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차풀테펙 공원 여행, 다섯 번째 날
1. 지난 일정이 빡빡했으니 오늘은 여유롭게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테오티우아칸 투어로 기진맥진해진 바람에 8시까지 쭉 잤고, 어제 사온 육개장으로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 11시쯤 느즈막히 차풀테펙 공원으로 향했다.
2. 미국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멕시코에는 차풀테펙 공원이 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이 공원에는 온갖 역사 유적지와 국립 인류학 박물관, 차풀테펙 성 등의 랜드마크가 있다.
3. 우리는 오늘 차풀테펙 동물원과 차풀테펙 성만 가기로 했다. 구글맵에서는 보라색 메트로 버스를 타라고 떴는데, 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서 일단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그 어떤 안내 방송도 없이 10분 정도 정차하더라. 그러나 우리만 불안해하고 다른 사람들은 익숙한 듯 기다리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인가보다.
4. 차풀테펙 공원 역에서 내리니 보라색 버스가 보여서 탔다. 멕시코는 매 정류장에 매번 정차하지 않고, 내릴 사람이 알아서 일어나거나 기사님께 말해야 내릴 수 있다. I 들은 살아남기 어려운 멕시코... 역 이름을 알려주는 안내방송도 당연히 없고, 앞문을 활짝 열고 달렸다. 중간에 정류장이 아닌데도 사람을 태우기도 했다. 우리는 매번 정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라 내릴 곳을 지나칠 뻔했지만, 급하게 내려달라고 하니 역을 지나고 나서도 정차해서 내려주긴 했다.
5. 토요일이라 그런지 동물원에는 가족 단위의 입장객이 많았다. 입장권은 무료인데 규모가 크니까 멕시코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동양인은 우리 뿐. 무려 6번의 사진 요청을 받았고 이제는 신기함보다 짜증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는 누가 접근하기만 해도 'Lo siento'하고 빠른 걸음으로 갔다. (그런데 아기들이 부탁하면... 찍어줄 수밖에 없었다. 가족끼리 주말 나들이 나왔는데 거절하는건 좀...) 하... 멕시코는 우리나라보다 LGBTQ+에 대한 인식은 좋은 것 같았는데, '동양인이라서' 사진 찍고 싶어 하는건 인종차별이라는 인식이 없는걸까?솔직히 사진 찍어 달라는 부탁 때문에 동물원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6. 동물이 굉장히 다양하고 많았는데 그에 비해 관리가 좀 열악한 것 같았다. 백조가 머무르는 공간의 물이 거의 말라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새들도 몸집에 비해 작은 새장에 갇혀있었다. 나름 멸종위기종을 많이 보유한 명성있는 동물원인데… 이걸 보호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다.
7. 동물원을 다 구경한 후 나오니 회전목마가 있었다! 안 타고 지나갈 수 없어서 탔다ㅎㅎ 그리고 차풀테펙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열차를 탔다. 에버랜드의 사파리 투어 열차처럼 생겼는데, 차풀테펙 공원의 주요 장소를 정류장 삼아 돌아다닌다. 정류장에서 한 15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가 탈 수 있는 열차가 오더라. 열차가 오면 그 때 표를 사고 타면 된다.
8. 열차를 타고 차풀테펙 성에 내린 우리는 성에 입장할 수 있는 표를 사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고산지대인 멕시코에서 또 언덕을 오르니 비행기 탄 것처럼 귀가 약간 먹먹했다. 20분 정도 오르니 성이 보였다.
9. 차풀테펙 성 앞에는 경찰들이 표를 받고 짐 검사를 하고 있었다. 셀카봉, 우산 같은 물체는 보관해야 한다. 내부에는 왕족의 초상화와 그들이 사용한 물건들, 그리고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모여있었다. 그러나 미술관보다는 '성'에 가깝기 때문에, 내부보다는 외부가 더욱 멋있었다. 정원을 잠시 산책하니 로판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10. 다시 언덕을 내려온 후 기진맥진해진 우리는 우버를 타고 zona rosa로 향했다. 샌들을 신고 예상치 못한 등산을 해서 진이 쏙 빠졌다. 우리는 검증된 맛집 'La casa de toño'에서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푸딩이 굉장히 크리미하고 맛있었다.
11. 멕시코의 수돗물은 석회수다. 게다가 우리가 머무르는 호텔은 싼 대신에 낡아서 수도관 상태가 좋지 않다. 덕분에 피부가 빨갛게 일어나고 간지러워서 오늘은 생수로 세수를 했다. 샤워기 필터를 낄 수 없는 구조라 아쉬웠다. 잠자리가 중요한 분이라면 잘 관리된 4성급 이상의 호텔을 가길 바란다.
12. 멕시코 스타벅스에는 'Chocolate Mexicana'라는 메뉴가 있다. 한번 먹어봐야지!
13. 여유롭게 다니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2만보 이상을 걸었다. 이제 웬만한 멕시코 문화에는 익숙해진 것 같으니, 내일은 정말 아무 일정 없이 현지인처럼 한번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멕시코의 일요일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