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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Jan 18. 2023

글로 맺어진 인연

어찌 쓰지 않을 수 있는가 



"자니...?"


구 남친의 구질구질한 대사가 아니던가! 구차한 이 단어를 맥주 한잔 취기에 보내고 말았다. 

이불 킥 오백 번 하게 만들었을 문자가 헤어진 우리 사이의 오작교 노릇을 했다. '자니'로 시작해 '함께 이불 덮고 자는' 부부가 되었다. 


인연의 시작은 문자였고 사랑에 모터를 달아 준 것은 ‘교환편지장’이었다. 

만나고 전화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글로 만나는 남편의 모습은 새로웠다. 뭐랄까, 좀 더 지적인 문학소년 같다고 할까? 글이 주는 매직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 사람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기도 하지만 원래보다 더 멋지게 포장해 버린다. 새록새록 사랑을 피워낸 고마운 노트지만, 지금은 다시 펼쳐보기 무서워 책장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다. 암묵적인 접근 금지 물건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날, 우리 둘 다 구운 오징어 마냥 오그라들지도 모르겠다. 


불타는 사랑으로 이어진 부부의 연이건만 왜 싸움의 불구덩이가 되는 순간이 더 많아지게 되었을까. 하나로 합쳐져야만 사랑이 지속되는 게 아니었다. 평행선을 걸을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절실 해졌다. 남편은 옷 방을 일터로, 나는 거실 한 구석과 블로그에 공간을 만들었다. 일을 해야 할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우린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자유롭게 서로의 영역에 들어간다. 블로그 이웃이자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회원이다. 단체 문자를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10년이 훌쩍 넘게 산 부부이지만, 글로 보는 모습은 여전히 새롭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이런 표현을 쓴다고?' 놀랄 때가 종종 있다. 5분전의 냉랭함을 잊고 뿌듯함이 생길 때도 있다. ‘이 사람이 내 남편입니다! 


글은 싸움의 중재역할도 톡톡히 해주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글로 푸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나 혼자서 씩씩 대는 건 여전히 비슷하지만 결과는 달라졌다. 감정 섞인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빨리 나만의 방에 들어간다. 책상에 앉아 블로그 로그인을 한다. 집이 아니라면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 으다다 내뱉고 싶은 말을 타이핑한다. 이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며 쓰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이다. '나는 바로바로 그릇이 치워지지 않은 부엌 식탁을 바라보는 게 너무 싫다. 결국엔 내 숙제가 쌓여 있는 느낌이다. 나보고 일하라며 일부러 놔둔 기분이 든다. 화가 나서 설거지를 하는 동안 거칠게 우당탕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신랑이 반응한다...' 

화난 상황을 글로 풀어내면 어느새 마음이 진정된다. 나 혼자 떠들고 소리쳐도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된다. 무엇보다 제3자로 싸우는 상황을 바라볼 수도 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얼굴 붉힌 일이 사실 별 일 아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대부분 내 잘못인 경우로 마무리되곤 한다. 대체 왜 그럴까) 

글쓰기를 마친 후에는 언제 화를 냈냐는 표정을 지으며 현실로 복귀한다. 언성을 높일 일이 줄어드니 우리 모두에게 이보다 더 좋은 중재자는 없다. 


말은 내뱉으면 사라지기라도 하지만 글은 박제가 된다. 화석처럼 남아 오랜 시간 떠돌아 다닌다. 물론 쉽게 수정과 삭제가 가능하지만 많은 신중함이 필요하다. 글 한 줄, 문자 하나가 누구와 어떠한 인연을 맺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도 있고 사랑을 이어주기도 한다. 꿈을 키우고 오래도록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는 일등공신도 되어준다. 그러니 어찌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주방을 등지고 나만의 방에서 신나게 글 쓰는 와이프를 둔 남편은 글쓰기에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글로 맺어진 인연과 싸움 중재가 되는 상황에 고마워하고 있을까. 더할 나위 없이 나는 만족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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