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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운동화가 부끄러웠다

지나온 시간의 힘을 믿으며

by 나야

중학생 딸아이의 운동화를 사러 갔다. 학기 초부터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중간고사에 밀리고 체육대회에 치이다 이제야 짬이 났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고르는 과정에서 우리의 취향은 극과 극으로 갈라졌다. 나는 신었을 때 발이 편한 게 최곤데, 딸아이는 무조건 예쁜 게 최고란다.


어린 눈망울이 계속 한 자리에 머물렀다. 설마 저 하얀색? 감당할 수 있겠어? 디자인이 좀 어중간하지 않나? 운동화도 아니고 구두도 아니고, 저런 게 얼마나 발을 아프게 하는지 아냐고 잔소리 2절을 막 시작할 때, 남편이 불쑥 끼어들었다.


"요즘 애들은 다 저런 거 신던데?"

그리곤 내가 고른 운동화를 보며 결정타를 날렸다.


"이건 당신한테 어울리겠네. 당신이 신지?"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나도 새 운동화가 생겼다.

가볍고 착용감도 편하고 발바닥도 푹신하고 아주 대만족이었다. 이 좋은 걸 딸은 왜 싫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딸아이도 같은 생각인지,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자신이 고른 신발을 사수했다는 기쁨이 만면에 흘러넘쳤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진 아이를 보며 문득 그 골목이 떠올랐다. 40여 년 전, 그 골목엔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소녀가 있었다.




'베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그 시절, 시골에서는 운동화를 '베신'이라고 불렀다. 고무신이 아니라 '베'로 만든 신발이라는 뜻. 골목에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할 때면 너도나도 베신을 끌고 나왔다. 노는데 정신이 팔린 아이들은 뒤축을 함부로 구겨신었다. 그래도 되는 신발이 '베신'이었다.


어느 해 어린이날, 엄마가 빨간 종이상자를 들고 오셨다. 안에는 핑크색 바탕에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나이키 운동화가 들어 있었다. 엄마도 도시에서 큰맘 먹고 사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핑크를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걸 신고 학교에 갔다간 전교생이 쳐다볼 게 뻔했다. 생각만 해도 목덜미가 붉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학교 갈 땐 다른 베신으로 갈아 신었다. 툇마루 밑에 밀쳐놓았던 나이키 신발은 학교 마치고 골목에서 놀 때만 꺼내신었다.


운동화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다 엄마가 새 옷을 사 오시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초록색 원피스. 고급스러운 니트 소재였는데 무릎에 큰 리본이 달려있었다. 그 옷을 입으면 마치 내가 커다란 '선물 덩어리'가 된 것만 같았다. 그 옷은 오직 방안에만 고이 모셔두었다. 나중엔 작아져서 입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주목받는 것도, 칭찬받는 것도 쑥스럽고 부담스럽기만 했다. 왜 그리 주눅이 들었을까? 그렇다고 눈칫밥을 먹은 기억도 없다. 다만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살림을 책임지는 집안의 공기가 어린 내 어깨를 눌러온 게 아니었을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그 시절의 나를 말없이 안아주고 싶어진다.




이제는 무슨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어도 별 거리낌이 없다. 적어도 외형 때문에 우쭐대거나 위축되진 않는다. 허름한 옷을 입었다고 내가 누추해지는 것도, 빛나는 명품을 걸친다고 내가 높아지는 것도 아님을 알기에.


물론 상대방의 반응이 다를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소관일 뿐. 내게는 내 안의 평안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비로소 '믿는 구석'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것이 시간의 힘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지나온 시간들이 삶의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있음을.




"도중에 아프시면 왼손을 들어주세요."

낮에 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받기 전, 간호사가 한 말이었다. 곧 입안에서 쉭쉭쉭 비바람이 몰아쳤다. 드르륵 드릴 소리에 귀가 덜렁거릴 지경이었다. 치과의 기계음은 몇번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왼손은 끝까지 제자리를 지켰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내가 애를 둘씩이나 낳았는데 이거 하나 못 참겠어?'


오늘은 갑자기 남편이 떠올랐다. '우리 남편이 암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고! 근데 내가 이까짓 거 못해낼까 봐?'


두 차례의 암수술, 그 힘들었던 시간이 치과의자에 드러누운 나에게 뜻밖의 위안이 될 줄이야. 물론 그런다고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입안의 태풍이 별 일없이 지나갔다.




빚이 자산에 해당하는 것처럼 인생의 고난 역시 마음의 체급을 높이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겪은만큼 보이고 지나온 만큼 단단해진다. 덕분에 지난날, 뾰족했던 36각형이 둥글둥글 원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나는 30년 전보다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가 덤덤해지고, 낯을 덜 가린다. 20년 전보다 실수를 더 빨리 인정하고 고집을 덜 부리게 되었다. 10년 전보다 스스로 좀 느슨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1년 전보다 감사한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한 번 더 웃을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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