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언니에게 ‘나 이혼하려고 한다’라고 말했을 때 언니가 그랬다. 아이는 아빠가 키우게 하라고. 아이가 클수록 네가 힘들 거다, 혼자 애 키우면 힘들다, 아들이라 아빠랑 있는 게 낫다, 애가 크면 엄마 찾아오게 되어 있다 등등의 말들. 그때는 그저 ‘무슨 소리야? 내 아이를 내가 키우지 않으면 누가 키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오롯이 육아를 감당하겠다는 결심의 무게가 요즘 좀 버겁다. 아이에게 내가 없으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를 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한다.
그 언니는 딸하나를 키우고 있다.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참 순했다. 잘 울지도 않고 독립심도 강해서 혼자 잘 놀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방과 후 수업과 돌봄 교실 등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지금 중학생이 된 그 아이는 벌써 기숙학교에 다닌다. 벌써 육아전쟁에서 벗어난 것 같은 언니가 참 부럽다. 반면 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예민해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극 내향인인 나는 밖으로 꺼내놓을 에너지가 없는데 육아는 없는 에너지를 자꾸 내놓으라 했다. 나는 자꾸만 내 안으로 숨고 싶었다. 아이의 울음도, 육아도 나에겐 버거운 것이었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만큼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시달렸다. 집안일이 눈에 보였고 하고 싶은 공부, 독서, 취미생활 등에 항상 목말랐다. 아이에게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는 것이 나에겐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육아란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었고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난 참 외로웠던 것 같다.
남편이란 사람은 지친 나에게 항상 무언가를 더 요구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관심과 내조, 또는 대리효도였던 것 같다. 동시에 그는 나의 자존감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곤 했다. 그는 교묘한 말로 친정 부모님을 깎아내리고 무시했다. 나는 ‘집에 있으면서 살림도 육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만큼의 내공이 그때의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상처받고 반성하고 분노했다. 소소한 기쁨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우울한 기분의 파도는 항상 그 기쁨을 덮어버렸다.
아이와 나는 감정적으로 대립할 때가 많다. 나는 잔소리를 하다가 화를 내기 일쑤고 아이는 내 눈치를 본다. 반항을 하고 버릇없이 굴다가 또 혼이 난다. 아이와 잘 지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아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한다. 아이를 도와주어야 하는데 내 자신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느라 아이에게 쏟을 시간과 애정이 모자란다. 아이가 딱한데 보듬어줄 힘이 없다. 나는 이렇게 혼자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삶을 몇 년이나 지속해 왔던 것인지, 쓰러지지도 못하고 아프지도 못하고 마음껏 기뻐하는 법을 잊은 채 그저 꾸역꾸역 살아나갈 수밖에 없던 시간들. 아이와 나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