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에서 주 3일 출근으로 바뀐 그 이후
엔데믹의 선포와 함께 100% 재택근무가 가능하던 시스템이 주 3회, 한 달에 12회 출근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주 2회나 재택근무를 하는데 왜 불만이냐며 배가 불렀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로지 내 자율성에 따라 출퇴근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에서 '해야 해서 한다'로 바뀌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100% 재택근무를 할 수 있던 때도 대면으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알아서 출근을 잘했지만, '주 3회는 출근하라'는 가이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다 큰 성인으로서의 자율성에 큰 손상이 오는 듯했다.
자율성을 뺏겼다는 억울한 마음을 차치하고, 주 3회 출근은 왜 힘이 들까? 처음엔 에너지 소모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가 복잡한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쏟는 에너지며, 출퇴근길에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8 천보는 걷게 되는 것이 힘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하철로 출근하던 어느 날,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번호를 달라고 했다. 소름이 끼쳤다. 진짜 무슨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장면이라기보다, 모든 맥락에서 '도믿남'같다고 생각했다.
"아니오."
단호히 말하고 헤드폰을 쓰고 걷는데, 또 내 어깨를 쳤다. 잠실 주 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할 때처럼 사람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지하철 역에서 싫다는 사람에게 자꾸 말을 붙이는 그 사람이 불쾌해졌다.
"아니오. 싫다고 했잖아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당연히 아무도 나를 돕는 이는 없었다.
그다음 날부터 자전거 출근을 시작했다. 나는 8 천보를 걷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지하철을 타는 게 힘들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을 볼 수 없는 지하라는 점도, 많은 사람들 틈에 나를 끼어 넣어야 한다는 것도, 끊임없이 들리는 소음도, 모두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핸드폰에 몰두해 있는 것을 보는 것도, 혹여나 부딪치기라도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게 쌍욕을 주고받는 것도 싫었다. 회사까지는 아주 멀지 않은 거리이고 99%가 자전거도로로 이어져 있으며, 그마저도 모두 한강변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한강 공원에서 마포대교로 올라가는 길에 엘리베이터가 없지만, 전기자전거로 올라가니 땀 흘리지 않고도 잘 올라갈 수 있었다. 며칠은 출근만 자전거로 하다가, 퇴근까지 자전거로 하기 시작했다. 내리막과 직진만 하면 되는 퇴근길에는 따릉이를 타기도 하고 전기자전거를 이용하기도 했다.
자전거 출근길은 언제나 신이 난다. 망원에서 여의도로 가는 한강공원은 여름을 맞아 온갖 나무들이 각자의 초록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강변 너머에는 밤섬이 있는데, 아무 발걸음이 없는 밤섬은 완전히 빽빽이 우거져 정글이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밤섬을 보면서 토마스 산체스의 그림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삽화로 처음 알게 된 토마스 산체스의 그림을 본 뒤로는 우거진 숲을 보면 산체스의 그림 속에 있는 명상하는 사람들이 그려진다. 빽빽한 빌딩 숲을 뒤로하고 고요히 한강에 떠있는 밤섬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기도 한다.
퇴근길엔 그날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나 앞으로 해야 할 프로젝트를 생각하거나, 미팅 때 들었던 말들을 다시 되짚기도 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에서 내려 집으로 올 때쯤이면 그 생각들이 사라져 있었다. 확실한 '온/오프'에 효과가 좋은 퇴근 방법이다.
출, 퇴근길이 힘든 또 다른 이유는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자책을 들고나가도 사람들 틈에 끼어있으면 책을 읽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오로지 '이동'에만 시간을 써야 하는데, 그 시간이 유쾌하지 않으니 힘들었던 것이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서 이동 시간 자체를 놀이 시간으로 쓰고 있으니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감각이 만족감을 더했다.
재택근무 하는 날엔 아침이 더 여유롭다. 평소 아침에 녹차만 우려 마시는데, 재택 하는 날엔 가끔 녹차를 마신 뒤 7시가 넘어 홍차나 백차, 보이차를 한번 더 마시는 여유를 누리기도 한다. 부지런을 떨면 아침 일찍 한강에 나가 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린다. 750ml 가득 채워간 보온병을 다 비울 때까지 차를 우려 마시고, 간단한 요가를 하고 돌아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행복하고, 감사하고, 불쾌하고, 위험천만하고, 벅차오르는 일들이 다양하게 일어났던 생일주간을 보내고 연결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과거의 상처들을 다 잘 흘려보내고 있는지, 나는 깊이 공감하고 내어주는 사람인지, 모든 존재의 연결을 깊이 믿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런 물음들을 던지려고 갖가지 일들이 일어났나 보다. 아주 예전에 발리에 갔다가 처음으로 명상을 배운 날, 명상 가이드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라'는 말에 앞이 깜깜해졌던 나를 가엾게 안아주고 있는지, 매일 아침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며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