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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Mar 04. 2023

이별 신청은 여기서 하면 되나요

D-6

186일의 긴 여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고 더 이상 둘은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인 것도 깨달았다. 난 비굴하게 울어도 보고, 엉엉 울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심상으로 보통의 나라면 해보지 않을 행동들도 저질렀다. 전 남자 친구의 자니를 끔찍하게 싫어하던 내가 이렇게까지 비참해지다니 정말 사랑은 사랑인가 보다. 내게 100일은 넘긴 사랑은 그가 처음이었으니…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우리 둘 사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세력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나는 그 시간이 지속되면서 나도 모르게 받았던 상처가 대단히 거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면서 어떤 여자가 “그렇게 학력 낮은 년이랑 만나지 말라”는 말을 들어봤을까? 그런 말을 난 이번 연애에서 매 순간 들어봤다. 그뿐일까. 난 끊임없이 검증받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검증은 때로는 나 자신에 대한 검열로 이어져서, 스스로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결국 누군가에겐 대충 산 24살짜리 여성으로 치부되기 마련이구나… 현실은 그렇게 지독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뒤늦게서야 그 남자친구의 집과 가장 가까운 대학교를 들어갔고, 주말이면 남자친구와 함께 있고 싶단 생각에 나름의 큰 방도 구했다. 그러나 그는 날 떠나버렸다. 날 모함하던 세력과 동화되어 나에게 “꼭 편입해서 좋은 대학으로 들어가”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가 떠난 내 마음은 텅 비어버렸다. 집 가까운 곳의 학교로 다닐 걸… 방도 조금 더 외곽이고 좁은 곳으로 갈 걸… 그런 미련한 생각만이 천장을 떠다닌다. 그러나 예전에 누가 내게 해준 말이 있었지. 이별은 거대한 빙하와 같다고, 그런데 빙하는 결국 언젠가 녹아내리기 마련이지 않느냐고 그런데 특히 사람의 마음속에 잔류하는 빙하는 녹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니까 그 힘겨운 한 달만 버텨내렴… 한달만 지나면 네 마음속의 빙하는 모두 녹아내려 잔잔한 파도가 될 거란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혼자 텅 빈 방 안을 둘러보다가 조절할 수 없는 마음을 어디든지 풀어놓고 싶다는 생각에서이다. 그가 날 떠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길 바라며… 얼른 빙하야 녹아내리렴, 이제는 29일이 남았구나.





검정 비닐봉지 하나 담장 너머로 펄렁

날아갈 때 텅 빈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로

자꾸만 저기로 향하려 할 때


정처 없이 헤매는 마음아

이리 온,

한 번쯤 나의 고양이가 되어 주렴


뜻 모를 젖은 손이 가슴을 두드리는 새벽

슬픔을 입에 문 젖내기처럼 골목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주지 않을래?

집집마다의 비극을 모조리 깨워 성대한 잔치를 벌이자

꼬리가 잘린 채 버려지는 것들의 잔치를


그러니 이리 온,

나의 고양이야


사나운 발자국이 겁주듯 찾아든 아침

우연히 바닥에 뭉개진 비닐을 맞닥뜨린 행인이 아아악!

비명을 지를 때, 정말이지 비닐봉지가

밤사이 웅크려 죽은 한 마리 고양이로 보일 때


아무렇지 않은 척 피를 닦고 일어나

다시 저기로 잠잠이 멀어져 갈

나의 마음아

제발 이리 온


나의 고양이가 되어주렴, 박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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