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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Aug 26. 2023

스물하나, 미국에서 살아보겠습니다.

토종 한국인의 미국살이

우물 벽 부수기


"한국이 너무 좁은 것 같아."


그렇게 내뱉은 말에 사실 그다지 깊은 고찰은 없었습니다. 그저 저는 제가 항상 우물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을 뿐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는 막연히 이게 세상의 전부라 믿고 살았습니다. 다들 다니는 학원을 다녔고 중간고사를 잘 보면 기분이 좋았고 기말고사를 망치면 인생이 망한 것 같았죠. 공부를 곧잘 하던 중학생. 그 시절 저의 정체성은 '공부 잘하는 애'였습니다. 전 인정욕이 강한 아이였고 그 방법이 공부였던 거죠.


공부에 뜻이 있는 대부분의 중학생이 그러하듯 저도 특목고에 진학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애'라는 얄팍한 정체성을 간직한 채로요. 그리고 전 제가 가지고 있던 미약한 세계관과 말랑한 믿음이 완전히 뒤흔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선, 저는 '공부 잘하는 애'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진학한 문과 특목고에는 여기저기 전교 1등과 전교회장이 널려있었고, 해외에서 몇 년씩 살다 온 친구들도 흔했습니다. 학구열이 그렇게 높지 않은 동네에서 전교권에 몇 번 이름 올린 정도는 절대 잘하는 축이 아니었습니다. 친척들이나 어머니 친구 분들께 "영어 잘한다" 소리를 들었던 게 전부였던 저는 정말 도저히 이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죠.


문제는 제 정체성이 '공부 잘하는 애'였다는 겁니다. 내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이미지가 망가지니 오갈 데 없어진 저는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됩니다. 새로 정체성을 성립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특히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않는 나'를 인정하는 것은 정말 자존심 상했죠. 이해가 안 되는 공부를 잡고 있기에도 힘들어서 외면을 택했습니다. 성적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고 자기혐오도 생겼습니다.


그때 눈에 보였던 건 친구들이었습니다. 한국인은 당연히 한국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저는, 버클리, 예일, 도쿄대, 스탠퍼드 등을 희망하는 친구들을 보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왜 그동안 한국만 보고 살았지? 나의 공부는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수학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게 전부였는데. 우울과 자기혐오에 처박힌 고개를 드니 친구들의 모습이 더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던 친구는 직접 영어로 몇십 페이지의 게임 기획서를 작성해 게임 회사에 이메일을 보냈고, 코딩을 취미로 해보던 친구는 학교의 모든 정보를 담은 앱을 개발했고, 틈만 나면 나무위키를 정독하던 친구는 종로의 역사적 장소를 전부 조사해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비로소 저를 둘러싸던 우물이 한 겹 부서진 느낌이었습니다.




그치만 우물은 여러 개


내가 속한 집단을 제대로 마주하자 드디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앎을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공부했고, 그렇게 성적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죠. 미디어와 영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 동아리를 창설하고 각종 툴을 독학하며 진학하고 싶은 학과를 탐색했습니다. 그리고 희망하던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은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학번이었기에 학교는 1년이 지나고서야 가볼 수 있었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절대 기회가 오지 않는 혹독한 곳이었습니다. 이때 느꼈습니다. '내가 안주하는 이 우물은 사실 여러 개의 겹으로 이루어졌고, 인생은 그 벽을 하나하나 깨부수는 과정이다. 그리고 벽은 누군가 깨 주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두드리고 부숴야 하는 것이며,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어두운 우물 속에 갇혀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학교 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각종 대외활동과 공모전에 참여했고, 거기서 만난 좋은 인연들과 또 다른 활동에 도전해 보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전 여기서 갈증을 느낍니다.


한국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


특별히 불만이 있진 않았습니다. 저는 김치와 라면을 좋아하는 평범한 한국인이었고, 사람이 지나치게 많고 건물이 밀집해 숨 막힌다는 서울도 저에겐 익숙한 집이었어요. 친구들과 한강에서 치맥을 하고 인생네컷을 찍은 후 밤늦게 헤어지는 하루하루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다만, 무언가 자꾸 놓치고 있는 기분.


한 번뿐인 인생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누리고 싶다는 생각.


익숙한 내 안전지대(comfort zone)를 벗어나 '불편한 상황'에 놓이고 싶다는 갈망.


그래서 저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평생 한국에서 배운 한국식 영어와, 단 한 번도 부모님 품을 벗어나지 않았던 덜 여물은 정신으로.





내가 얻어가고 싶은 것들은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는 말을 전하자,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너의 목적은 뭐야? 누군가는 휴식이고, 누군가는 여행이고, 또 누군가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가잖아. 너는 어떤 게 가장 기대 돼?"


조금 고민이 되긴 하더군요. 저는 여행도 다니고 싶고, 학점 신경 안 쓰고 휴식도 취하고 싶고,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한국을 떠나는 거예요.


같은 언어를 쓰고 비슷한 피부색을 지닌 익숙한 사람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집과 어릴 때부터 사용한 물건들이 놓인 내 방을 벗어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탐험하는 것.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즐기며 삶을 누려보려 합니다.


겪은 것보다 겪을 것이 훨씬 많은, 아직 스물 하나. 미국에서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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