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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책 Jan 03. 2024

대체로 무해한 나의 지구를

아빠는 외계인 두 번째

"지구인들이여. 주목하라."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은하계 초공간 개발 위원회의 더글러스 애덤스다.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은하계 변두리 지역 개발 계획에 따라 너희 항성계를 관통하는 초공간 고속도로를 건설하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너희 행성은 철거 예정 행성 목록에 들어 있다."


지구인들의 눈앞에 화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태양계 여덟 개의 행성 중 네 개의 행성을 추첨하겠다. 추첨이 된 행성은 철거가 된다. 너희 지구 시간으로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붉은 태양으로 보이는 구 안에 여덟 개의 행성 모양의 구가 돌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마치 로또 추첨기를 보는 듯했다.

"자. 이제 추첨 버튼을 누르겠다."

더글러스 애덤스가 추첨 버튼을 눌렀다. 제일 먼저 지구 모양의 구가 나왔다.

"지구에 철거 광선을 작동하라."


"그렇게 지구는 철거되었어."

개학 첫날. 나는 학교의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은 후, 친구들에게 지구의 철거 장면을 설명했다.

"그거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인데."

짝인 포드가 궁금해했다.

"맞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안내서?"

"지구인, 지구에서 출판된 책인데 너 그 책 안 읽어봤어?"

"난 처음 듣는 책인데."


***


지구가 철거되던 그날. 나는 엄마와 함께 새해 연휴에 맞춰 아빠 행성에 가려고 주책방에 있었다. 12월 30일 토요일 오후 7시, 마감 시간에 맞춰 마법 같은 주책방의 책장을 열어 아빠의 집에 갈 계획이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은하계 변두리 지역 개발 계획을 지구인들이 어떻게 아나. 혹시나 지구가 추첨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구는 운도 없지. 제일 먼저 추첨이 되다니. 엄마와 바로 주책방의 책장을 열어 지구에서 탈출했다.

주책방의 책장이 엄마와 나를 구했다. 외계인 아빠의 공사가 빚을 발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내 고향 지구를 잃었고 아빠의 행성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지구 나이로 10살 나이에 다른 행성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그래도 엄마보다는 나을 거라고 위로했다.

다행히 이 행성은 지구와 비슷하다. 이 행성에서도 어린이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 어린이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 행성의 어른도 별반 다르지 않네. 겨울방학도 있었다. 이 행성에서는 또 무엇을 배우나. 겨울방학 동안 나는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


순수한 마음 호 조종실. 포드가 물었다.

"지구인. 배고프냐?"

"음. 글쎄. 좀 그런 것 같은데."

"일단 우주의 시작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잠깐 좀 먹자고."


포드와 나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순수한 마음 호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SF소설 마니아인 포드는 우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SF소설을 읽는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언젠가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그 사람을 만나겠다는 꿈이 있어서 자신의 우주선 이름을 순수한 마음 호로 지었다고.


우주의 진짜 지배자. 우리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

내가 보는 만화나 책에서 지구는 늘 어린이가 구했다. 나는 지구를 되돌릴 것이다. 대체로 무해한 나의 지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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