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여행기 2 - 세계 3대 홍차 산지 '우바(Uva)'
리트릿센터의 주인은 우바 지역에 차밭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차를 좋아하는 차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돈 많은 스리랑카에 사는 외국인이자 관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과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으로서 우바에 차밭을 사서 차를 생산하는 편이 돈이 될 거라는 계산은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차 밭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새해맞이 파티를 위해 리트릿센터를 찾았을 때 차를 내어줬기 때문이었다.
"이건 정말 프리미엄 차라니까. 손으로 잎을 따서 손으로 비비고 말려 만든 홍차야. 잎을 봐. 깨져있지 않지?"
그는 연신 그의 프리미엄 홍차를 자랑하며 펄펄 끓는 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다시 한번 펄펄 끓였다.
'아아...'
한눈에 봐도 힘들게 만든 귀한 차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런 차를 저렇게 '막' 끓이다니...
"제가 한번 우려 볼까요?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차를 짧게 우리거든요. 한번 비교해 보세요. 재미로요."
어느새 리트릿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센터에 적당한 차도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대충이라도 기능을 비슷하게 할 수 있을법한, 먼지가 쌓여있던 기물들을 닦았다. 끓인 물은 한 김 식혔다가 찻잎에 부어 빠르게 우리고, 숙우를 대신할 피쳐에 차를 따랐다.
"아니 그렇게 빨리 우린다고? 그럼 맛이 다 안 날 텐데? 아깝잖아."
"아, 몇 번 더 우려요. 차에 따라 다른데, 이 차는 아마 그래도 다섯 번은 우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짧게 우리면 쓴맛은 우러나지 않고 차가 훨씬 달게 느껴질 거예요. 드셔보세요."
별 대단한 기술도 아닌데, 사람들은 환호했다. 차를 배우고 즐겨 마셔두길 잘했다 싶었다. 예전엔 여행지에서 요리를 해서 사람들과 소통했었는데, 그게 어느새 차로 옮겨갔구나 싶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예상하면서 차를 배우고 마신 것은 아니었는데, 마시고 또 마시다 보니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아니 이런 맛이 난다고 이 홍차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지금 얘기한 거 혹시 다 적어줄 수 있을까? 혹시 영상으로 찍어도 될까? 아니, 혹시 우리 차 밭에 가서 지낼래? 거기 아주 럭셔리하지는 않지만 게스트가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있어. Be my guest!"
일주일간의 리트릿 이후 나는 어쨌든 우바 지역에 가서 스리랑카의 홍차를 보고 마시고 오려던 참이었다. 예약해 두었던 숙소는 취소가 가능했다. 이런 호의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고, 그때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받는 편이 좋다는 것을 20대 때부터 해왔던 여행을 통해 배웠다. 한국에 태어나 자란 여성으로 이렇게 '잘 받기'의 기술은 배워야 하는 영역이다. 어쩐지 누군가 믿도 끝도 없는 호의를 베풀 때, '이 사람을 뭘 믿고'라는 마음이나 '이걸 받으면 나도 뭔갈 보답해야 할 텐데'라는 마음의 아래엔 '나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무의식이 있고 그 아래엔 '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버림받기 싫은' 두려움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남들에게 의지하기 싫어하고 독립적인 삶을 이루고자 안간힘을 써오다가도 여행만 가면 덥석덥석 어떤 호의도 쉽게 받아들여왔다. 때문에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구들로부터도 온갖 걱정을 다 사 왔다. 왜 여행지에서 나는 바뀔까?라는 생각은 최근에 와서야 여행지에서 나는 모든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조금 더 편안하게 '참 나'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제안을 받은 게 놀랍지도 않아."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제인을 데려가도 되나요? 일종의 보조 역할이 필요해요. 차를 우리는 방법을 찍으려면 한 명이 더 있으면 좋은데."
"그럼, 제인도 같이 지내. 각각 방갈로 하나씩을 쓰도록 얘기해 둘게."
리트릿에서 만난 영국에서 온 '제인'이 급 합류했다.
택시를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우바로 가는 길은 고행길이었다. 운전자는 미숙했고, 도로 사정은 나빴으며, 진흙길에 차가 두 번이나 빠졌다. 어디선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타나 차를 밀었고, 아주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우바에 도착했다. 유럽 빈티지 가구들과 기물들로 채워진 귀여운 숙소였다. 파리 플리마켓에서 뿅 하고 나타난 것 같은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우바에서의 이틀은 제다를 하며 보냈다. 찻잎을 따는 일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힘들었다. '일창일기', 새싹 하나와 잎 하나가 붙어있는 곳 까지를 톡! 하고 따야 하는데, 30분을 땡볕에서 말없이 잎만 따도 100g은커녕 10g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찻일을 하는 숙련된 언니들은 톡,톡,톡,톡 빠르게 잎을 따나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시간에 몇 킬로를 따지는 못했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몇 시간 동안이나 말없이 잎만 따야 했다. 그렇게 모은 잎은 잠시 숨을 널어 숨을 죽이고, 본격적으로 손으로 비비는 유념을 한다. 한 시간 정도 쉬지 않고 일정한 힘으로 찻잎을 둥글리며 비빈다. 숨을 죽인 찻잎은 부서지지 않고 굴려지며 찻잎의 표면과 속의 수분이 일정하게 맞춰진다. 찻잎에 나는 상처들은 산화를 쉽게 한다. 말이 쉬워 한 시간이지, 이 시간은 정말 고행의 시간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수다를 떨 수도 없고, 침묵 속에 전완근 운동을 해야 했다. 찻잎을 따고, 이 찻잎을 비비는 사람들 각자가 가진 손의 에너지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 유념 과정이 ‘레이키(Reiki)’ 같다고도 생각됐다.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손의 감각으로 부드럽게 시작해 압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똑같은 잎으로 만들어도 누가 유념했냐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는 이유를 ‘각자의 에너지가 달라서’라고 표현한 점이 좋았다.
침묵의 유념을 한참 하다가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말없이 무표정으로 찻잎을 굴리던 언니들이 와르르 웃기 시작했다.
"해피 레이디, 해피 티!!!"
국경을 넘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통하는 너스레가 있다.
유념을 끝낸 차는 산화에 들어간다. 온도와 습도를 맞춘 발효실에서 산화를 거친 잎은 건조기에 넣어 말린다. 꼬박 이틀이 걸리는 과정이었다. 200g의 찻잎을 따서 40g 정도의 차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한 줌의 차. 한 팩에 3~4만 원 하는 차가 비싸다는 생각이 쏙 들어가는 순간이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달큼하고 향긋한 향을 뿜으며 짙은 황금빛을 뿜으며 우러났다. 다섯 번까지 우리면 향이 많이 약해졌지만, 이 고생을 해서 만든 차를 버릴 수 없어 우리고 또 우려 마셨다. 찻잎을 많이 넣고 물을 적게 넣어 짧게 우리면 나오는 맛들, 그리고 두 번, 세 번, 네 번 우릴수록 달라지는 맛과 향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찻잎을 잘 걸러야 쓰지 않게 우려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들을 하며 차 농장 사람들과 차를 나눠 마셨다. 그들은 나를 '한국에서 온 차 전문가'라고 불렀다. 차 전문가는커녕 이제 막 취미로 차생활을 시작한 것인데, '전문가'는 곧 '빅 바이어'가 되었고, 오해는 순조롭게 커져갔다. 한국에 차 농장에 일자리가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좀 더 섬세한 제다도 배우고, 한국의 차시장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전 그냥 차를 자주 마시는 사람일 뿐이지만, 혹시라도 알게 되면 꼭 연락할게요."
스리랑카로 가는 비행기에서 박우란 님의 <애도의 기술>을 읽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삶을 변화시키려면 취미를 내 삶의 중심에 가져다 놓을 수 있도록 ‘노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경험한다고 정체된 욕망의 출구를 낼 수는 없지만, 취미를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인 양, 자아를 잊은 듯이 몰입을 하는 것, 그 노동의 에너지가 삶을 변화시킬 힘이 된다고 했다.
술을 한 모금만 마셔도 빨개지는 얼굴을 무시하고, ‘더 자주 많이 마시면 는다 ‘는 말을 믿고 좋아하지도, 몸에서 소화하지도 못하던 술을 마시는 행위를 삶에서 없앴다. 대신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와인을 마시며 맛보다 이야기가 더 재밌었던 나는 차를 마시면서 그 충족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하동에 가고, 차를 팔아보기도 하고, 차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다. 차를 두고 오가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조용히 혼자 마시는 찻자리의 시간도, 함께 마시는 찻자리들도 소중해졌다.
차는 내 일상의 중심에서 활력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도 그랬다. 내가 차를 좋아하고 자주 마신다는 이유로 여행의 색이 바뀌고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내가 쏟았던 노동은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음을 확신한다. 돈이 되는 취미인지,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들인 시간과 돈, 노동 대비 남는 게 충분히 있는 취미인지, '원데이'로 그럴싸한 경험을 했다는 감각만 남기고 그럴싸한 사진만 남기는 취지인지 생각하지 않고, 쏟아 내야 한다. 그 노동의 에너지가 호의와 기회를 부르고, 나는 그 기회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