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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 Sep 24. 2023

우리는 비현실 속에 살고 있다

제주에서 돼지 축산농가와 도살장에 다녀왔다. 동물권 영화 <Planet A>와 책 <사회적응거부선언>을 만든 하루와 강정마을 친구들과 함께였다. 그가 몇 년 전 제주의 흑돈 농가를 돌아다니며 찍은 영화 <검은 환영>을 친구들과 함께 보았다. 그리고 그때 갔던 농가들을 다시 찾아가보았다. 내 발로 직접 걸어가, 내 눈으로 돼지들과 직접 마주한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진실로 직시해야 할 현실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나는, 인간은 비현실 속에 살고 있음을.

현실은 무엇인가.


사진 - 토란


더위에 지쳐 죽은 듯이 널부러져 있는 돼지들, 겨우 몸을 반 즈음 일으켜 더러운 물과 사료에 코를 박고 있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좁은 구석에 엉켜 서로 꽥꽥 거리며 물고 뜯으며 싸우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몸을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스톨에 눕혀 평생 고개 한 번 돌리지 못하고 감금되어 있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후각이 예민하지만 악취 속에 몸을 뒹굴어야 하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햇볕 한 번 못 보고 먹고 자기만을,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들만큼 살 찌우기를 강요당하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도살장으로 가는 길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바깥 세상을 도살 차량 안에서 바라보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동물보호법! 전기충격기 사용 금지!>라는 팻말 옆에서 전기충격기로 맞으며 그 고통에 꽤애액 비명 지르며 수송 차량 밖으로 끌려나가고 있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수송 중에 죽으면 플라스틱 박스에 던저져 방치되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생생한 고통 속, 칼날 앞에 선 후, 무딘 칼로 더디게 목이 따이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자신의 몸에서 줄줄 흐르는 몸을 보며 죽어가는 돼지들이 현실이다.

돼지들의 삶이 현실이다.


사진 - 토란


내가 사는 현실은 돼지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다. 인간들이 돼지들의 현실을 직면하면 ‘입맛’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리라. 폴 매카트니는 ‘세상 모든 도살장의 벽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정도로 돼지들의 현실은 악취와 구역질이 난다. ‘고기’라는 단 하나의 종착지뿐인 그들의 생과 사는 참담하고 잔혹하다. 공장식 축산의 돼지들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사는 곳이 오히려 비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고, 그 낯섦은 반갑지 않았다. 찝찝했다.



사진 - 토란


말끔한 도로 위, 깨끗한 차를 타고 몸을 눕혀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오는 내가 비현실이다.

악취 없는 바람이 부는 하늘과 햇살을 느끼는 내가 비현실이다.

길 곳곳에 돼지들이 웃으며 인사하고 있는 간판이 붙은 식당들을 보는 내가 비현실이다.

식탁 위에 마구 난도질 당해 올려진 돼지들, 그것을 맛있다고 쩝쩝거리며 먹는 인간을 보는 내가 비현실이다.

인간의 삶은 비현실이다.


사진 - 토란


한참을 멍했다. 울음도 분노보다도 먼저 찾아온 것은 온 사고와 몸을 마비시켜버리는 충격.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분명 현실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돼지들의 현실을 보니 나의 현실은 비현실이 되어버렸다. 내 현실이 비현실로 감각될만큼 비인간 동물과 인간 동물의 삶은 달랐다. 한 지구에서 같은 생명으로 태어났는데 돼지들의 현실과 나, 인간의 현실 간 괴리는 왜 이렇게 큰 것인가. 잔인하도록 큰 것인가.


돼지들의 현실이 현실이다.

우리는 비현실 속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인간만을 위한 현실, 즉 비현실에서 벗어나 돼지들의 현실을 마주하러 가야 한다. 같은 생명인만큼 돼지의 현실과 인간의 현실은 분명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끊어진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 간의 연결고리를 회복해야 한다. 돼지들의 현실이 지금의 현실 그대로 방치되어선 안 된다. 우리만의 공고하고 허울 좋은 비현실에서 박차고 나가자. 돼지들의 현실을 보러 나서자.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함께 또 다른 ‘현실’을 개척해나가자.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동물해방’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동물’이니까.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의 평화를 바라며 글을 읽고 쓰고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 동물권, 페미니즘, 환경, 퀴어 등 온갖 경계를 넘나드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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