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량 제품의 매력은 일단 용량 대비 저렴한 가격이다. 식구가 많거나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대용량 제품을 많이 구매하는 것 같다. 일단 양이 많으면 심리적으로도 덜 불안하다. 왠지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온라인으로 소용량 제품을 주기적으로 구매하는 경우엔 배송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대용량 제품을 사는 것이 경제적이고 시간도 절약해준다. 환경 보호 차원에서 대용량 제품을 사기도 한다. 소용량 제품은 대체로 포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포장이 간단한 리필형 제품을 사서 기존에 갖고 있던 용기에 담아서 쓰면 쓰레기가 줄어든다. 이밖에도 사람들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대용량 제품을 구매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용량으로 산 물건이나 음식을 다 쓰거나 먹지 못하고 버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돈과 시간을 절약하려고 산 대용량 제품이 때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다. '빨리 처리해야지, 다 써서 없애고 새로운 물건을 사야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면 다 쓰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물품으로 대체되어 잊히는 경우도 많다. 처음 그 물건을 샀을 때의 마음 상태와 달라진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가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
또한 대용량 제품들은 확실히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여유공간이 충분할 경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물건이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자꾸 벗어나고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까지 침범한다면 적정 용량을 넘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요즘같이 집값이 비싼 시대에는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을 최대한 줄여야 사람이 활동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공간이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되면 그 공간은 활용도가 낮아지고 단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 되고 만다. 그러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주거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 제품이 마음에 들면 똑같은 물건을 여러 개를 구매하곤 한다. 다음에는 같은 물건을 구입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고 속옷, 양말 같은 경우 디자인을 통일하면 관리가 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자나 냉동식품 등 군것질거리도 넉넉히 사두는 편이다. 먹어보고 맛있었던 건 한꺼번에 여러 개를 구매해야 마음이 편하다. 세탁세제도 대용량으로 구입한다. 자주 구매하지 않아도 되어서 훨씬 편하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소비 패턴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주로 식품의 경우 그런 일이 많이 발생했는데 먹다가 물려서 더 이상 안 먹는 경우도 있었고 맛이나 상태가 변해서 못 먹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음식에 질리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대용량 제품이니 많은 양을 꺼내어 먹거나 조리하게 되어 더 빨리 질리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잘 입던 옷이나 속옷도 어느 순간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져서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을 포함해 같은 종류를 모두 비워내기도 했다. 물건뿐만 아니라 요즘 점차 늘어나고 있는 구독형 서비스나 온라인 강좌 이용권의 경우도 비슷한 것 같다. 꾸준히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6개월, 1년 치를 구매하지만 상황이 바뀌어서 필요가 없게 되거나 관심사가 바뀌어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서비스 이용권은 형체가 없어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것뿐이지 소중한 돈을 들여 구매한다는 점에서는 물건과 같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한때 맛있었던 음식이 나중에도 계속 맛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 나에게 가치 있고 기쁨을 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필요가 없거나 하찮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냉파(냉장고 파먹기)를 한다며 오랫동안 묵힌 재료들로 요리를 해보려고 애쓰는 경우 이미 재료 자체에 흥미가 없는 상태라 음식에 대한 애정보다는 의무감으로 요리를 하게 된다. 그렇게 대충 요리를 하면 별로 맛이 없고 억지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된다. 만드는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결국은 버려지게 되어 이중으로 낭비를 하게 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필요하거나 좋아하는 물건이 미래에도 계속해서 같은 가치를 가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미래의 나는 그동안 쌓인 경험 때문에 물건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물건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착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현재의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서가 아닐까? 현재 내가 어떠한 물건으로 인해 기쁨을 느낀다면 그 기분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나도 같은 감정을 느꼈으면'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의 내가 미래에도 똑같이 행동하고 느낄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가치관이 변하기도 하고 라이프 스타일이 변하기도 하고 병에 걸리거나 이사를 갈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가 있다.
음식이나 물건은 '소진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 가치가 떨어진다. 음식을 먹을 때는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하고 물건을 쓸 때도 감사함과 설렘 등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으면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잘 체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 뇌에서 일단 거부하는 음식은 몸에서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옷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꾸역꾸역 입고 나가면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지지 않던가? 나 자신에게 보다 솔직해져야 한다. 싫은 것을 애써 좋다고 합리화해봤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싫다'라고 느끼고 있다. 그걸 부정하는 것은 필요 없는 물건에 대한 미련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필요 없는 물건이 쌓이게 되면 정작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대용량 제품을 살 때는 한 번 더 생각하자. 지금 좋아하는 것을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더불어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도 냉정하게 바라보자. 만약에 어떤 물건이 당장 내 눈앞에서 치워진다면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해보자.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대용량 상품을 되도록 구매하지 않는 것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대용량'이라는 말 자체가 미니멀 라이프와는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만 필요 없는 것들을 비우다 보면 전체적인 소비가 줄고 살림이 줄기 때문에 대용량 상품이 이전보다 거대해 보이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대용량 상품이 주는 이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무조건 '대용량 제품은 안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과 패턴을 찾아가는 것이 보다 융통성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치더라도 또다시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하는 실수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건을 구매하기도 하는데 그 수많은 선택이 모두 완벽할 수는 없으며 모든 물건을 소용량으로 구매하는 것 또한 때로는 비현실적이고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도 미니멀 라이프의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