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호의 영화편애 Jun 30. 2021

넷플릭스 '결혼이야기', 젠더감수성을 깨워주는 영화



https://youtu.be/qr2jIoE3r_o



감독 : 노아 바움백

주연 : 스칼렛 요한슨, 아담드라이버



이 영화는 제목만 보면 로맨틱 코미디처럼 남녀가 만나서 결혼까지 골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반대이다. 이 영화는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이혼을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어찌보면 영화를 보고나서 5분 만에 반전을 목격한 셈이다. 아주 흥미로운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 영화의 배우 역시 한 몫을 한다. 주인공은 슈퍼히어로로 더 알려진 스칼렛 요한슨이 맡았다. 그녀는 히어로 옷을 벗어던지고 오랜만에 일상 연기로 돌아왔는데, 그녀의 배우로써의 진가가 드러나는 작품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역으로는 아담드라이버가 맡았다. 그리고 감독은 노아 바움백 감독이 맡았다. 그는 초기에 <오징어와 고래>라고 하는 영화로 큰 인상을 남겼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소재이면서도 훨씬 더 대중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여서 좋았다.



니콜은 한 때 주목받았던 배우였지만 찰리를 연극극단에서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었고,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며 빠르게 결혼한 부부이다. 각각 매력이 넘치고 서로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던 두 사람인데, 어떤 이유인지 두 사람은 이혼을 앞두고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앉아있다. 두 사람은 어떤 이유로 이혼을 했을까를 따라가는 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고, 삶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며 다 보고나면 감동과 쓰라림을 동시에 준다.

참 시나리오가 영리하고 현명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첫 5분 만에 찰리와 니콜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둘은 이혼 상담을 받는데, 변호사는 이혼을 하기 앞서서 다시 한 번 두 사람이 처음에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돌아보게끔 서로의 장점을 적어보기로 한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주 사소한 습관부터 장점까지 잘 알고 있는 두 사람. 그래서 그들이 이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낯설고 이상해서 그들에게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영화는 두 사람을 통해서 부부의 관계가 어떻게 서서히 균열 되어가는지를 바라보게 된다.



놀라운 점은 두 사람이 이혼하기로 한 결정적인 사건은 없다는 것이다. 큰 사건이 없다는 것이 이 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자칫하면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냄으로써 영화를 보는 내낸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도대체 왜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을까?


그들의 사연을 관객들이 처음 알게 되는 장면은 니콜이 노라라는 변호사를 만날 때이다. 노라는 니콜이 마음을 열도록 친근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인상 깊다. 니콜은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서서히 마음을 열고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둘의 관계의 균열은 아주 서서히 진행되었다. 항상 니콜은 찰리에게 양보를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사실 니콜도 한 때는 잘나갔던 스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찰리와 결혼한 이후로 자신의 삶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찰리는 그런 니콜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혼까지 오게 되었다. 노라는 마치 친한 언니나 친구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니콜이 변호사를 선임하였기에 찰리 역시도 변호사를 선임한다. 찰리와 남자 변호사의 만남은 니콜과 노라와의 만남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노라는 우선 니콜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라포 형성을 하고 천천히 진행하는 반면, 제이는 찰리를 만나자마자 전투적인 태도를 취한다. 오직 이기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내어 재판에서 이기는 일에만 몰두한다. 매우 삭막한 분위기이다.


찰리는 뭔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두 번째 변호사를 찾아가는데 이번에는 좀 따뜻하고 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듯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많고, 사리분별력이 떨어져 보인다. 결국 찰리는 법원에 가기 직전에 다시 전투적인 변호사 제이를 택한다.




니콜과 찰리는 일을 크게 벌리지 않기 위해 법원까지 가는 것만큼은 참으려했으나 아들인 헨리의 양육권에 있어서는 서로 양보를 하지 못해서 결국은 법원까지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위해 써야할 돈을 다 써버리고 심지어 찰리가 연출가로써 받은 상금마저도 다 날려버릴 상황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


법원에서의 장면은 매우 인상 깊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으로 느껴진다. 니콜과 찰리는 자신들의 문제이지만 법원에서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노라와 제이가 그들을 대신해서 싸워주는데, 문제는 서로 상대방을 인신공격하고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니콜과 찰리가 실제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상황보다 법원에서는 더 전투적인 상황이 되어버렸고, 그 일로 인해 서로의 감정을 더 상하게 만드는 꼴이 되었다. 너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돈은 돈대로 날리면서 서로를 더 미워하게 만들기만 한다. 니콜과 찰리가 변호사 없이 서로 갈등을 해결해보려고 만나는 장면에서 오히려 서로에게 가장 심한 증오의 말을 내뱉는 장면은 너무 마음이 아프면서도 또 두 사람의 명연기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법원에서 판사는 쉽게 판결을 내지 못하고 결국은 감정사가 그들을 찾아가서 누가 더 아이를 키우는 데에 적합한지 판단하기로 한다.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될지는 영화를 통해서 확인하길 바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실 결말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영화라서 스포일러라는 것이 마땅히 없다. 이 영화를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감정사가 찰리의 집을 찾아가서 관찰하는 장면도 굉장히 인상 깊다. 사실 찰리는 누가 봐도 헨리를 돌보기에 적합하지 못하다. 그는 칼로 자해하는 연기를 아들에게 보여준다는 얘기를 사소한 이야기 하듯이 감정사에게 들려준다. 그는 시범을 보여주다가 팔에 큰 상처가 나게 되는데 그는 고작 데일밴드로 그 큰 상처를 덮으려한다. 이 장면이 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곧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니콜의 성장영화


이 영화는 부부가 이혼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니콜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항상 남자에게 양보했던 아내로써의 위치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비록 돈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노라라는 변호사를 통해서 그 일을 힘겹게 이루어낸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의 젠더 감수성을 깨워주는 영화이다. 니콜이 지적한대로 찰리는 항상 이기적이어서 자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찰리는 그저 승부욕이 강해서 니콜을 이기려고만 할 뿐 그녀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어 보인다. 헨리를 잘 돌보지도 않으면서 양육권을 위해서 싸운다. 그가 연출가로써는 재능이 있지만, 삶에 있어서는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니콜은 찰리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이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에 니콜이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써 성공하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고 카타르시스를 준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변한 설정은 니콜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녀가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찰리의 표정을 보면 뭔가 짜릿하다. 그녀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를 결혼생활 중에 알아주었다면...





#기억에 남는 대사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노라 변호사가 니콜에게 조언을 해주는 장면이다. 그녀는 이야기 한다.



아빠는 부족해도 그런가보다 하죠


솔직히 좋은 아빠라는 개념도 불과 30년 전에 나왔어요.


그전까지 아빠들은 자식들에게 말도 안하고 못미덥고 이기적인 존재였죠.


아빠는 실수투성이라 사랑하죠.


하지만 엄마가 그런다면 사람들이 다들 들고 일어나죠.


구조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죠.



영화를 다 보고나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우리 모두는 니콜이나 찰리 둘 중의 한명의 입장에 놓여있을 텐데 우리의 삶과 관계에 대해서 낯설게 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특히나 나 자신이 찰리처럼 어리석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내 옆에서 항상 나에게 양보하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잊고 살지는 않은지. 그리고 니콜의 성장을 곱씹어보면 큰 감동과 울림을 준다. 그녀는 확실히 찰리보다 더 성숙했다. 그녀는 이혼을 하면서도, 법적 싸움을 하면서도 찰리를 사랑했다. 영화에서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찰리가 조금만 배려하고 이해했다면 결코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이기기 위해서 양육권 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녀가 룰을 어기고 찰리에게 아이를 맡기고 그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은 큰 여운을 준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삶의 진실의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특히나 젠더감수성을 깨워주는 좋은 영화라 느껴져 강력하게 추천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교실에 찾아간 영화 읽기 수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