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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싶은오리 Feb 15. 2024

아버지의 정원

'어쩌면 괜찮은 나이'를 읽고

아버지의 정원은 늘 변화무쌍하다. 아버지의 주름살이 늘어가듯 나무며 꽃들도 함께 늘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돌 하나 들꽃 한 포기도 버릴 게 없다고 하신다.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돌 하나도 예술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린지도 모른 채 꽃과 나무들에 정성을 쏟아부으신다. 땅에 나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거름 한 줌도 자연에서 가져온 것을 사용하신다. 

꽃은 더 선명한 색을, 나뭇잎들은 윤기가 흐린다. 그러니 정원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입구에 들어서면 초록색으로 가득한 돌계단이 나온다. 그 터널을 올라가면 화려한 진분홍색 영산홍이 눈에 보인다. 돌계단 터널 위로 정자가 세워져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자연과 함께 식사를 즐긴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정원은 여러 번 모습이 변한다.


봄에는 어린아이가 마치 손을 내밀 듯 파릇파릇 새싹들이 움 틔우기 하며 봄을 만끽한다. 4월이면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저마다 나름의 색을 뽐내며 바람이 꽃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을 스쳐 가득히 지나간다.

초여름이면 나뭇잎들이 청록을 자랑하듯 생생하고 탱글탱글한 자태로 누가 더 깊은 색을 가졌는지 내기하는 모습이다. 여름에 잎들의 색은 더 풍성해지고 매실도 수확을 앞두고 있다. 나무도 그렇고 삶의 과정을 자연의 순리대로 다음의 봄을 기약하고 있는 듯하다.

가을에는 무화과나무 열매가 잘 익어가고, 나뭇잎들은 더욱 노래지고 시들해진다. 하지만 인생도 한 줄기 강인 것처럼 변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늘 하던 대로 변화와 사라짐을 받아들이다 보면 다시 싱그러운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면 노년의 겨울처럼 잎들은 힘이라곤 없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다. 헤세의 말처럼 육신의 덧없음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깨닫는다. 안타깝기도 하고 다시 피어날 잎들을 상상해 보곤 한다.


다시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나무도 꽃도 삶의 과정을 살아가듯 자연의 소중함과 더불어 시간의 정성이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래나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현재의 삶을 가리지 않도록 지금 그리고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겠다. 


시든 나뭇잎


꽃들은 저마다 열매를 맺고 싶어 한다.

아침은 언제나 저녁이 되고 싶어 한다.

지상에 영원한 것은 변화와 도피뿐

가장 아름다운 여름도

언제 가는 가을이 되고 시들해진다.

나뭇잎이여, 바람이 너를 떼어내려고 하면,

꼭 붙잡고 조용히 인내하라

유희를 계속하고 저항하지 말며

조용히 일이 진행되도록 그대로 두어라

너의 꼭지를 따내는 바람이

너를 집까지 날려 보내도록 그대로 두어라


[어쩌면 괜찮은 나이,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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