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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의 영화편애 Mar 08. 2024

추락의 해부, 관객이 완성하는 서사에 관하여

황금종려상을 받은 '추락의 해부' 탈진실 시대의 진실성

고레에다감독의 <괴물>을 대신하여 황금종려상을 받은 <추락의 해부>.

개인적으로는 고레에다히로카즈의 영화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추락의 해부>도 나름 흥미롭게 보았다.

시놉시스는 좋다. 마치 상업영화의 로그라인 느낌.

독일인 작가 산드라와 사뮈엘 부부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과 1년 동안 외딴 산간지역에서 지낸다. 부부가 다툰 뒤 얼마 후 사뮈엘이 죽은 채 발견된다.

유일한 목격자는 하필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과 개 뿐이다. 그 상황에서 자살과 살인 중 의심스러운 정황 가운데 상드라가 용의자로 기소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시놉을 들어보면 당연히 우리가 보았던 수많은 장르영화를 떠올리게 되고, 당연히 아내를 의심하게 된다. 그녀가 범인이어야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우리의 기대를 향해 나아가질 않는다. 길고 긴 법정 장면을 거의 리얼타임으로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누가 범인인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든 영화처럼 느껴졌다. 보통의 장르영화라면 둘 중에 누가 범인인지 그래도 정해놓고, 모호하게 연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도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해서 정하지 않고 만든 듯 하다. 누가 범인인지 결과보다는 추리하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법정에서 나누는 대화장면은 굉장히 자세하게 그려진다. 

결국 이 사건의 진실은 감독도 모르고 배우도 모르고, 관객들도 모른채 3시간의 스토리를 보게 된다. 유일하게 목격자가 있으니 개이다. 그래서 영화의 첫 숏과 마지막 숏의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개의 모습이 중요하게 보여준다.


물론 영화의 결말은 있다. 실화처럼 아내는 무죄로 판결이 된다. 하지만 그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살리에르 컴플렉스

남편의 추락을 해부하면서 영화는 그 사건보다 부부 간의 갈등 상황을 더 집중해서 조명을 한다. 부부 간의 갈등은 수많은 부부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갈등상황이면서도, 또 예술가들이라면 다 경험하는 '모자르트와 살리에르'의 갈등 상황이 담겨있다. 남편은 좋은 교수이지만 스스로는 작가가 되길 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작가로써의 재능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반면 아내는 작가로써 큰 성취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의 갈등과 싸움을 지켜보면 그 상황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사실 남편과 같은 사람은 우리 주변에 많다. 창작자가 되길 원하지만, 가르치는데에 더 재능이 있는 사람. 아내의 말을 들으면 그는 교수로써의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본인은 작가가 되고 싶어서 가르치는 일을 줄인다. 그런데 글이 써지질 않으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타인에 대한 분노가 더 커지는 상황이 된다. 그는 자신의 재능없음을 인정하기 어려워 상황 탓을 한다. 아내는 그런 상황 때문에 글을 못 쓰는 것은 핑계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수많은 좋은 작가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좋은 글을 썼다. 대표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로 최고의 판매를 기록한 작가도 그렇고, 박찬욱감독과 협업하는 정서경작가도 아이를 낳고 초반에는 겨우 짬을 내서 쓴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니 사실 상황이 받쳐주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사람은 대부분 핑계이다. 좋은 작가는 그냥 낡은 노트에 끄적끄적 적는다. 그런데 재능 없는 사람은 애플 컴퓨터를 사고, 스타벅스에 가서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젊은 시절 친구 관계였을 때에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좋은 관계였을텐데, 부부가 되면서 서로 비교를 하게 되고 질투를 하고 증오하는 사이가 된다. 

예술가로써의 재능이 애매할 때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남편은 교수로써 명예가 있지만 늘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사실 예술가로써는 애매하지만 좋은 교육자의 삶에도 큰 보람이 있고, 좋은 가치가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일을 하찮게 여기고 애매한 재능으로 성과를 내려다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영화감독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고, 작곡자도 그렇고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자살인가 타살인가

이 영화의 진실은 오직 개만 알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진실을 선택하도록 묻는 듯 하다. 자살의 가능성이 사실 굉장히 높다.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 연출이 흥미롭게 되어있는데, 초반의 싸움에서는 선명한 회상장면으로 보여주다가, 물리적 폭력이 오갈 때에는 사운드만으로 추측하게 된다. 결국 누가 가해자인지 끝까지 모호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남편이 대화를 일부로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쪽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녹음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이 녹음 자료를 가지고 나중에 어떤 증거자료로 사용하기 위함(이혼 소송?)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대화를 하며 자신이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만약에 남자가 이혼 소송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면 자살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아내의 살인의 가능성이 있다. 아내가 살인을 하였다면 이유는 둘의 싸움 대화에서도 드러나는데, 자신의 소설이 남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신의 명예를 깎아내릴 문제요소를 제거 하기 위함. 그런데 살인을 하기 위해서는 절차가 복잡한데다가 남편의 피지컬이 너무 좋아서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거슬리는 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의 거짓말이다. 그녀는 초반에 팔에 큰 멍이 들어서 변호사가 멍에 대해서 묻자 그녀는 식탁에 부딪혔다고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워낙 표정이 자연스러워서 관객들도 그렇게 믿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변호 중에 그 멍이 부부 싸움을 하는 중에 몸싸움이 있어서 생긴 멍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가 남편을 해할 수 도 있는 사람이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무죄로 판명을 받고 나서, 아이에게 먼저 가기보다는 승리의 파티를 먼저 즐기는 장면도 마음에 걸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쇼파에서 잠이 드는데, 어둠 속에서 개는 눈을 뜨고 있다. 따뜻한 느낌보다는 서늘한 느낌이 많이 드는 숏sho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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