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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Oct 14. 2021

한양도성과 사람들, 돌레길 정지혜 대표님을 만나다

"한양도성은, 존재의 이유입니다"

종로구 혜화마을은 언덕이 많다. 굴곡진 그 지형에 맞춰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낮은 건물들이 있다. 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돌레길 협동조합 센터가 나온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영화를 보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취식이 가능한 공간도 있고, 테라스에는 장을 담가 둔 항아리도 있었다. 곳곳에서 돌레길 여행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형과 어우러진 혜화 마을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1층의 커다란 창문 너머는 돌벽이 있었다. 그 벽을 허물거나 가리지 않고, 자연에 맞춰 함께 존재하는 쪽을 택하신 것이다. 비가 내리던 날, 우리는 돌레길 정지혜 대표님을 만났다.


Q1. 시작 전에, 왜 이 협동조합 이름이 ‘돌레길’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돌레길은 말 그대로 ‘같이 돌아보자’는 의미입니다. ‘둘레길’은 오름이나 지방에서 많이 쓰는 단어잖아요. 그런데 ‘둘레길’이라는건 왠지 혼자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돌레길’이라고 하면 마치 화자가 “같이 돌아볼래?”라고 하는 것 같아서, 이런 이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둘레길’이라고 하면 검색이 위에 올 수가 없어요(웃음).  그래서 접근성의 측면에서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죠. 그래서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돌레지기’라고 불러요. 그냥 ‘해설사’ 이렇게 안하고, “안녕하세요 저는 돌레지기 000입니다”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Q2. 둘레길 협동조합은 어떤 단체이며, 선생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돌레길 협동조합은 이 혜화명륜성곽마을의 주민 분들과, 성균관 대학교 학생들이 함께 조합을 이루어서 만든 ‘마을여행협동조합’입니다. 저희는 여행사입니다. 마을 여행 뿐만 아니라 기념품 소매, 출판, 디자인 같은 분야에서 영역을 넓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여행 사업에 집중을 하고 있어요.


저는 대표 정지혜입니다. 처음부터 대표인건 아니고, 초기 대표가 사정이 생겨서 자리를 넘겨받게 되었어요. 저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의 주민은 아니지만, 주민 분들과 활동을 오래했습니다. 2014년 겨울부터 이 마을과 성곽 마을 재생 사업을 함께했고, 거의 준주민이 되었어요. 또 제가 성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박사 수료까지 완료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성균관대학교에도 적을 가지고 있는거죠. 그래서 양쪽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기획이나 운영 지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기 돌레길 협동조합이 처음부터 마을 여행사를 만들 수 있었던건 아닙니다. 자문계획을 하면서 이런 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그 때 당시에 주민분들이 마을의 자원과 이야기를 찾는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주민 공동체 공모사업에 지원해서 ‘혜화동 유쾌한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마을 이야기를 발굴한 책도 만들고 지도도 만들고… 사전에 이런 마을 여행사가 생길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지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걸 하나의 사업으로 발전시켜서 해설을 하고 탐방객을 받는 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파트너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균관대학교 창업자원단의 ‘캠퍼스 타운 사업’에 신청하여, 지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곽마을 탐방 해설사 양성 교육을 진행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고민하게 되었죠. 이런 활동을 하며 정책 연계 사회적 기업과 육성 사업에 지원을 하고, 운이 좋게 선발되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돌레길’이 탄생했습니다.


Q3. 다른 협동조합들과 다르게 하나의 사업이 탄생한거네요.


그렇죠. 그냥 공동체적인 활동으로 할수도 있지만, 이렇게 된다면 공동체 구성원들의 책임감에 대한 문제와 조합 자체의 지속성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돌레길’처럼 하나의 사업 체계로 운영이 된다면,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주고 책임감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정식적인 형태를 갖춘거죠.


Q4. 앞서 어느정도 답변이 된 것 같은데요, 한양도성과 관련된 수많은 일들 중 돌레길 협동조합이 ‘탐방해설’을 시작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포인트만 말씀을 드리자면, ‘탐방해설’이라는게 성곽마을의 가치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치공유 활동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건 ‘일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을의 자원, 좋은 것들, 이야기를 하며 화자와 청자 모두 가치공유가 가능한거죠. 성곽마을이 굉장히 많은데, 이 마을들을 재개발 지역이나 달동네로만 보는 시선에 의해 평가절하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곳이 아주 좋은 도심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마을의 특수성과 저층 주거지로서의 가치 및 유지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게 탐방 해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5. 탐방 해설 교육을 진행할 때 ‘한양도성’뿐만 아니라 ‘마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한양도성 주변을 탐방한다고 하면 주변의 유적지를 으레 떠올리곤 하는데, ‘마을’에 초점을 맞추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한양도성이 성곽 마을이 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반대로도 가능하죠, 도성이 없으면 우리가 성곽마을이 아니니까요. (웃음) 다른 나라의 성곽 유산들을 보면 한양도성 같은 곳이 별로 없어요. 이렇게 주변에 주민들이 거주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곳이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성곽마을이 한양도성의 의미를 고취시켜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은 잠정 유산이지만, 이후 세계 문화유산이 된다면 이를 옆에서 지켜주고 보존할 수 있는건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리고 성곽마을 자체에도 굉장히 매력이 많아요. 한양도성에 대한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에 반해 주변 마을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습니다. 그게 안타까웠어요. 성곽마을은 마을 별로 이야기가 다 다르고,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는 공간입니다. 도성이 변치 않는 유산이라면, 그 주위를 둘러싼 마을은 변하는 유산인거죠. 지형에 맞춰 자연스럽게 얹혀있는 성곽과, 그에 맞춰 마을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의 매력이 있어요. 계절 따라 변화하는 모습과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공동체들, 축제들, 여러 시대의 집들… 이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주변과 연결해서 봤을 때 한양도성의 가치가 훨씬 올라가니까, 한양도성 보고, 마을도 보고, 도심도 보면 일석삼조 아니겠어요?

Q6. 탐방해설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해설을 듣기 위해 모일텐데, 혹시 이용자층에 특기할만한 점이 있을까요?


코로나 4단계로 인해 운영이 조금 어려워졌지만,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진행할 생각입니다. 저희는 ‘성균관 유생들의 하루’와 ‘느린 마을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성균관 유생들의 하루’는 유생들의 스토리를 담은, 성균관이라는 우리 마을의 특성을 살린 상품입니다. 체험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되어있고요, 그래서 어린이, 청소년, 외국인이 주 타켓층입니다. 이 외에도 청년이나, 캠퍼스에 추억이 있는 분들, 그리고 어르신 분들도 많이 좋아하세요. 유생복을 입고 유생이 배웠다고 하는 여섯가지 예절을 배우는 과정인데요, 서예나 승마 같은 예절을 게임으로 바꿔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타켓에 따라 이런 체험이 좀 다르게 운영되는데, 어르신들이 이런 활동에 참여하시는 경우에는 아호 같은걸 만들어보는 하기도 했어요. 오래 전부터 성균관과 공생하는 반촌을 소개하고, 우리 마을의 역사와 현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느린 마을 여행’ 같은 경우에는 혜화동의 이야깃거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생활자처럼 지내며 여유있는 여행을 하고 가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죠. 예술가들의 집을 방문해보고, 혜화동 시장공간 같은 곳을 둘러보는 등 마을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의 끝자락에서 남기고 싶은 기억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 하며 마무리하는 상품입니다. 돌레길은 우리 마을만의 특성과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단순히 도성만 휙 걷고 가면 이 마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이런 여행을 통해 마을도 느끼고 도성도 느끼고 가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성곽마을들도 이런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요. 전체 성곽마을이 모이는 주민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고, ‘성곽마을 주민 한마당’이라는 축제도 하며 탐방 주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탐방을 하며 다른 마을도 여행하고, 각각의 매력을 느낄 수 있죠. 이런 정체성을 최대한 잘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죠.


Q7. 탐방해설과 관련된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해설보다는 전체적인 관리에 집중하는 편이라, 해설사 분들과 하는 인터뷰에서 더 좋은 답변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음, 저는 아이들과 함께하면 항상 좋은 것 같아요. 너무 귀엽잖아요. 투호를 하는데 자꾸 못 넣어서 계속 거리를 당겨주고, 당겨주고… (웃음) 그리고 어르신분들과 함께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성곽마을 주민 한마당’을 하는 시기였는데, 활동하시는 분들이 정말 어르신이셨거든요. 함께 유생 체험을 하는데 그걸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계속 사진 찍어달라 그러시고… 체험 마무리를 하면서 졸업증처럼 교지를 써드렸어요. 그걸 받으시고 엄청 기뻐하시더라고요. 못 다 이룬 학업에 대한 기억을 바꿔드린 것 같아서, 그거 자체가 좋더라고요. 사실, 탐방은 오시는 분들의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매번 한두 장면씩은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Q8. 혜화-낙산 구간은 한양도성 중에서도 접근성이 높은 편이라 젊은 사람들이 특히 많이 찾는 구간 같습니다. 특히 낙산공원에서 성곽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들이 SNS에 자주 올라오잖아요. 한양도성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최근에 인기를 끌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이게 되게 어려운 질문이었는데. 거창하지 않은 것부터 말씀드리면, 아까 말씀드린 그런 매력 때문인 것 같아요. 바로 내려오면 DDP가 있고, 동대문 시장이 있고, 을지로 먹거리부터 유명한 핫스팟이 주변에 있잖아요. 그런 접근성이 한양도성을 찾게 하는 매력 중 하나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친구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냐고 생각을 했을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양도성은 아름답잖아요. 석조의 재질이 야간의 조명을 받았을 때의 그 아름다움, 멀리 안가도 서울 안에서 볼 수 있으니 찾게 되는 것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도성은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멋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편안함과 든든함을 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한양도성이 뭐가 그리 좋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유구한 세월을 버텨낸 그 돌들 자체가 나에게 안정감을 주거든요. 젊은 세대들도 마음 한구석에 이런 걸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9.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한양도성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특정 위치여도 좋고, ‘어디에서 바라보는 어떤 뷰’로 설명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아, 이것도 되게 어려웠어요. 좋은 곳이 너무 많거든요! 구간 마다 좋아하는 장소도 있고, 그 매력이 다 달라서 어려웠던 것 같아요. 낙산구간에서는 안쪽을 따라서 걷다가 흥인지문 성곽공원 있는 곳까지 와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스름할 때 내려오면, DDP와 흥인지문, 성곽길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거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도성과 마을의 조화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최첨단 건물과 사대문, 도시와 성곽이 보이는데, ‘진짜 서울은 희한한 도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마을에서는 이루재에서 앞문까지 접근하는 뒷길을 좋아합니다. 그 곳이 원래는 주민들만 다니는 길이었는데, 그 사이로 가다보면 남산 타워와 롯데타워가 한 눈에 보입니다. 모든 곳을 다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며,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길이죠.


Q10. 선생님께 한양도성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한양도성은, 존재의 이유죠. 도성이 있기에 성곽 마을이 있는 것이니, 서로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존재라고 할까요. 우리 마을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소중한 유산이자, 저에게는 위안을 주는 그런 장소입니다.

한양도성은 굴곡진 지형에 맞춰 쌓아 올린 성이다. 한양도성 주변의 성곽마을 또한 대부분 저층 주택으로, 그 아름다운 지형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양도성은 지금까지도 바로 곁에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특별한 문화 유산이다. 성곽마을이 한양도성 없이는 ‘성곽’마을이 아니듯, 한양도성도 성곽마을 없이는 그 가치를 온전하게 지키지 못한다. 결국 문화재는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이 보존해 나가는 것이다. 단순히 문화재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 한양도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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