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여름방학 중 가급적 BBC를 챙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제자 방송에는 40년 만에 최대치로 전망되는 물가 상승, 30년 만에 최고 규모의 철도 파업이 주요 뉴스였는데, 이와 함께 나의 이목을 끈 것은 Windrush day 행사 중계였다.
Windrush day는 1948년 6월 22일부터 영국 식민지에서 본토로 이주한 'Windrush 세대 (그들이 타고 온 Windrush호에서 명칭을 따옴)' 이민자들을 노고를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고 한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국가 재건을 위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이민자를 받아들여 제철ㆍ식품 등의 2차 산업을 비롯해 NHS 서비스의 인력 부족을 해결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Windrush_Day). 이민을 장려하기 위하여 1973년 규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구 영국 식민지에서 오는 이주자들에게는 입국 관련 서류를 면제해주었다.
그러나 이주자들은 영국에 정착하는 동안 민간 사업장에 취업을 못하거나 펍이나 클럽 출입을 못하는 등 차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카메론-클레그 연립정부의 불법 체류자에 대한 '적대적 환경' 정책으로 인하여 Windrush 세대가 피해를 받게 되었다. 신분 증명에 필요한 서류가 없던 이들은 수십 년 간 영국 땅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졸지에 대출이나 부동산 계약 등의 필수적인 활동에 제약을 받고, 일부는 가본 적도 없는 고국으로 강제 송환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7~2018년 이것이 대대적인 사회문제가 되면서 내무장관이 사임하는 'Windrush scandal'이 있었고,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기로 하였으나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C%88%EB%93%9C%EB%9F%AC%EC%8B%9C%20%EC%8A%A4%EC%BA%94%EB%93%A4). 그리고 2018년부터 Windrush day를 기념하게 되었다.
BBC에서는 흑인 대표를 비롯해 윌리엄 왕자가 연설을 하고 워털루 역에 Windrush 조각상을 설치하는 모습까지 상당히 장시간 행사 중계를 해주었다. 윌리엄 왕자가 Windrush Scandal에 대하여 유감을 표하며 "Diversity is what makes us strong"이라고 말했듯, 행사 모습만 보면 영국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같다 (윌리엄 왕자의 지난 카리브해 방문은 반응이 그리 안 좋았던 것 같지만). 현 런던 시장은 파키스탄계 무슬림이고, 10월은 Black History Month로 지정해서 각종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영국에서 인종차별을 느끼는 순간은 분명히 있지만, 교육이 엄격해서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공중파에서 대놓고 차별적 유머를 방송하는 한국보다는 훨씬 포용적으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영국에서는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르완다와 개발 원조를 대가로 난민을 보내는 협약을 체결하고, 지난주에 실제 보내려 했으나 출발 직전에 유럽 인권법원의 개입으로 취소된 적이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난민을 르완다로 보내는 계획을 다시 진행할 계획이다. 최근 도버에는 난민 신청자가 쇄도하고, 이로 인해 인신매매까지 벌어진다니 영국 정부의 고심이 짐작가는 바이지만, 동시에 브렉시트의 저변에 깔려있는 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이민과 난민 문제는 복잡하다. 비단 원 국적자와 이민자 간만이 아니라 이민자 출신지나 교육수준 간에도, 이민과 난민 간에도, 다양한 인터페이스가 존재한다. 세미나 시간에 인종 간 소득불평등 같은 주제를 다루다 보면 한국은 어떠냐는 물음이 꼭 나온다. 아직 한국은 이민자가 적긴 하지만, 곧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답하곤 했다. 우리보다는 이민의 역사가 길고, 포용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온 영국의 양면성을 보면서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