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주간. 채식지향 2주년을 앞두고.
초복이었다. 비가 하도 오길래 장마인 줄 알았더니 아직 장마는 오지도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쏟아부을 장마전선은 슬슬 북상 중이라고 한다. 출근시간에 와르르 비가 쏟아지면 출근할 마음을 접는다. 하루종일 집에서 재택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에어컨을 틀게 되고, 거기에 제습기까지 틀어야만 '쾌적한 업무환경'이 갖춰진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출근을 하는 편이 에너지 사용 면에서 낫겠지. 알면서도 좀처럼 비를 뚫고 회사를 가는 일이 내키지가 않는 하루하루다. '날씨가 미쳤어'라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며 '불평만 하지 말고 고기라도 줄여보지 그래'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에어컨과 제습기, 건조기 없이 못 살 것처럼 구는 스스로에 대한 투사인 것을 알아차린다.
어찌어찌 얼레벌레 채식지향을 한 지 7월 셋째 주면 2주년이 된다. 2년 사이에 나는 무수히 많은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 채식의 결심은 두려움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아프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에서 '채식이 나를 건강하게 해 줄 거야'라는 믿음을 만들어냈다. 그 믿음 안에만 있다면 나는 안전함을 느꼈고, 그 믿음이 깨지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채식이 실제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과, 실제로 내 체력의 엄청난 변화(나는 태어나 지금 체력이 가장 좋다), 호르몬 밸런스를 되찾은 수치적 변화와 관계없이 채식에 나의 안전을 맡긴 투사는 1년이 넘게 계속 됐던 것 같다.
가끔 채식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채식을 하다가 그만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거나 (유튜버나 연예인 같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채식 메뉴가 없는 장소로 모임 장소를 결정한 친구에 대한 섭섭함을 느끼거나 하는 일들을 모두가 종종 경험한다. 나는 아직도 내 채식 결정을 얘기할 때마다 '내가 너 옛날에 고기를 얼마나 먹었는지 똑똑히 기억하는데!' 하는 지인을 자주 마주한다. 이런 경험들에 흔들리지 않고, 감정이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채식을 묵묵히 이겨나가는데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내 세계가 바뀐 것을 남의 세계도 바뀐 것으로 착각하지 않고, 남의 세계에 내 세계를 투사하지 않으며, 상대의 반응을 상대의 것으로 우아하게 남겨주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했다. 남이 채식을 그만두든 말든, 남이 내 채식에 대해 비아냥 거리든 말든 (물론 그 비아냥은 그 사람의 두려움의 표현일 것이다.), 나의 세계는 나에게만 있는 것을 단단히 알고, 또 믿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나의 힘을 믿는 것은 채식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채식을 아무리 지속해도 지구 온난화는 여전히 가속화되고 있고 나 역시도 에너지 소비량을 더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인구는 늘고 있고, 복날이라는 이유로 동물들은 더 많이, 더 싼값에 소비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 세계'에서 '내가 가진 힘'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믿어줘야 한다. 최근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요즘 회사일로 큰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예전이었다면 며칠 동안 밤 잠 설칠만한 일이 최근에 계속 됐지만 그 일을 대하는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 이유는 그 일에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을 것인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한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의 힘을 온전히 믿게 됐기 때문이다. 채식을 지속하는 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구는 계속 망가져가고, 동물은 계속 더 많이 죽어나가고, 사람들이 채식을 얼마나 더 비아냥 거리든 말든, 나는 내가 먹을 것을 - 그러니까 하루에도 꼭 두, 세 번이 반복되는 이 일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또 존중하기 때문이다.
초복이라고 특별한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 요즘은 아침마다 5가지 과일을 먹고 있기 때문에, 기력이 없어 지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해서 이 여름에 기력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동물성 단백질과 가공식품을 집중적으로 섭취하다 보니 정적 몸에 필요한 비타민, 미네랄 같은 영양소가 부족한 것은 아닐지? 현실에 맞지 않는 전통을 별생각 없이 소비하는 것을 그만두고, 정작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채워주는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일을 만끽해 보면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