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호의 영화편애 Oct 25. 2021

메타버스 시대의 디지털리터러시 교육에 관하여

메타버스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들어가는 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영화같은 현실이 우리의 일상에서 펼쳐지고 있어서 순간순간 놀라게 됩니다.

수많은 변화 중에 저는 이 시간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시대로 빠르게 세상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미디어가 우리의 일상과 일, 비즈니스 그 모든 환경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미래가 너무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이고, SF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엔 ‘메타버스’라고 하는 키워드가 유행하며, 더 급진적인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을 예상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나요?

저의 경우에는 교육 서비스 일을 주로 하고 있는데, 역시나 일상의 루틴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하루에 서울 – 인천 – 수원을 오가며 도로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강의를 다녔는데, 최근 1~2년은 많은 시간을 집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온라인 강의가 너무 어색하고, 빨리 코로나시대가 끝나고 오프라인 강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생각보다 교육 효과가 잘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지금은 오히려 오프라인 강의가 어색해져버렸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몇몇 강의는 오프라인 강의로 진행하면서 다시 예전의 감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디지털 미디어에 이전보다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이 소셜 미디어에 접속된 상태이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만지는 시간이 훨씬 늘어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표현이 딱 어울려보입니다.

디지털 미디어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오는 이 시대에 열심히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미디어 환경을 낯설게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있을 때는 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물 밖에 나와야 물을 깨달을 수 있듯이 우리 역시도 미디어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과거의 미디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도구로써의 미디어’를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미디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환경으로써의 미디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미디어는 도구를 넘어서 환경으로써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의 일상, 사고방식, 일, 그 모든 것을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사실 미디어를 도구가 아닌 환경으로써 바라보는 일은, 가장 유명한 미디어 연구자인 ‘마샬 맥루언’이 제시한 관점이었습니다. 그는 미디어 속 내용보다 미디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편향성이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미디어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죠.

잘 생각해보면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 시대의 주요 미디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삶의 패턴이 바뀌고, 일상과 비즈니스가 바뀌고, 우리의 뇌구조까지도 변화합니다.

책의 시대를 시작으로 텔레비전의 시대, 컴퓨터의 시대, 스마트폰의 시대, 가상현실의 시대까지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그 변화가 쉽게 이해가 되죠. 

마샬 맥루언은 인쇄시대는 논리적이고 선형적인 사고를 하도록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시대로 변화면서 그런 사고가 무너지고 이성보다 감정의 비중이 커지고 더 다양한 감각이 발달하게 되었죠.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사실 좀 더 복합적입니다. 다양한 미디어들이 혼종되어 이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시각적인 미디어가 가장 비중이 크긴하지만, 팟캐스트와 같은 오디오 콘텐츠도 큰 사랑을 받고 있고, 여전히 인터넷 기사나 책이라고 하는 문자 미디어도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세상이 더 긍정적으로 변할까요? 아니면 더 안좋은 방향으로 변하는 걸까요? 그것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시간에는 디지털 환경을 3가지 토픽으로 성찰해보면서 미디어 환경을 낯설게 성찰하고, 이해하는 것을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디지털 환경을 이해하는 3가지 토픽


(1) 소셜 미디어 시대의 관계 맺기 : 다함께 홀로


미디어 환경을 이해할 때에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것부터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죠. 바로 소셜 미디어입니다.

소셜 미디어라고 하면 우리가 자주 활용하는 인스타그램, 틱톡, 카카오톡,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에는 소셜미디어 하면 페이스북이 가장 앞에 있었는데, 지금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틱톡의 비중이 더 커진 듯 합니다.

소셜 미디어를 가장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면 그것은 ‘사교적인 미디어’라는 점입니다. 초창기에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었던 ‘페이스북’의 탄생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생끼리의 사교활동을 위해서 ‘페이스북’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사업 아이템으로써 비전이 무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전세계로 확장시킨 것이죠.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자 중심으로 표현하는 페이스북과 달리 좀 더 이미지 중심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도구입니다. 그런 이미지를 보고 자신이 좋아하고 싶은 사람을 팔로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튜브와 틱톡은 이미지를 넘어서 동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합니다. 이런 소셜미디어의 발달이 영상 미디어의 발달과 유사하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관계를 무한대로 넓힐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과거에 지역이나 학군 중심으로 친분을 쌓았던 시절과 달리, 전세계적으로 온라인 상에서 친구를 맺고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지구는 하나의 촌처럼 전세계가 연결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모습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을까요?


사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커뮤니케이션의 범위는 무한대로 확장되었지만,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의 깊이는 아주 얕아졌음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제약을 두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풍요로움을 살면서도 동시에, 단 한 사람과도 깊이 있게 소통하지 못하는 빈곤함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를 누르고, 한 두줄 댓글을 달고. 과연 그것이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고, 자기 표현의 기회가 되기도 하여서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삶에서 타인과의 소통이 대부분 온라인상에서만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는 깊이 있는 소통이 어렵고,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관객으로 여기게 되고, 타인을 도구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에게 ‘좋아요’를 눌러주고, ‘팔로우’ 해주는 존재 정도로 여기는 것이죠. 그런 생각으로는 진정한 관계맺기가 불가능하겠죠.


사실 소셜미디어는 태생부터 성숙한 관계맺기가 어려운 미디어인지도 모릅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전세계를 연결시켜준 페이스북의 창시자인 마크주커버그가 대학시절 관계 맺기에 미성숙했는지를 초반에 잘 보여줍니다. 여자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배려가 없고 그저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만 내뱉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상대를 무시하고 비방하는 말을 서슴치않죠. 그리고 그는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나서, 그것을 잊기 위해서 페이스북 아이디어를 탐구하게 됩니다. 

정말 아이러니하죠? 전세계가 관계맺기가 가능한 소셜미디어가, 관계가 깨어짐으로써 탄생했으니 말이죠. 페이스북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서 그는 가까운 친구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 모두가 함께 있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모두가 홀로 있게 만들었습니다. ‘다함께 홀로’ 있게 된 것이죠. 이 다섯 글자가 소셜미디어 시대의 우리의 모습을 잘 묘사해줍니다.

소셜미디어는 ‘자기표현’과 ‘관계맺기’라고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관음증’과 ‘노출증’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고 싶은 심리가 ‘관음증’이고, 관심을 받기 위해 지나치게 자신의 삶을 노출하는 것이 ‘노출증’입니다. 소셜미디어는 자발적인 ‘리얼리티 쇼’의 시대를 가져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온라인에서 생중계되는 시대인 것이죠. 과거에는 인기 연예인만이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모든 사람들이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소셜 미디어 때문입니다.

때로는 혼자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시간도 필요한데,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이미지로 자신의 삶을 포장하여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행위는 처음에는 자기효능감을 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공허함’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오래할수록 ‘우울증’이 더 커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죠. 스스로도 일상과 이미지 사이의 격차에 좌절하게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포장된 이미지를 보면서도 역시 박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진 장점이 있지만, 한계와 위험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죠.

특히나 소셜미디어의 중독성을 주의해야 합니다. 넷플릭스 영화 ‘소셜딜레마’를 보면 페이스북과 유튜브가 가진 중독성을 경고합니다. 다른 사람이 ‘좋아요’를 눌러줄 때의 행복감만을 쫓거나, 인스타그램 ‘팔로우’ 수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거나, 유튜브의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콘텐츠만을 즐길 때에 우리는 어느새 온라인 중독이 되어 왜곡된 자아상을 갖게 되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건강하게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현대의 많은 범죄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가 그것을 다룰 때에 얼마나 주의해야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2) 메타버스, 가상현실의 시대 : 이미지가 실재보다 강하다


한동안 ‘메타버스’라고 하는 키워드가 비즈니스와 교육분야에서 유행처럼 한 시기를 휩쓸었습니다. 아직도 유효합니다. 

가장 영향력이 큰 디지털 기업들이 ‘메타버스’, ‘가상현실’을 적극 도입하기로 비전을 제시하면서 더 빠르게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죠.

그렇다면 도대체 메타버스란 무엇일까? 어원적으로는 ‘meta’와 ‘universe’의 합성어로 디지털 속에서 현실세계와 같은 경제, 문화활동을 하는 가상세계를 의미합니다. 아직도 어렵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플레이어 원’을 보면 가상현실이 시대가 어떤 풍경인지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영화는 종종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예언자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SF영화를 보면 미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영화 <레디플레이어 원>을 보면 도입 시퀀스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미래에 사람들은 모두 일상 속에서 VR안경을 쓰고 살아갑니다. 게임 뿐 아니라, 피아노나 댄스와 같은 취미활동도 가상현실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피자배달을 하는데, 사람이 아닌 드론이 날라와 피자를 정확하게 배달해주고 갑니다. 사람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굉장히 많아져서 그 안에서 게임뿐 아니라, 경제활동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제임스 할리데이라고 하는 천재가 가상현실 세계를 창조했는데, 그 공간은 인류의 정체성을 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여전히 가상현실은 사람들에게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세계로 남아있게 됩니다.


또 최근에 개봉한 영화 <프리가이> 역시도 가상현실의 모습을 아주 흥미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 역시 게임이 중요한 소재이고, 사람들이 가상 현실 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고 애착도 큰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특한 점은 이 영화에서는 게임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게임 속 캐릭터가 갑자가 의식이 생겨서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갖게 되면서 여러 갈등관계를 보여주는 데, 아주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영화를 보시기를 추천드리고, 가상 현실이 미래에 어떻게 펼쳐질지를 간접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보다 더 리얼하고, 드라마틱하다보니 사람들이 가상현실에 머무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라는 점입니다. 현실보다 가상현실을 더 실제감있게 받아들입니다. 현실의 일보다 가상현실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플라톤의 ‘동굴비유’가 떠오릅니다. 그 비유에서 사람들은 동굴 속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실제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사람만 그 동굴에서 벗어나 실제 현실을 맞이합니다.

사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에 그러한 미래가 진짜 올지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미디어 기기가 발전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사람들은 현실세계를 더 소중히여기고 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은 가상현실이 아닌, 공원과 같은 실제 현실에서 더 큰 만족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아날로그는 디지털에게 쉽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반격을 하며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예견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아무리 가상현실의 비중이 커진다고 한들 오프라인 세계는 여전히 인간의 삶에서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여전히 땅을 사고, 여행을 다니고 할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나 다가올 미래에 디지털 환경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가상현실이 우리의 삶에 펼쳐지면 미디어를 이해한다고 하는 차원이 이전과는 완전 다른 개념이 됩니다.

가상현실이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어나아갈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공존할 것이 분명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가 함께 노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인간성의 상실 : 기계화되어가는 인간


디지털 환경에 우리가 점점 더 시간을 내어주는 이유는 ‘편리함’과 ‘재미’ 때문입니다. 

점점 더 편리한 것을 원하는 욕망, 그리고 재미와 자극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디지털 미디어가 채워주기에 우리는 그것을 점점 더 원하게 됩니다. 그것은 책상에 앉아서, 침대에 편히 누어서도 많은 것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해주고, 또 지루한 일상과 달리 중독적인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편리함과 재미라고 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편리한 것을 원하고 재미있는 것을 원합니다.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 기기가 이토록 우리 시대에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편리함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앱 하나만 있으면 바로 게임을 할 수 있고, 음식과 야식도 버튼 하나로 주문할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길 물어볼 필요도 없이 상세한 지도를 볼 수 있고, 요즘은 어플로 내 집 청소해줄 용역도 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연애까지도 앱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죠. 

앱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안겨다주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점점 그것에 의존하게 되면서 잃어가는 것은 없을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점점 이 작은 미디어기기와 앱에 의존하게 되면서 사람보다 미디어 기기와 더 친근하고, 미디어 기기와의 소통을 더 편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발전된다면 영화 ‘그녀her’처럼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로봇과의 연애, 사랑까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알고리즘으로 나의 기분에 맞추어주는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는 것이죠. 

그런 삶은 잠시는 우리에게 위안과 재미를 줄 수 있지만, 더 근원적인 인간적인 속성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재미’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콘텐츠는 다양해졌는데, 콘텐츠 시장의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창작자들은 더 자극적인 재미를 조미료처럼 넣게 되고 소비자들은 점점 거기에 중독됩니다. 유튜브 플랫폼만 생각해보아도 그것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뉴스마저도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서 자극적인 가짜뉴스로 변질되는 사례가 많죠. 재미가 있지만, 점점 도가 지나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에 대한 분별력이 점점 모호해집니다.

닐 포스트먼이라고 하는 미디어 학자는 텔레비전 시대의 미디어교육가로 활동했는데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텔레비전 세계에서 오락은 모든 담론을 압도하는 지배이념과 같다. 무엇을 묘사하든, 어떤 관점에서 전달하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스마트폰 시대, 유튜브 시대에는 ‘오락’적 요소는 더 중요해졌습니다. 예능 콘텐츠뿐 아니라, 지금은 정치,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도 오락적인 요소가 없으면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게 됩니다. 물론 공부를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깊은 사유를 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언제나 피상적인 사고에 머물게 되고, 진실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닐 포스트먼인 인쇄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기도 했고, 또 많은 지성인들이 영상 매체도 좋지만, 책읽기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 읽기를 통해서 우리의 뇌 근육이 더욱 발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미디어환경을 그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편견입니다. 오래전 IT기업의 창시자들이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데스크탑 컴퓨터 개발을 했던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개개인이 컴퓨터를 가질 수 있기를 원했고, 그 비전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유튜브의 시대에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고급 정보들이 공유되어지고, 한 개인이 의지가 있고 디지털 미디어 활용 능력만 있다면 그런 좋은 정보들을 신분이나 소득의 능력과 상관없이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 소비자에서 벗어나 콘텐츠 제작자도 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유튜브로 학교에서 영상 촬영과 편집에 대한 지식도 많이 얻고, 또 코로나 시대에 찾아온 혼란 속에서 온라인 교육이나 디지털 비즈니스 등 앞서가는 지식인들의 조언을 접할 수 있어서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지만 그런 가운데 우리가 잃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인간성을 점점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으나,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휴머니즘이 점점 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과연 진화하고 있는지, 혹시 퇴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미디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시대가 급속도로 변하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잘 담고 있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 ‘기술에 대한 맹신’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코믹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주인공 남자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부품으로써 살아갑니다. 반복되는 너트를 조이는 일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삶 속에서 그는 점점 미쳐가고 인간성을 잃어갑니다.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역전되어 인간이 수단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그는 정신병원과 경찰서를 왔다갔다하며 대부분의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나중에 사랑을 함으로써 다시 원래의 인간성과 자유로움을 조금씩 회복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워낙 걸작이고, 매 시대마다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에 많은 예술가들에게 모티프로 인용이 되는 영화입니다.


디지털 미디어환경의 발전 역시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가치와 기술에 대한 맹신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무서운 것은 시간이 지나서 주객이 전도되어 인간이 기술의 노예가 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편리해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점점 더 그것에 의존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인간이 기계의 노예에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속성을 잃어갑니다. 실제로 현대로 올수록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이를 반증합니다. 근대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정신병이 따라오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디지털 환경을 벗어나서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라고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디지털 미디어환경이 우리에게 준 혜택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기술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깨어있도록 노력해야 가능합니다. 삶의 균형감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맺음 말 : 탈미디어적 삶과 균형감각


기술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삶의 균형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끔씩 탈 미디어적 삶을 살아보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우리 주변의 미디어 기기를 낯설게 보기 위함입니다. 미디어 환경과 거리를 잠시 둘 때에, 우리는 그것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산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때로는 미디어 기기를 내려놓고, 산책을 하며 자연과 소통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면 우리가 놓쳤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고, 또 사유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실천할 것은 사람과의 대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저 온라인 상에서만 커뮤니케이션을 하게되면 타인을 도구로 여기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범죄와 폭력적인 일들이 온라인 상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죠. 온라인 안에서 사람들은 윤리에 대한 감각이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화제작이었던 <인간수업>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성매매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일이 얼마나 무서인 일인지를 실감하지 못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다주기도 했죠. 

우리가 대면으로 사람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좀 더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책임을 지려할 것이고, 좀 더 타인에 대한 존중과 같은 윤리의식이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자신의 미디어 활동 시간을 체크하고, 좀 더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나아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지금은 취미생활, 교육, 비즈니스 그 모든 것이 미디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한다면 나중에 정신과 육체가 많이 망가질 우려가 있습니다. 자신의 미디어 활동 시간을 체크하고,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 환경이 점점 더 우리의 일상 깊은 곳까지도 스며들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교육, 비즈니스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모든 일이 디지털미디어와 연결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메타버스 시대가 찾아오면 가상현실의 비중이 커지면서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경계를 짓는 것조차 무의미해질지 모릅니다.


이런 큰 변화를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을지라도, 디지털 환경에 대해서 낯설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다가오는 미래를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이전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른들, 혹은 학교 교수님들의 조언이 어쩌면 큰 도움이 되지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할 세상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세상일테니 말이죠. 

결국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바라기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주춤하기보다는 새로운 배움을 즐기고, 실험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가 아닌, 배움 자체를 즐기고 그것을 우리의 삶에 녹여낼 수 있는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인간성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미래에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여러분들에게 그런 지혜가 있기를 바라고, 용기있고 더 창의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아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전세계가 '오징어게임'에 열광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