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북클럽 도서선정에 관한 이야기
우리 가족북클럽에서는 같은 책을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는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 초등학교 4학년 딸, 그리고 엄빠 넷이서 같은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소화할 수 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 딸은 비슷한 연령대라, 각자 도서 선정 취향이 다르긴 하지만 책 난이도 선정에 있어서는 다행히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어른인 엄마 아빠가 읽기에도 음미할 부분이 있고 깊이가 있는 책이면 좋겠지만, 일단 두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책을 고르는데 우선한다.
아이들과 함께 서점 나들이를 할 때 우리 아이들이 읽기에 적절한 초등 고학년 챕터북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애들이랑 함께 관심 있는 책들을 탐색한다. 각자가 읽을 책이라면 아이들이 각자 고르면 되지만 우리 네명이 함께 가족북클럽으로 매일 저녁 함께 소리내어 읽을 책이기 때문에, 도서 선정 작업에 시간을 좀더 쏟아야 한다. 그래도 일단은 아이들 둘이 다 관심이 있어야 하므로, 내가 보통 우리 대학에서 literacy education (문해교육; 한국에서는 보통 국어교육과에서 다룰텐데, 이곳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초등교육과/유아교육과 학생들이 수강하는 프로그램이므로 영어문해교육으로 번역해야 할까?) 강의를 할 때 가르치는 아이들의 도서흥미도조사 방법을 간단하게 응용해서 책을 고르게 될 때가 많다. 책들을 일단 예닐곱 권 정도를 내가 보기에 흥미 있으면서 아이들 연령에 적합한 것들로 고른다. (^^ 여기서 일단 엄마인 내가 주요 인플루언서.) 그 다음에 딸과 아들에게 각각 보여주어 가장 읽고 싶은 책들 두 권, 절대로 읽고 싶지 않은 책 두권을 고르게 한다. 이 정보들을 이용하면 다음 가족북클럽 책으로 네 권 구입할 책이 쉽게 정해진다. 일단은 아들 딸이 읽고 싶은 책들이 겹치면 결정이 매우 쉽다. 겹치지 않는다면 일단 둘이 선정한 읽고 싶은 책들 중에서 선정하되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은 떨어뜨리면 되는 것이다. ^^ 처음에 이 도서들이 아이들 연령에 적합한지 고려할 때 스마트폰으로 렉사일 (https://fab.lexile.com) 이나 스콜라스틱 북위저드 (https://bookwizard.scholastic.com) 를 통해 책의 연령대 추천을 체크한다. 보통 사용된 단어들의 수준, 평균 문장 길이, 책 내용의 문화적 친근성 등에 의해 책의 난이도를 전문적으로 결정해 주기 때문에 일단은 믿는 편이다. 여기에 물론 비판적/비평적 시각을 가지고 꼼꼼히 체크해야 하는 건 안다. ^^ 그래도 도서 선정의 성공여부가 책의 난이도보다도 아이들의 개성, 개별 흥미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으므로, 일단 너무 전문적 지식 크게 동원하지 않는다.
어쩔 땐 이렇게 민주적인 방법으로 도서선정을 하지 않고 엄마 혹은 아빠가 전격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Krista Kimbap 책의 경우 처럼 말이다. 이 책은 엄마인 내가 선정한 책이다. 우리 딸과 같은 나이의 Korean American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한 대학 후배 교수-엄마가 자기 딸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권하길래 믿고 네권 샀는데 좋은 결정이었다.
이 책은 플롯도 분명하고, 책 초기부터 어떤 갈등상황이 만들어질지가 계속 조금씩 보여져서 몰입이 쉽게 되었다. 유머러스한 부분도 곳곳에 있어서 가족이 함께 한바탕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 문화, 한국 이민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우리 가족 문화와도 잘 맞았다. 가끔씩 영어로 표기된 한국어 단어를 마주칠 때 참 재미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내 엄마인 grandma를 할머니라고 부르는데 halmoni 라는 단어를 본 순간 아이들이 참 반가와했다. “Yoboseyo?” 는 내가 가끔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마다 우리 아들이 옆에서 따라하는 한국어인데 책에서 나오니 아들이 아는 척했다. Bangu (방구), Aigoo (아이구) 도 웃겼다.^^
이 책의 주인공 크리스타는 5학년이다. 아동문학 관련 전공도서들에서 아이들이 보통 자기보다 2학년 위의 주인공,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도 비슷하다. 우리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옆집 중학생, 앞집 중학생들과 놀면서 그들의 세계에 대해 호기심도 가지고 재미있어 하는 것 같은데, 중학생들이 등장하는 책을 우리 딸 아들이 좋아하며 읽는다.
렉사일 지수는 660L로 적절한 읽기 연령을 9-13세 정도로 추천하고 있다. 몇살이냐고 물을 때 8세 반(?) 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우리 아들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Tortilla Sun도 엄마인 내가 결정한 책인데, 크리스타 김밥 다음에 읽어서 그런지 비교가 많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타 김밥에 비해선 클라이맥스가 훨씬 뒷쪽에 나오고 이야기의 구성이 처음에는 덜 명확해서 크리스타 김밥만큼 몰입이 확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스페인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스페인어-영어 이중언어 학급에 일학년 때부터 계속 다니기 시작한 아들이 우리들의 스페인어 발음을 수정해 주는 재미를 느끼는 듯 했다. 그래서 막내이지만 가족북클럽을 주도하다시피 하게 된 책이 이 책이었다. 이 책도 소소한 유머들이 들어 있어서 중간에 살짝 웃으며 읽게 되어 흥미를 유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렉사일 지수는 620L로 크리스타 김밥 책 보다 살짝 낮고 적절한 읽기 연령도 8-10세로 추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라틴 배경 작가들의 그림책들을 연구하면서 라틴 문화도 익숙하게 하려고 노력은 해 왔지만 크리스타 김밥 책과 비교할 때는 글의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브레인파워를 좀더 사용한 감이 있다고 할까? 확실히 도서의 레벨 결정에 있어서 다양한 단어수, 평균 문장의 길이 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친밀도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일단 막내의 연령대에 맞추어 검색해서 선정하고 아마존에서 네권 구입한 것이니, 막내가 가장 몰입하고 좋아한 책이어서 다행이다.
Black Brother Black Brother, 이 책을 네 권 구입하게 된건,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가족의 월례 행사인 동네 Barnes and Noble 서점 방문 때였다. 네 권을 사야 하기 때문에 일단 구입 가격도 무시를 못한다. Buy 1, Get 1 50% off, 한권 사면 다른 한권은 50%에 주는, 가격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책들이 우리 눈에 잘 띄는 매대에 진열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네 권을 구입해도 세 권 값만 지불하면 되니 한명 분은 공짜로 가져가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들과 딸이 그 매대에서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책 표지와 책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자기들 아빠가 흑형이라 Black Brother 라는 제목이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이 아닐까. 그 매대에는 Tween (8-12세; in-be’tween’ 즉 사춘기로 접어드는 ‘사이’ 시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나름 영어는 좀 얼추 한다고 생각하던 내가 이 쉬운 단어를 안지가 1년 밖에 안된건 안비밀 ㅠㅠ) 아이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책들을 이미 골라서 진열해 놓았기 때문에 난이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책이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 중에는, 난이도가 가장 있는 책이 아니었던가 싶다. 올해 (2021년) 3월에 첫 출판된 책이어서 그런지 렉사일이나 스콜라스틱에서 책의 적합한 연령대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마존에서는 8-12세에 적합한 책이라고 권하고 있는데, 문장의 길이들은 오히려 우리가 읽었던 다른 책들보다 짧게 느껴진다. (물론 체계적으로 문장 평균길이를 산출해서 우리가 읽었던 다른 책들과 비교하는 논문을 쓰고자 한건 아니므로 양해 바란다. ^^) 하지만 단어들이 좀 난이도가 있다. 음절수가 좀 긴 단어들도 꽤 나오고, 주인공 단테가 펜싱에 입문하여 배우는 과정에서 펜싱에 사용되는 프랑스어 단어들도 꽤 나온다.
하지만 워낙 처음부터 단테가 피부색 때문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부분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크게 동요시켰고, 단테를 향한 우리의 정서적 지지가 이 책을 성공적으로 함께 읽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인공 단테는 12살이라 우리 딸보다 2살 위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아이보다 2살 많은 주인공의 이야기는 일단 성공적 도서선정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문화적으로는 우리 딸이나 아들에게 전혀 이질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주인공 단테와 단테의 형 트레이는 흑인이며 변호사인 엄마와 컴퓨터 아키텍트인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이다. (영어로는 multiracial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한국어로는 혼혈아라는 말로 번역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그 단어에 결합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다문화가정 자녀로 쓴다.) 우리 딸과 아들이 크게 공감하며 읽고 마지막에 제시된 10가지 토론 주제에 대해서까지 열심히 토론할 수 있었던 정말 괜찮은 책이었다.
이번 글은 좀 길이가 길어졌다. 그래도 우리가 가족북클럽을 위해 네권씩 구입할 책들을 선정할 때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소개도 해야 했고, 막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도서들을 선정한 것을 확인한 내용도 얘기를 해야 했다. 선정한 책들을 우리 가족북클럽에서 어떻게 읽었는지도 이야기로 풀어냈다. 우리 아이들은 서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지만 늦둥이가 있어서 아이들끼리의 나이차이가 많이 생긴 집들은 어떻게 도서를 선정해야 할까? 아마도 온가족이 함께 읽는 책으로는 막내의 취향에 한동안 맞춰줘야 하지 않을까? 막내가 그림책을 읽는 나이라면, 그림책도 어른들이 읽기에 생각할 거리도 많고 예술적으로도 괜찮은 책들이 많음을 생각하면 된다. 조금 나이 더 먹은 형, 누나, 오빠, 언니라고 “난 그림책은 더이상 안읽겠어!” 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다. 미안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각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가족 북클럽을 아이들의 연령대에 맞춰 복수로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아무튼 가족북클럽 많이들 하셔서 다른 가족의 다양한 도서선정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