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호와 임순애 1

<죽어서야 내게 태어난 외할아버지>

by 김아라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 외할아버지 이야기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인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많이 없다. 아니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 때는 명절만 되면 엄마의 아빠보다는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친할아버지댁을 더 자주 방문하고 오래 머물렀다. 외할아버지는 일년에 한 두 번 기껏해야 하루 반나절 얼굴 보고 오는 게 다였다. 엄마도 내게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무언가 말해준 적이 없었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서울 번동 허름한 임대아파트에 혼자 산다는 것과 이름이 '임상호'라는 것, 그리고 매일매일 술을 마신다는 점과 어쩌다 한 번 할아버지를 보러 가면 이불 밑에 숨겨둔 꼬깃꼬깃한 오천원짜리 용돈을 준다는 사실밖에 몰랐다. 할아버지의 새하얀 머리카락은 위로 삐죽 솟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도깨비같아 보이기도 했다. 학교 역사시간에 일제강점기니 6.25니 하며 무언가를 배우기는 했지만, 그 과거 역사적 사실과 할아버지를 맞물려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에게 역사적 사건과 할아버지는 동 떨어진 별개의 존재들이었다.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된 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고서도 한참 뒤에 일이었다. 제주도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엄마가 얼굴 보러 간다고 했다. 나는 제주도에 살고 계신 그 할머니가 바로 우리 외할아버지 '임상호'의 여동생 '임순애'라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어렸을 적엔 육촌이니, 고종이니 뭐니 하면서 먼 친척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당연히 제주도에 계신 할머니도 그냥 저냥 먼 관계의 친척이겠거니 하고 말았지, 생각보다 이렇게 가까운 친척이었는지 몰랐던 거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다. 임상호는 1935년에 전라도 어디께에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35년 출생이라고 되어 있지만, 호적을 늦게 올려 실제로는 그것보다 두 살은 더 많다. 7살인가 8살 무렵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인 아이들에게는 조센징이라고 놀림받는고 매일 얼굴이 피떡이 되도록 싸우는 건 일상이었다. 여느 때처럼 길거리에서 일본인 남자아이 하나가 시비를 걸어왔다. 엎치락 뒤치락 한바탕 싸우다 그 남자아이는 흉기로 상호의 다리를 찔렀다. 왼쪽 다리 무릎부터 발목까지 20센치가 넘도록 죽 살이 찢어졌다. 상호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뾰족한 유리조각 하나를 집어서 그 남자아이를 공격했다. 배를 찔렀는지 어깨를 찔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겁이 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쳤다. 일본인 아이에게 상해를 입혔으니, 무사하진 않을 거란 예감이 어린 나이에도 들었다. 이름 모를 항구 근처에서 구걸을 하며 며칠 길거리 생활을 했다. 어느 날, 항구에서 부산스럽게 사람들을 배에 태웠다. 한 남자가 상호에게 와서 조선인이냐고 물었다. 해방이 됐으니 이제 조선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방이 된 조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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