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원동 바히네 Mar 30. 2023

대진청과

사라진 대진청과가 그리운 요즘 

 망원역에서 망원 시장으로 오는 길목에도, 망원시장 안에도 과일을 파는 가게는 많다. 주로 제철 과일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파는데, 그 가격이 얼마나 싼지 보는 사람들마다 놀라기도 한다. 사과는 8개 5천원, 참외가 제철일 때는 7개 8천원, 딸기는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담아 6천원씩에 팔기도 한다. 다른 야채들도 싸지만 과일 가격은 가끔 놀랄만큼 쌀 때가 있다. 입고된지 며칠 지나 빨리 판매해야할 때는 가격이 더 떨어진다. 비닐봉지 없이 장바구니에 담아달라고 하면 덤을 얻을 때도 있다. 


 천국같은 과일 장보기 후 집으로 돌아와 신나게 과일을 준비해 한 입 가득 베어무는 순간, 천국이 끝나는 날이 많다. 보기에 크고 싱싱해 보여서 골라 담아왔더니 맛은 영 맹탕인것이다. 빨리 크기만 키운 탓에 과일 고유의 향과 맛은 모두 없어지고 희미한 설탕물 단맛만 남은 과일들. 모두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몇 번 같은 실망을 겪고 나면 과일 사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이 과일들은 어디서 어떻게 키워져 여기까지 온 것일까. 


 망원시장 중간쯤에 이 과일 가게들과 독보적으로 다른 형태의 과일가게가 있었다. '대진청과'. 보통 과일을 마구 쌓아놓고 판매하는 시장 고유의 특징을 모두 무시하고 몇 가지 과일만 샘플처럼 가지런히 정렬해둔 가게였다. 사과는 두 바구니, 방울토마토는 다섯 팩, 만감류는 종류별로 한 바구니씩만 내 놓았다. 한 쪽 구석엔 늘 레몬과 라임, 그리고 아보카도가 있었다. 가격은 다른 과일가게보다 3천원씩, 많게는 두 배까지도 비쌌다. 


 처음 대진청과에서 구매한 품목은 라임이나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는 다른 가게에 있는 날도 있었지만 라임은 대진청과에만 있는 품목이었다. 같은 아보카도라 하더라도 대진청과에는 덜 익은 것 부터 바로 먹을 수 있게 후숙이 된 것까지 늘 구비돼 있었고 나는 그 중에서 단 한개만 골라도 구매가 가능했다. 대진청과 사장님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아보카도 고르는 법 뿐만이 아니었다. '요요 방울토마토'와 '죽향딸기', '대저짭잘이 토마토(그냥 짭잘이도, 그냥 대저토마토도 안되고 '대저'와 '짭잘이'가 같이 꼭 들어가있어야 하고 농협 인증을 받은 품종으로다가)'를 철 놓치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요요토마토요?"

"이건 엄청 맛있어. 이건 쪼끄맣고 엄청 맛있어. 엄청 달아. 진하고. 향이 좋고. 엄청 비싸. 그냥 대추방울이도 있어. 근데 요요가 딱 이 때 나오니까 한번 먹어봐."

 나는 그 때마다 사장님에 대한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추천 상품을 사왔다. 요요토마토는 수퍼에서 파는 큰 방울토마토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양념을 조금 치자면 시칠리아에서 먹었던 토마토를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2주만 지나도 요요토마토는 자취를 감췄기 때문에, 매 년 눈에 보이면 잊지 않고 사먹던 아이템이 됐다. 

 죽향딸기는 '내가 바로 딸기다!'하고 외치는 듯 한 맛과 향을 가진 품종이다. 설향 옆에 나란히 놓여져 있지만, 가격은 1.5배에서 2배까지도 비쌌다. 한 팩에 만원 또는 만이천원, 비싼 때는 만삼천원을 부르니 나는 매번 그 앞에서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지만 결국 꼭 장바구니에 죽향 딸기를 넣어왔다. 짙은 농도의 향에 딸기의 단맛도 두 배쯤 진한 죽향딸기는 그 이후 여러 품종을 맛보고도 여전히 최애품종으로 남아있다. 


 황금향만 진열되어있어 '천혜향은 없나요?'하면 사장님은 비밀스럽게 매장 안의 냉장고에서 천혜향을 꺼내주셨다. 가게 밖에 있는 진열대에는 과일이 샘플로만 진열되어있지만 가게 안은 큰 냉장고들로 가득차서 과일 종류별로 온도를 달리하여 보관됐다. 천혜향은 다섯개 만원, 황금향은 네개 만원. 천혜향과 황금향을 섞어서 만워너치를 달라고 하면 또 기꺼이 황금향 두개, 천혜향 세개를 담아주셨다. 가끔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증정 행사를 할 때면 놓치지 않고 상품권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대진청과의 주요고객은 나같은 시장 이용 주민도 있지만 주변 카페나 디저트샵이었다. 납품처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 관리에 온 힘을 쓴다고 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대진청과 옆에 호떡집이 생겼다. 그 호떡집은 흥행에 성공해 늘 줄이 길게 늘어서게 됐다. 가끔은 대진청과 앞으로도 줄을 서는 날도 있었는데, 때문에 아예 망원 시장 밖에서 줄을 서도록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저집 호떡이 그렇게 맛있어요?"

 "몰라. 난 당뇨가 있어서 안먹었어."

 

 호떡집이 흥행에 성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진청과는 사라졌다. 호떡집은 자리를 옮겨 매장을 냈다. 


 이것 저것 떨어진 물건들이 많아 앱을 지운지 오래됐던 마켓컬리에 접속했다. 따로 배송을 시키는 것 보다야 낫겠지 하면서. 죽향딸기는 품절. 메리퀸 딸기를 시켰다. 종이 박스 안에 플라스틱 케이스로, 그리고 그 안에 스티로폼에 딸기가 얹혀왔다. '그럼 그렇지...' 새콤한 메리퀸을 먹고 있자니 대진청과가 더욱 그리웠다. 어디로 가셨을까. 건강하실까.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잘 길러지고 잘 관리된 좋은 과일을 추천하고 계실까. 


 

작가의 이전글 집 앞 놀이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