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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Nov 03. 2023

휴식은 가짜식욕을 없애준다.

발리여행기 2. UDARA BALI - YOGA & MEDITATION

 발리의 전체 일정 중 반은 리트릿에 참여하기로 했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리트릿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다. 리트릿의 사전적 정의는 후퇴, 철수, 도피라고 한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떨어져 나와 다시 재정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요가나 명상을 하며 일정 기간을 보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구글에서 'Bali Yoga Meditation'을 검색 결과로 나오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비교했다. 발리엔 리트릿 프로그램이 정말 많아서 지역별로 원하는 일정, 원하는 가격대, 원하는 프로그램에 맞게 참여할 수 있다. 보통은 요가 리트릿이 가장 많고, 특색 있게 여성의 에너지를 중심으로 작업을 하는 프로그램이나 명상에만 집중하는 프로그램, 하이킹과 웨이트 운동을 중심으로 꾸린 프로그램도 있다. 나는 가격대는 조금 있더라도 요가와 명상 프로그램이 괜찮아 보이는 것으로, 그리고 채식 식사가 제공되는 것을 중심으로 알아봤다. 숙박하는 장소도 가급적 깔끔하고 괜찮았으면 했는데 이 모든 것을 갖추고 하루 한 시간 마사지도 제공되는 곳을 찾아 예약했다. 짱구의 <Udara Bali - Yoga & Meditation, 이하 '우다라'>이었다. 프로그램에 사운드배스와 다양한 스페셜 이벤트(함께 영성음악을 만든다던지, 쿤달리니 요가의 호흡법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것 등)가 있기도 했고, 사우나와 자쿠지, 무제한 식사와 간식이 제공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원하면 1:1 세션을 따로 신청해 참여할 수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포함된 것을 감안하고는 가격이 합리적인 편이라 생각됐다.


 우다라에서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갔다. 주로 아침 6시 반 또는 7시 반부터 명상이나 요가 수업이 시작됐다. 모든 수업은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이니 참여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늘 일찍 일어나는 편인 나는 눈이 떠지는 대로 'Cave(동굴)'에 들어가 좌선명상을 했다. 그곳은 핸드폰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는 곳. 어떤 날은 30분이었다가 또 어떤 날은 50분 명상을 하기도 했다. 명상을 마치고 나오면 우다라 바로 앞의 해변을 걸었다. 20분에서 30분 정도 짧은 산책을 하고 나면 첫 요가수업을 듣거나 아침을 먹었다. 오전에 1-2개의 수업을 듣고 나면 점심시간. 'Community Table'이라고 써진 큰 테이블에 앉아 함께 머물고 있는 '도반(함께 수행하는 동료들)'들과 식사를 한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두 시간씩 먹게 된다. 모든 식사는 전식과 메인요리, 차나 커피, 후식이 포함되어 있고, 오후에 간식이 먹고 싶으면 스낵을 시켜 먹을 수도 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잠시 쉬거나 자쿠지와 사우나를 즐기기도 하고, 하루 한 시간 주어지는 마사지를 예약해 받기도 했다. 오후에 또 1개에서 3개 정도의 수업을 듣고 나면 저녁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하루는 잘 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힐링이 이렇게 바쁠 줄 누가 알았겠어! “

 

 도반들과 내가 입을 모아 의견 일치를 한 것 중 또 하나는 이곳에서는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음식과 음료가 포함이라고 하니 처음 하루 이틀은 여러 메뉴와 간식까지 빠트리지 않고 먹기도 했지만, 이틀째 저녁부터 식욕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전식과 본식, 거기에 스무디까지 마시면 남길게 분명해지자 본식 하나와 주스만 시키기 시작했다. 늘 하루에 세끼를 다 먹던 내가 식욕이 줄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오후 간식은 먹을 시간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 왜 이렇게 배가 안 고프지? 평소보다 식욕이 훅 줄었어.”

 “나도 그래. 난 오후에 엄청 단 초콜릿케이크랑 커피 없이는 하루를 못 넘겼는데, 여기서 케이크를 준다는데도 먹고 싶지 않고, 저녁엔 전식만 먹어도 괜찮아.”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신체 활동이 줄어서 그렇다고 하기엔, 나는 평소보다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재택 하는 날엔 정말 방-거실-화장실-주방만 움직이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도 세끼를 다 먹었다. 이곳에서는 요가를 하루에 그래도 세 시간은 하고, 리조트 내에만 걸어 다녀도 하루에 오천보를 걷는데  말이다.


 며칠 동안 식욕을 관찰하고 난 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신체 활동은 늘었지만 쓰는 에너지는 줄었다는 것. 이곳에서 가장 아껴진 에너지는 뇌가 쓰는 에너지였다. 어디 가서 먹어야 할지 식당을 찾는 일부터 어디 가서 뭘 해야 할지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무슨 샐러드와 무슨 스무디를 먹을지만 정하고 나면 크게 내가 선택해야 할 게 없다. 하루 종일 요가와 명상만 하다 보니 뇌에 드디어 휴식이 주어진다. 인간의 신체 기관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뇌가 휴식모드에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에너지 소모가 줄어든 것 같았다. 뇌뿐 아니었다. 자꾸만 눈을 감기는 명상과 요가 선생님들 덕분에 심지어 시신경도 휴식의 시간이 많아졌다. 습관적으로 보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자극도 현격히 줄어드니 여기에 쓰는 에너지도 아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스트레스가 없었다. 스트레스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반응이 사라진다.


 두 번째 이유는 언제든 배가 고프면 원하는 걸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욕망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면 언제든 식당으로 와서 원하는 것을 말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음식이 모두 이미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추가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금 당장 욕심내서 뭘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늘 실패로 이어지는 요인 중 하나가 참기 때문에 오히려 억압되었던 요구가 폭발하기 때문인데, 이것이 반대로 작용했던 것.


 마지막 이유는 가공식품이 배제된 자연식물식에 가까운 식단을 먹기 때문에, 내 몸에서 필요한 정도를 먹고 나면 더 이상 식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아침은 스크램블두부 토스트 또는 스무디볼을 주로 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템페랩, 아보카도롤, 채식 커리, 두부 타히니 볶음 등과 밥을 먹었다. 가끔 인도네시아식 볶음밥과 다진 생선 사타이를 먹기도 했다. 팔라펠 버거와 붓다볼도 좋은 점심 메뉴가 되었다. 이곳의 식재료는 로컬 과일과 야채를 사용하며, 동네 어부들이 잡아온 해산물을 이용한다고 한다. 고기 메뉴는 없다. 비건 디저트는 에너지볼 한 종류뿐인 것이 아쉽지만, 음식은 반 정도가 비건 메뉴이고 나머지 반이 베지테리안 메뉴다. 그곳에 있는 메뉴를 모두 맛보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지만, 결국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생겨서 여러 번 반복해 먹게 됐다. 어쨌든 미량영양소가 풍부한 식단으로 삼시 세끼를 먹으니 가짜 식욕은 사라지고, 내가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섭취하고 나면 그 이상은 먹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공부해 왔던 것들이 실제로 한꺼번에 내 몸으로 느껴지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다라에서 느낀 신비로운 것은 식욕의 감퇴뿐 아니었다. 식욕이 줄어든 이유와 마찬가지로 잠을 훨씬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건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아니었고 나와 몇몇 친구들이 공감한 것이다. 어떤 날은 3시간을 잔 날도 있었고, 보통 5시간 정도 잠을 잤다. 아주 푹 7시간 이상 잔 날은 하루뿐이었다. '낮잠 자지 뭐'라고 생각했지만 잠을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에너지 소모량이 크지 않으니 잠을 더 많이 잘 욕구도 사라졌다.

 신체의 변화를 느끼는 것만큼이나 신기했던 것은 우다라의 바이브였다. 우붓에서도 요가 리트릿을 해본 적이 있고, 태국 치앙마이와 끄라비, 제주도와 양양에서의 리트릿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곳이 만들어내는 바이브는 독보적이었다. 각 리트릿마다 특별한 분위기가 있지만 이곳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명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참여자들의 이름을 되도록 외우려고 해서 이름을 불러주는 것 등 서비스가 훌륭할 뿐 아니라, 이 리조트 곳곳의 인테리어나 구성이 그 어느 하나 의도되지 않은 것이 없는 점도 그랬다. 건물 전체가 나무뿌리가 감겨있는 듯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부터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그중에서도 사우나와 자쿠지를 이용하기 위해 가는 곳은 이 나무 가지 같은 구조물이 굉장히 불편하게 되어있다. 사우나 끝에는 명상실인 '동굴'이 있는데, 이 불편한 구조들은 명상실로 가기까지 의식을 가지고 알아차림을 위한 훈련을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했다. 가장 꼭대기층에 있는 스파실로 가는 길은 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리게끔 되어있고, 이곳에는 빨간 꽃이 피는 나무를 심어두어 자연스럽게 꽃길을 걸으며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이 길을 지나 스파에 도착하면 온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야외 스파를 즐길 수 있다. 요가를 하는 곳은 총 세 곳인데, 이 중 두 곳은 모두가 참여하는 요가를 위한 공간이고, 가장 작은 요가실은 지도자과정(TTC)을 위한 곳이다. 큰 요가실은 모두 바람이 통하게끔 설계되었으며 석양을 보며 명상이나 요가를 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모든 객실 또한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작은 정원이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지내면서 친해진 이 중 가장 행운이 가득했던 R은 침대에 누우면 석양과 달, 그리고 바다를 한눈에 보는 방을 배정받아 매일 밤 잠들기 전,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서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잘 설계되고 교육된 공간과 직원들을 보며, 도대체 누가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완전히 히피 같은 사람일지, 아니면 예술가일지, 그도 아니면 영성에 도가 튼 헤어스타일이 자유분방한 사람일지 궁금했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중년을 넘겨 보이는 백인 남성이 와서 인사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이곳의 오너입니다."


 쪽진 머리를 한 그는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어디서도 예술가적인 면모를 한눈에 뿜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는 젊은 시절 투자은행에서 일하며 하루에 세 시간씩 자면서 일이 끝나면 개인 투자에 열을 올리는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경제의 흐름을 빠르게 캐치하는 능력이 있었고, 이 능력덕에 투자 그래프가 우상향을 빠르게 그려가는데서 도파민을 뿜어내는 그 시간들에 중독이 되었었다고. 그러던 그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발리에 와서 이곳을 만들었다. 그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우다라에서 보내며 이곳의 시설들을 이용하거나 요가 수업을 듣기도 했다. “나는 이곳을 우리 집 거실처럼 관리해요.” 우다라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바이브’를 주는 데는 이런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우다라에서 친해진 우리는 우다라 이후 각자의 여행지로 흩어졌지만,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건강한 음식들과 하루 8시간까지 들을 수 있는 명상과 요가 수업들, 하루 한 시간의 마사지에 익숙해져 물 한 병, 생 코코넛, 요가수업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너무 어색해져 버렸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어색한 것은 하루 종일 함께 있던 시간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자 다시 배가 고프다. 마라샹궈와 순두부찌개, 감자튀김 같은 자극적인 음식이 당기기도 한다. 춤을 추고, 요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지만, 업무가 바쁜 날엔 꼭 마라샹궈를 먹는다. 그것도 배달로. ‘발리에서 가져온 젠 무드가 언제 사라질지 궁금하다’는 사람들의 말에 응답이나 하듯이. 이탈리아가, 제주도가 그랬듯 발리가, 우다라가 자리잡았다.

‘정말 힘들 땐, 우다라에 가면 돼.’ 그거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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