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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의 영화편애 Apr 05. 2021

미나리, 기억은 어떻게
영화가 되는가

영화 '미나리', 아카데미수상 가능할까?


영화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원래 다른 영화를 준비하다가, 책의 한 구절을 보고서는 “자신의 기억”에 집중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 구절은 <나의 안토니아>라는 책에서 "다른 사람을 쫓는 삶을 멈추고 나의 기억에 집중을 하니 나의 삶과 일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은 스스로 자녀들을 위해 딱 한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미나리’를 진행했다고 한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기억을 영화로 만들어낸다. 어떤 감독은 데뷔작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는 감독으로써 정점에 있을 때 시도하기도 한다.

똥파리, 벌새, 남매의 여름밤 같은 영화는 데뷔작에서 자전적 영화를 시도했다면, 로마나 박쥐와 같은 영화는 감독이 정점에 있을 때 시도한 자전적 영화이다.

감독으로써 자신의 기억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보다. 그것 때문에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감독들이 그 일을 성취한 순간, 더 이상 무슨 영화를 만들어야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을 때 자신의 영화인생이 완성되는가보다.

영화적으로도 가장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 때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장면을 보게 되고 감독도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관객들도 더 이야기에 몰입되는 측면이 있다. 자전적 영화는 덜 억지스럽다.


자전적 영화를 볼 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라이프>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그 영화를 보면 사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이 생에서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야” 할 제안을 받는다. 그러면 직원들이 그 기억을 영화로 만들어주고 그 기억을 평생 간직한채 진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자전적인 영화를 만든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 단하나의 기억을 떠올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 사람들은 중간계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기억을 영화로 끄집어내는 방식을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다. 너무 영화가 많지만 <로마> <남매의 여름밤> <미나리> 세편만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면 감독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가 나온 느낌이 든다. 한 인간의 내면이 큰 스크린으로 펼쳐지는 마법과 같은 순간이랄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를 보면 감독 자신은 영화의 중심화자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는 가정부인 클레오가 주인공이다. 그녀의 감정, 그녀의 동선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쿠아론 감독의 특기인 롱테이크 장면이 이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나 클레오의 동선에서 숏이 나뉘지 않는다. 감독은 그것을 “시간에 대한 존중”이라고 표현하더라. 그의 자전 영화는 카메라 워킹이 아주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미학적인 완성도를 펼쳐보여준다. 또 이미지 뿐만 아니라, 사운드를 통해서도 기억을 소환한 것이 흥미로웠다. 인터뷰를 보면 동네에서 들리는 소음까지도 설계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그는 기억을 영화예술로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이에 비하면 <미나리>는 자신의 어린시절이 좀 더 중요하게 등장한다. 데이빗의 얼굴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감정이자, 디자인이다. 영화의 첫 숏 역시 데이빗의 얼굴로 시작된다. <로마>에서 클레오와의 감정적 연결이 중요했다면, <미나리>에서는 할머니와 아이와의 감정적 연결이 중요하다. 그것이 영화의 핵심인데, 다행히 잘 표현이 되었다. 처음에는 지독하게 미워하고 싫어했다가 마지막에는 그 할머니를 붙잡기 위해 아픈 심장을 무릎쓰고 뛰어가는데 정말 감동적이다. 영화는 그리 감정을 과잉시키지 않음에도 눈물을 자아낸다. 아마도 감독의 진심과 배우의 연기가 관객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리라. 감독의 원래 의도대로 보이스오버가 나왔다면 별로였으리라 생각된다. 영화에서 데이빗과 할머니가 함께했던 시간들은 관객들에게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같이 뜬금없이 화투를 친다든지, 산책을 하며 미나리를 심는다든지, 자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라든지. 그것이 감독의 기억이지만, 묘하게도 나의 기억인 것같은 마법이 작용한다.

<남매의 여름밤>은 막내아이가 아닌, 딸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미나리>와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막내 동생은 항상 유머를 잃지않는 천진난만한 아이라면, 누나는 속이 깊고 예민하며, 자존심이 센 인물이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 그녀의 얼굴이 영화의 핵심이다.

<남매의 여름밤>에는 두 남매가 나온다. 어른 남매와 어린이 남매. 그들은 각자의 힘든 사연으로 할아버지 집에 모이게 된다. 그곳에서 함께 살면서 좋은 추억도 만들지만, 또 감정적으로 더 예민해지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어른 남매보다 어린이 남매가 더 현명해보이고 지헤로워보이는 장면들이 좋았다. 그리고 주인공 옥주의 예민한 감정들, 두려움과 사랑스러움, 다양한 감정이 잘 담겨서 좋았다. 윤단비 감독의 데뷔작인데 아주 숙성된 영화가 탄생했다고 느껴진다. 아마도 자전적인 영화였기에 가능했으리라.



정이삭감독은 예상대로 이창동 감독, 홍상수, 봉준호감독을 특히 좋아한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한다. 대부분 사실주의 미학을 추구하는 감독들이다. 사실주의라고 하면 거대한 세트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일상을 세트로 삼아 아주 사실적인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다. 숏의 길이도 긴편이고, 훈련된 연기가 아닌 좀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한다.

한 가족은 미국의 아칸소로 이사를 와서 살아간다. 아빠 제이콥은 농장을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는 이 보금자리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둘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사는 게 어려우니 부부싸움이 잦다.

이들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특히 감독의 어린시절로 보이는 막내아들 데이빗의 시선과 동선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데이빗은 장난꾸러기 이지만, 심장이 약한 질병이 있는 아이이다. 큰딸 앤은 너무 듬직한 누나이다.

4명의 가족은 좀 힘들지만 교회도 다니고, 농장도 가꾸고, 다른 일도 하면서 적응하며 살기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중 자녀를 돌보기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가 집에 와서 같이 살게 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부부이지만, 이야기의 핵심적인 인물은 외할머니 순자와 손자 데이빗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빗은 처음에는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 냄새가 난다며 불평을 하기도 하고, 할머니를 놀리기 위해서 오줌을 그릇에 담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데이빗에게 댓가없는 큰 사랑을 나누어준다. 그런 과정에서 데이빗의 귀여운 표정연기를 많이 볼 수 있고, 또 윤여정 배우의 능청스런 연기도 재밌다.

할머니가 등장하며 갈등도 시작되지만 유머도 영화 속에 많아진다. 부모님은 일 나가시고, 남매와 할머니만 집에 남아있다. 할머니는 아무 요리도 하지 못해 손주들이 황당해한다. 할머니는 부끄럼없이 아이들과 화투를 치며 논다. 그 때 온갖 비속어를 섞어가며 화투를 치는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할머니와 데이빗은 산책을 하던 중에 둘 만의 추억이 쌓인다. 함께 미나리를 보며 “미나리 원더풀..”하며 유치한 노래를 만든다든지, 뱀을 같이 본다든지...그런 과정에서 둘은 친밀해지고, 데이빗의 건강도 좋아진다. 영화 제목의 ‘미나리’는 당연히 메타포이다. 할머니와 데이빗이 함께 있을 때 미나리가 등장한다. 할머니는 “미나리는 어느 곳에 두어도 잘 자란다”라고 이야기하며 둘 만의 아지트에 미나리를 심는다. 그것이 이민 가족의, 혹은 모든 인간의 메타포임을 드러내준다. 할머니는 이 집의 가장 불필요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생명력을 나누어주는 존재이다.


가족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함께 교회를 가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할머니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데이빗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존재는 신이 아닌 할머니이다. 자기전에 할머니가 죽기 싫다는 손자를 안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장면은 식상할 수도 있지만,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자전적인 이야기이기에 모든 장면에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함께 위로를 받는 마법에 빠진다.

스포일러라 말할 수는 없지만 큰 사건이 일어나고 할머니는 정신을 잃은 채 엉뚱한 곳으로 걸어간다. 그 때 데이빗이 힘차게 달려서 할머니의 길을 막고 손을 잡아주는 장면은 명장면이고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장면이다. 달려가는 데이빗의 표정을 카메라는 아주 섬세하게 담아내는데 그것이 진심으로 다가온다.


한 개인의 기억이 소환되어 아름다운 영화가 되는 것이 흥미롭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화가 되기도 하지만, 기억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정서적으로 더 풍부하다.  그렇게 평생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영화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영화 감독의 특권이라 느껴진다. 그것도 수십억의 제작비를 들여 한 개인의 기억을 소환한다는 것.


영화 <미나리> 그렇게 한 개인의 가정사를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사실 보편적인 정서를 가진 영화이다. 영화를 여러차례 반복해서 보면서 인물에 대해서 적절한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그것이 이 영화를 한 가족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바라보게 되더라. 그들은 마치 성서에서 에덴동산에 놓인 인간처럼 느껴진다. 구체적인 지역명이 드러나지만, 카메라의 시선을 그 공간을 더 보편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한 가족의 일상과 노동의 모습은 아주 신성하게 그려진다. 중간중간 인서트 숏으로 등장하는 구름 너머의 빛의 이미지는 그들의 삶을 신이 돌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하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이민자가 아닌, 고난 뒤에 오는 평온함이라고 생각 된다. 이 영화에는 가장 크게 두번의 재난이 찾아온다. 처음과 끝에. 처음에는 물의 재난, 마지막에는 불의 재난이다. 그 재난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또 이들을 가장 절망스럽고 비참한 순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재난이다. 하지만 그런 고난 후에 반듯이 찾아오는 장면이 있으니 바로 평온한 잠이다. 그렇게 당장 죽을 것 같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다시 햇볕이 비추고, 이들은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깊은 잠에 든다. 이러한 씬 바이 씬은 묘한 감동을 주고, 영화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삶이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이 해피엔딩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카데미 영화제에 <미나리>가 6개 부문에 후보가 올라 화제다. 여우조연상은 거의 확정이 된 듯 하고, 그 외에도 수상이 가능할지 예측을 하고 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작품상'까지도 도전해볼만하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몇몇의 작품을 보긴했는데, <맹크>와 같은 영화가 완성도가 높은 것은 인정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울리는 보편적인 정서가 가장 강한 영화는 <미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받기를 기대해본다. 


코로나로 힘든 우리들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영화 <미나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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