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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Dec 04. 2023

다시 키보드를 누르며

2023년 10월 어느 월요일의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울, 혼자 삽니다>를 쓰기 위해 퇴근 후 카페를 찾아 노트북을 켰다. 나름의 목적이 있어 이 글을 쓰고 있었기에 꼭 수요일 마감을 지키려 노력하는 편이어서, 월요일이면 운동을 가지 않고 글을 쓰려고 했다. 그래서 그날도 변함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내 서울살이에 대한 나름의 이야기들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맞다. 모든 일은 늘 갑자기 일어난다. 퓨즈가 끊긴 것인지, 전선이 잘린 것인지, 글을 쓰다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을 쓸 때는 늘 끊어짐 없이 후루룩 써나가던 나였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끊김은 갑자기 두꺼비집이 내려간 PC방과 같았다. 당황스러웠고 암흑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 것처럼 두려워졌다. 다행히 폭력성은 발현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너무 혹독하게 머리를 굴렸나 싶어서 한 주의 연재를 쉬고, 겨우 하나의 글을 완성했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쓸 소재들을 기억 속에서 끌어 모아서 다음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허나 애석하게도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한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했다. 단 하나의 단어를 쓰고 지웠다를 반복하고, 겨우 한 문장을 완성했다 싶었을 때 아예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머릿속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고민한 것도 아니었다. 그 반대로, 기억 속에서 소재들은 끌어올렸다만 그걸 문장으로 만들기가 덜컥 두려워졌다가 적확하겠다. 그리고 그보다 깊숙이 들어가서 말하자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게 어느 순간 불가능해졌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런 와중에도 돈벌이를 위한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다. 돈벌이를 위한 글쓰기라고 하는 건, 최대한 나의 사견을 제하고 쓰는 것이었기에 편한 거였나. 답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더 이상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막막함 속에서 나는 저 머나먼 우주의 심연 속 버려진 인공위성의 쓸모없는 부품처럼 유영만 하고 있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딘지도 모를 막막함이었다. 그 순간 누가 ‘잠시 쉬고 오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해도, 나는 그 말 역시 재림예수를 봤다는 어느 사이비 종교의 허언처럼 믿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미지의 두려움은 삶의 지속이 죽음이라는 단절 탓에 끊기는 것과 비슷했다. 그야말로 암울했다.


나는 잠시 글과 결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일적으로 봐야 하는 글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글도 읽지 않았다. 읽고 있던 책도 던져뒀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군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혼자 여행을 떠나는 걸 굳이 반기지 않지만 그때는 그저 ‘떠나고 싶다’라는 감정만 가득했다. 글과의 결별을 결심하면서 나는 서서히가 아닌 급격하게 시들어갔다. 작열하는 태양의 더위 속에서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은 사막 위의 낙타처럼 혀를 내두르며 말라갔다. 그래서 군산에 간다면 어떤 오아시스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이 신기루라도 목적이 있다면 목적성을 잃은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원동력이라도 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군산행을 결정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장 힘들 때 보던 영화가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여서이기도 했다.

군산에서의 숙소였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계획은 하나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 나온 숙소에 간다’ 뿐이었다. 그 이외의 일정은 단 하나도 세워두지 않고 평일을 골라 무작정 떠났다. 덕분에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를 향하던 나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에서 등장했던 명궁 칼국수 간판을 보고 택시 기사님에게 “그냥 여기서 내려주세요”라고, 소설 <오발탄>의 철호처럼 말할 수 있었다. 아직 좀 더 가야 하지 않냐는 택시 기사님의 말에 “밥 먹고 가려고요”라는 말만 남기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작정 밥을 먹었고, 걸어서 숙소로 향했다. 이후의 여행이라고는 다 무계획이었다. 그냥 발걸음이 끌리는 대로 향했다. 목적지는 없고 경유지만 가득했다.


그러다 밤이 되어 한 술집에 홀로 들어갔다. 아무 손님 없는 한적한 술집의 바에 홀로 앉아서 TV에서 나오고 있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텐더가 “혼자 여행 왔어요?”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물음 밖에 없었다. “왜 내가 글을 못 쓰고 있지?”였다. 정답 없는 문제를 계속 풀려고 하는 건 의미 없는 발악에 불과했지만, 그렇게라도 붙잡고 있다 보면 정답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만 가지고 있었다. 맞다. 계속 나오는 단어들처럼 나는 막연했고, 막막했고, 답답했고, 두려웠다. 이런 답답함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해답을 던져줄 것만 같이 바텐더가 말을 걸어왔다.


당연하게도 해답은 얻지 못했다. 그 바텐더가 내게 해준 말이라고는 ‘군산은 어디 장소가 좋다’ ‘어느 식당의 짬뽕이 맛있다’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다 가게의 단골손님 두 명이 바 앞 의자 위에 앉았고, 바텐더의 관심은 그들에게로 옮겨갔다. 나는 그저 술잔에 찬 술만 비우면서 시간을 죽였다. 오래된 일본식 가옥이 가득 찬 골목에서 또 하나의 시간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의미 없는 위로만 속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네 잔의 술을 비웠을 때쯤이었나. 이미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순간, “괜찮으면 자리 좀 당겨서 같이 마셔요”라는 바텐더의 말이 들려왔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있었기에, 흔쾌히 나는 단골들과 합석을 하게 됐다.


남자 네 명이서 하는 얘기란 다 거기서 거기인가. 바텐더는 내게 “여자 친구가 있냐”라고 물었고, 나는 씁쓸하게 미소만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서는 그는 갑자기 내게 자신이 가진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을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고민도 산더미인데, 남의 고민까지 들어주고 있어야 하나라는 고약한 마음이 들었지만 귀만 기울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자 단골 두 명도 연애 고민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마치 귀뚜라미가 메뚜기에게 귀뚜라미 울음소리 내는 방법을 묻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나는 거기서 더 시답잖은 조언이라면 조언이고, 헛소리라면 헛소리인 말만 던져댔다. 그러는 동안에 네 명의 남자들은 조금씩 술에 취해갔다. 취기를 빌려 나는 목구멍에서 탁 막혀서 나오지 않았던 말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고, 어차피 다시는 못 볼 사람 같았다. 게다가 술이 있다면, 할 수 없던 말도 돗자리가 깔린 것 마냥 술술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나는 ‘혼자서 취미로 글을 쓰는데 갑자기 글이 나오지 않는다’ ‘이게 언제쯤부터 가지고 있는 고민들 때문인지, 그냥 체력을 너무 소비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사실 글을 쓰는 목적성을 이제 잃은 걸지도 모르겠다’ 등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심연 어딘가에서 끊어지지 않는 감정들과, 다시 생겨날 감정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쉬운 비유들에 빗대어서 풀어냈다. 그러자 그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제 나는 그들에게 귀만 기울이기보다는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덕분에 술잔도 자주 기울어졌다.


술 냄새나는 술자리에서의 이야기는 각설하고, 그곳에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내 마음을 움직였던 문장만 따로 따오자면 이렇다.


“시간은 해결해 주기보다 사람만 늙어가게 만들던데요.”


이 농담 같은 말을 듣고 나는 멍해지는 기분만 들었다. 그 뒤의 이야기들은 딱히 기억에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를 떴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만 같은 얼굴들에게 상냥하게 인사하고 술집을 나섰다. 숙소까지 거리는 걸어서 10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내가 숙소에 도착한 건 한 40분이 지난 시점이었나.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을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걸으면서 나는 내가 속절없이 죽여 왔던 시간의 틈들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여행을 온 목적은 ‘휴식’이었으나 머리는 끊임없이 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세 명의 남자 중에 누가 던졌는지 모를 저 한 마디가 더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겨우 머리를 진정시키고는 숙소에 몸을 던지고 누워서 잠을 잤다. 저 먼 시간, 지금은 죽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누웠던 공간 속에서 나는 조용히 잠에 들었다. 사람을 그저 죽음으로 향하게 만드는 시간 속에서, 나의 삶도 어느 무명의 죽음 위에서 휴식했다.

박재가 되어버린 유물을 아시오?

다음 날, 숙취가 섞인 잠에서 깬 뒤 나는 다시 군산의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오후 3시쯤이었나. 박물관을 구경하다, 갑자기 근현대의 시간을 간직한 공간에서 끊임없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희망 속에서 뒤척이던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저 보존 처리된 채 자리만 지키고 있는 유물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어젯밤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시간은 해결해 주기보다 사람만 늙어가게 만들던데요’라는 문장의 영향은 강력했다. 나는 이제 이곳에서 해결해야 될 일은 다 처리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 오후 7시로 예매해 두었던 버스표를 취소하고 1시간 뒤에 있는 서울행 버스표를 끊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군산을 떠났다. 물론 한 손에는 이성당 빵 봉투가 함께였으니 군산 시민들이 보고 ‘이성당도 안 가고 군산을 떠나?’라고 역정을 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여행을 다녀온 뒤 약 3주가 지났다. 역시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막막함 속을 유영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삶을 나아가게 할 어떠한 방향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수많은 죽음들이 거쳐 갔을 삶의 공간들 사이에서 박재된 유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게 결국 이 글의 요지다. 그러니깐. 나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그저 시간에 맡기는 것이 사는 아니라고 정말 뜬금없는 깨달음을 얻게 된 거다. 그저 늙어갈 뿐이라면, 그 늙어가는 시간 속에서 과거가 될 것들을 조금은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기적적으로 다시 키보드를 눌렀다. 막힘없이 지금까지의 문장을 썼다는 건, 마치 한 신부의 기도로 앉은뱅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뜀박질을 했다는 신화 속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재현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쓰고 싶다. 맞다. 그냥 '기적'을 길게 풀어썼다.


어쨌거나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썼다. 써지는 건 어찌 됐건 써야 하니깐. 지금도 과거를 붙잡고, 과거의 수많은 답답함이 속에서 곪아가고 있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는 희망을 버렸다고 이 글의 끝을 장식하고 싶다. 희망을 버리면 절망이 온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희망 때문에 막연한 절망까지 같이 끌어안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깜깜한 방 속에서 희망을 버리면서 절망까지 내던지고 겨우 두꺼비집을 찾아 내려진 레버를 다시 올리면서 이렇게 쓴다. 모든 시간들 속에는 수많은 시작과 끝이 공존하고,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유물들 틈에서 지금의 삶들이 있고, 지금의 삶들은 또 다른 삶 앞에서 유물이 된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 과거 속에 현재가 있고, 현재 속에 과거가 있다. 군산을 떠나서 군산을 쓰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끝맺는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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