건강 상 이번이 마지막 주빌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고, 그래서 더 화려하고 떠들썩하게 보내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70주년이 되는 해에 의회 시정 연설을 아들에게 넘기고, 신임 총리까지 맞이한 후 스코틀랜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재위 기간에 왕실 존속이 위태로운 시기도 있었지만, 어쨌든 민주주의의 시대에 70년 간 재위하면서 아이콘이 되었다. 개인의 삶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격동의 시기를 보내온 여왕, 그래서 republican도 그 죽음은 애도한다는 여왕에게 나 역시 왕정은 지지하지 않지만 한 인간으로서 조의를 표한다. 물 밑에서는 온갖 이권을 둘러싼 움직임이 부글부글 끓고 있겠으나, 한 발 떨어진 이방인 관찰자에게 지금 영국은 예고된 철도 파업까지 여왕의 장례식을 앞두고 잠시 멈출 정도로 너무나 영국스럽게,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플래티넘 주빌리에 패딩턴 곰과 티타임을 하는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7UfiCa244XE)을 찍을 만큼 유연한 연륜이 있었던 여왕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공식 트리뷰트 장소인 그린파크(버킹엄 궁전 앞)에 패딩턴 인형과 마말레이드를 엄청 가져다 놓았나 보다. 패딩턴과 마말레이드는 이제 그만 가져와주고 포장되지 않은 꽃과 편지만 가지고 와달라는 기사가 나왔다. 여왕의 삶은 부럽지 않지만, 죽음은 부럽다. 하지만 그 죽음은 인내와 고뇌로 얻어낸 것이겠지.
플래티넘 주빌리 직전 짧았던 파리 나들이의 마지막 날, 오후 기차를 앞두고 들린 곳은 다소 생뚱맞은 앵발리드였다. 실은 가고 싶었던 들라크루아 기념관은 시간이 안 맞았고, 녹초가 된 우리 상태를 감안할 때 가보면 좋은데 다 돌아보지 않아도 덜 아쉬울 것 같은 곳을 택한 것이기는 했다.
나폴레옹이 잠들어있는 앵발리드는 각종 군사 관련 박물관도 있어, 캐리어를 끌고 간 우리에게는 너무나 광대한 장소였다. 짐 보관소까지 한참을 가야 할 정도로. 그러나 전체 건물이나 광장이 아무리 크다 한들 나폴레옹의 무덤 앞에서 느낀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바깥의 돔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화와 거대한 조각들이 지켜주고 있고, 주변에 아들과 형제와 다른 군인들도 있다는데, 거대한 7겹의 관을 보고 슬픔이 몰려온 것은 왜일까. 돔 성당의 거대한 공간에 화려함 만큼 허무함이 들어차 있는 것만 같아 얼른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폴레옹의 유언은 "나의 몸뚱이는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 국민 속, 센 강기슭에 묻히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잘 모르겠다. 카루젤 개선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할 에뚜왈 개선문을 만들라고 했고, 대관식에서 왕관도 직접 썼다고 한 그이니 센 강기슭에 이런 방식으로 묻히고 싶었던 것일지. 아니면 유럽에 혁명 정신을 전파한 당사자로서, 내지는 파리를 그리워하는 한 인간으로서 그저 센 강기슭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지. 나폴레옹의 마지막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의 무덤은 애도보다는 '구경'에 맞게 설계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평범한 행인 1인 내 입장에서는 이 무덤이 레닌 다음으로 불행한 무덤이 아닐까 싶었다 (무덤을 간다면 차라리 팡테옹을 갈 것을 그랬나 보다).
행복은 그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얻게 되는 부산물이라는데, 죽음 역시 부산물일 터이다. 죽는 그 순간이 외롭지 않다면 잘 살았다 할 수 있을 테고, 이미 망자가 떠난 자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얘기해두어야겠지. 머리로는 아는데,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소중한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 지독히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