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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Jul 02. 2024

지점에서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는 때가 있다. 이른 아침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난타에,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우울한 기분에 빠져드는 날이다. 괜히 기분 전환을 해보겠다고 신나는 음악을 틀어재끼지만, 오히려 그 노래에 내 기력을 다 뺏겨 버리는 마법 같은 날. 집을 나서기 전부터 홀딱 젖어버릴 신발과 바지를 미리 걱정하는 탓도 있겠지만, 여름 장마의 시작점에서부터 내 어깨에는 습도가 너무 무겁게 얹혀있다.


그럼에도 일은 멈출 수 없다.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내 우산꽂이에서 가장 큰 우산을 찾았다. 골프우산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언젠가 어디에서 잃어버렸다. 덕분에 내가 가진 가장 큰 우산은 정말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비가 내렸을 때 급하게 샀던 싸구려 비닐 장우산 밖에 없었다. 점심쯤 집밖으로 나올 때에는 이미 아침보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고, 바람도 더 세져 있었다. '과연 내가 이걸 버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발걸음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 또 다른 버스로 한 번 환승을 해야 했다. 다음 버스는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마을버스였기에, 배차간격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불안감도 은연중에 있었다. 그리고 꼴좋게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우산에도 한계점이 있다. 너무 많은 비는 우산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손잡이까지 물이 쏟아지게 만들고, 너무 거세게 부는 바람은 우산을 쓰고 있음에도 온몸을 젖게 만든다.


결국 한계점이다라고 생각이 들 때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다. 어느 순간의 목적지는 늘 또 다른 순간이 되어서는 경유지가 된다. 결국 머물렀다가 돌아가야 하는 곳이라면. 이미 지칠대로 지친 우산을 쓰고 나는 또 다른 경유지로 향한다. 신발 사이로 들어온 빗물에 질척이는 발걸음이다.


그렇게 두 번째 경유지에서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미 다소 비가 수그러든 후였다. 너무 지친 우산에게 잠시 쉴 틈을 주고 여우비를 맞으며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눅눅함 속에 시원함이 있었다. 지하철에 올라 꽉 찬 사람들 사이에서 생각했다. 사람들이 지하철 1량에 탈 수 있는 한계점은 어디일까. 이미 임계점인 것일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 때쯤, 집 근처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임계점은 오지 않았다.


출구까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저 멀리 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비는 그쳤을까, 아니면 아까처럼 다시 세차게 내리고 있는 걸까. 기대감인지 아니면 불안함인지 모를 감정을 안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평소였다면 아득바득 걸어서 올라갈 에스컬레이터였지만, 그냥 안전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천천히 그리고 힘 있게 에스컬레이터는 내 하루를 짊어지고 올라가고 있었다. 경유지의 어느 지점이었다. 여전히 임계점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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