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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말 Nov 12. 2022

가출이라고 해야 할까

 남편과 더 이상 같이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고 있었다. 한 집에 같이 있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솟구치고 우울해졌다. 내 기분이 나쁘면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힘이 든다. 더 보채고 눈치를 보고 불안해한다. 평일에는 그와 마주치는 시간이 적으니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신경이 곤두섰고 나는 수시로 폭발했다. 아이는 내가 그와 대립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어떻게든 싸움을 말려보려 애를 썼다. 조그만 아이가 내 다리에 매달려서 '엄마, 하지 마, 그만해, 참아'를 연발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눈빛이었다. 나는 아이의 공포와 불안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싸움을 멈출 수가 없었다. 상대는 비겁하게도 내 탓을 했다. "애가 불안해하잖아, 당신 지금 제정신 아니야." 라며. 나는 제정신이 아닌 게 맞았다. 그는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했고 나는 그것이 답답해서 따져 물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무시당하거나 별 일 아닌 것으로 취급될 때는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나도 아이도 완전히 무너져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가 해외 장기 출장을 떠나기 열흘 전쯤이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리면서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였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배정을 받아 예비소집일까지 다녀온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는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아이가 일단 초등학교에 입학해버리면 교우관계도 그렇고 생활환경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집에 방이 하나 남느냐고, 거기로 가도 되냐고 했다.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동생이 그러라고 했고 그렇게 결심이 굳어졌다. 그때부터 주변정리를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아이들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있던 나는 아이들의 부모님께 레슨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남편이 출장을 떠나자마자 짐을 싸기 시작했다. 평소에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미니멀 라이프와 가까워지지 못했기에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았다. 지금 당장 쓸 물건만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이 집에서 나의 흔적을 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부피가 큰 가구들이나 책, 장난감, 그릇, 가전제품 등을 아파트 내 중고마켓에서 팔거나 나누며 하루에도 몇 번씩 거래를 했다. 나머지 물건들은 종류별로 분류해서 큰 상자에 포장했다. 그가 출장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짐을 싸야 했다. 그가 불시에 돌아온다면 내 모든 계획과 결심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가까이 사는 엄마가 매일 와서 도와주셨는데도 짐을 싸는 데 2주가 넘게 걸렸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온몸의 근육이 쑤실 정도로 집안을 뒤집어엎으며 25개 정도의 박스를 택배로 부쳤다.  아이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와 할머니 옆에서 약간은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아이에게서 들었는데 그때는 그냥 여행 가는 줄 알았지 제주도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아이가 어리다고 생각해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주어도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는 날 차에도 짐을 꽉꽉 채웠다. 완도까지 차를 몰고 간 후 배에 차를 싣고 제주도로 가야 했다. 엄마는 벌써 가냐고, 며칠 더 있다 가도 되지 않냐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언제 그가 돌아올지 몰라 불안하니 빨리 가야겠다고 했다. 엄마는 몇 년 전에 내가 사는 근처로 이사를 오셨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이왕 이사를 가야 하니 나와 가까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이곳을 떠나려고 하니 마치 내가 엄마만 남겨두고 떠나는 것 같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여유 부릴 시간이 없어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출발했다. 완도로 가던 중 어느 휴게소에 잠깐 섰는데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의 구름이 있었다. ㄱ자, ㅋ자 구름이었다. 아이와 나는 무슨 이런 모양의 구름이 다 있냐며 신기해했다. 우리를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한 그 구름은 'ㅋㅋ구름'이라고 이름 붙였다. 서너 시간 정도를 운전해 완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배에 차를 실었다. 이렇게 큰 배에 차를 싣는 건 처음이어서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배를 타자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이들 장난감이 있는 놀이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내릴 때쯤 되어서 안마의자가 있는 휴게공간에 가서 2000원을 넣고 안마를 받았다. 짐 싸느라 뭉쳤던 근육이 풀어지면서 너무 시원했다. 한 번 더 돈을 넣으려는 순간 도착 안내방송이 나와서 객실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을 정도로.


 드디어 도착이다. 배의 문이 열리고 우리는 다시 차 안에서 나갈 차례를 기다렸다. 이곳이 앞으로 내가 살 곳이라고 생각하니 여행지로 바라보던 제주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떠나온 것이 홀가분하면서도 착잡했다. 여행을 온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출장에서 돌아와 내가 집을 나온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일단 더 이상 그와 한 공간에 있지 않아도 되는 점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조금 트이는 느낌이었다. 배에서 내려 동생을 만나 저녁을 같이 먹고 집으로 갔다. 이미 도착한 택배박스들이 방에 쌓여있었다. 내가 지금 순간이동을 한 것일까? 내 짐은 다 여기에 있고 이제 여기서 적응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얼떨떨했다. 제주도에 여행을 올 때마다 한 번쯤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올 줄이야. 인생은 정말 예측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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