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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너머 Feb 08. 2023

내가 아는 것은 오직 한 줌의 세상

퀴어를 she나 he로 부르면 안 된다

논문을 진행하다 보니, 당초의 지도교수는 양적 연구방법에 대한 지도를 해줄 수가 없어서 방법론을 봐줄 추가적인 지도교수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양적 방법론 전문가 중 한 명(A교수)에게 이번 학기 수업을 듣고 있어, 어렵지 않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추가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Mphill이 아니라 MA라서 그런 건지 영국이 그런 건지, 지금 석사과정은 예전에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다기보다는 내 연구를 지도교수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서 진행하는 정도의 느낌이다). 


두 명의 지도교수와 논문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학과와 우리 과정의 논문진행을 총괄하는 교수(B교수)에게 메일로 보냈는데, B교수에게 알려줘서 고맙다는 얘기와 함께 이런 답장이 왔다. "A를 she라고 지칭하면 안 되고, they라고 해야 돼". 


아뿔싸. 그러고 보니 A교수는 퀴어였다. 퀴어에 대해서 나름대로 편견이 적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는데 막상 나의 감수성은 꽝이었다. 당연히 생각했어야 하는 문제인데 나이와 함께 머리도 굳어버렸나 보다. A교수에게 실수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메일을 보내고 구글 검색을 해보니, queer pronoun에 대해서 여러 웹문서들이 나온다. 퀴어에 대한 대명사로는 앞서 B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주격 기준으로) they를 단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 밖에 ze, per, 또는 그냥 그 사람의 이름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출처: https://uwm.edu/lgbtrc/support/gender-pronouns/). 생각해 보면 그냥 명확하고 개인을 존중할 수 있도록 이름을 쓰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실질적인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나 젠더 갈등은 별론으로 하고, 언어 측면에서는 대명사에서 성별 구별이 덜하고(물론 일제강점기 이후로 '그녀'를 쓰긴 하지만) 대명사를 덜 사용하는 한국어가 나은 점이 있다. 


영국에서 퀴어는 여전히 소수자이지만 (특히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런던에 사는 지인의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카페 앞을 지나가면서 그 지인이 게이 커플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페테라스에서 햇살을 받으며 브런치를 즐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따사로워 보였던 기억이 난다. 이걸 뒤집어보면 그만큼 내가 의도치 않게 실수할 가능성도 높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실수할 가능성이 낮은 사회일 수록 더 높은 감수성이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이번 일로 나의 인식체계에 대해서 반성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퀴어 대명사에 대해서 알려준 사이트에서는 실수한 경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It’s okay! Everyone slips up from time to time. The best thing to do if you use the wrong pronoun for someone is to say something right away, like “Sorry, I meant (insert pronoun)."
If you realize your mistake after the fact, apologize in private and move on.

모두가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 조금의 위안은 된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세상은 한 줌에 불과하니, 점점 더 굳어갈 머리와 감수성을 더 말랑말랑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마침 영국에서 2월은 LGBT+ History Month (LGBT: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인데, 이 참에 reading week 동안 퀴어에 대한 책이라도 한 권 읽어봐야겠다. 소수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 소수자가 기성사회에서 어떤 불편을 겪는지를 알아야 하는 법일 테니까. 그래야 영국의 퀴어들보다 더 힘들 한국의 퀴어에게 보내는 나의 응원도 더 진정성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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