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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Sep 24. 2021

한양도성과 사람들, 정선아 한국사 선생님을 만나다

"반가움이 앎이 되는 과정, 그걸 안내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국도성은 서울국제고등학교 출신의 친구들이 모인 팀이다. 서울국제고등학교는 한양도성 바로 옆에 위치한 학교이며, 우리가 매일 아침 기숙사에서 나와 한양도성을 산책하던 곳이기도 하다. 정선아 선생님께서는 EBS 한국사 및 동아시아사 강의를 진행하고 계시며, 현재 서울국제고등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신다. 우리는 작년에 선생님께 수업을 들으며, ‘마을 속 유적지 찾기’ 등의 활동을 경험하였다. 우리는 이를 통해 주변에 있는 유적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의미있는 인터뷰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대면 인터뷰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서면 인터뷰로 진행되었으나,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넘치도록 느낄 수 있었다.


Q1. 오랜시간 동안 EBS에서 역사 강의를 해오시며 문화재에 대한 가치, 그리고 보존의 필요성 또한 느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양도성을 비롯한 우리나라에 문화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인터뷰를 하고 있는 여러분이 졸업한, 그리고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 학교가 위치한 곳은 정말 문화재로 뒤덮혀 있는 지역이거든요. 조선시대뿐 아니라 개항기, 일제강점기, 현대사까지 말이죠. 우리는 그곳을 매일 지나다니고 있지만, 사실 고개만 돌리면 보이던 그 버스 정류장 자리가 여운형 선생이 피살터였구나, 학교 앞 내리막 길에 있는 그 집이 숙종 때 환국을 배우며 그토록 나오던 송시열 집이구나, 친일파 000의 집이라고 으리번쩍하던 그 집이 원래는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쳐 국외로 이주한 그 선생님의 집이었다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죠. 이런 식으로 문화재를 바라보지 않고, ‘무슨 왕 몇 년에 만들어진 무슨 양식의 무슨 건물’로 시작하는 문화재는 내 마음에 담아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죽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문화재이기 때문에, 여러분 개인의 삶과 문화재의 연결고리를 좀 만들어 한번은 유의미하게 돌아보게 하는 거죠. 나와 무관하지 않은 발자취라는 걸 우리가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Q2. 설국도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양도성은 태조, 세종, 그리고 숙종 당시 개축과 수축을 거쳐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각 시대에 따른 돌의 모양과 축성 방식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양도성은 오랜 시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요, 한양도성 인근의 서울국제고에서 근무하시며 소개하고 싶은 한양도성만의 가치나 특징을 소개해주세요.


A. 한양도성의 매력에 대해서… 설국도성 팀이 세기 별로 한양도성이 어떤 식으로 달라지는지 다 알 거 같고, 또 소개를 잘 해줄 것 같아서 그 얘기를 더 하지는 않을게요. 서울국제고는 3학년 1학기 체육이나 창체 시간에 학생들을 데리고 한양도성을 한번씩 다녀오더라구요. 우리반 학생들이 한양도성에서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보내왔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한양도성은 굉장히 가파른 구간도 있고, 사실 전부 다 돌아보는게 쉽지 않아요. 하지만 언제 만든 개축, 수축 다 몰라도 되니 어느 구간, 어느 지점에 소중한 자들과 친구, 애인, 혹은 혼자... 꼭 한번쯤은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서울국제고등학교 11기 학생들 중에 졸업하고 한양도성을 쭉 다녀본 친구가 두 명 정도 있더라고요. 이처럼 한양도성의 매력을 한번 느끼게 되면 다른 구간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도성과 궁궐 등 다양한 곳으로 그 관심이 확장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3. 교과서를 집필하시고,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시고, EBS에서 온라인 강사로 활동하시며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중 한양도성, 혹은 그 주변 유적들에 얽힌 인상적인 사건이나 경험이 있을까요?


A. 작년(2020년)의 경우는 기숙사에서 종종 산책 정도로 올라갔던 한양도성을 졸업하고나서 한참 뒤 다시 걸어봤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혹은 졸업하고 나서 우리동네에 알고 보니 현대사 000인물이 머물렀던 집이 있더라... 이런 연락이 기억에 남습니다. 역사란 알게 되면 보이는 것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후 보이는 것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될 때? 그 때의 느낌이 인상 깊네요.


Q4. 저희는 작년에 선생님께 수업을 들으며 ‘마을 속 유적지 찾기’라는 활동을 했습니다. 이는 많은 역사가 살아있는 종로구의 특성을 반영해,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던 비석이나 가옥 등의 역사적 흔적을 발견해서 인증사진을 찍어 선생님께 보내면 간식을 받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주말에 기숙사를 벗어나 집으로 향하며 각자의 동네에서 발견한 역사의 흔적을 찍기도 하였죠.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의미를 설명해주세요.


A. 세번째 질문과 연결되는 대답일 것 같네요. 제가 서울국제고 11기에게 ‘내 마을의 유적지 찾기’라는 수행평가를 제시한 이유는 학생들의 동네와 마을, 주변이 다 달랐기 때문이었어요. 다 비슷한 동네에서 오는 학생들이 아닌 전국구에서 온 학생들이다 보니 나, 나와 주변의 역사가 다양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3년을 함께 살았지만, 전주에서 온 친구, 경주에서 온 친구… 그 친구가 살아온 동네와 나의 동네를 서로 소개하며 우리 마을, 내 주변의 역사에 대해 서로 나누면 어떨까 했어요.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동네가 다 비슷하다 보니, 조선후기 풍속화에 착안을 해서 “우리의 일상 속 풍속화 이벤트”를 했어요. 풍속화가 그 당시 씨름, 서당도, 대장간, 단오날 풍경을 그대로 담았듯, 우리 고3의 일상,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을 역사의 기록으로 담아보자는 취지로 다른 학교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입니다. 우리의 현재도 미래에는 역사의 한 페이지일 수 있으니까요. 일상 속에서 역사를 접할 수 있게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 사진은 ‘나와 우리의 풍속화’ 이벤트를 했던 학교에서 친구들이 찍어보낸 자료입니다. 어느 날 학생들이 이런 사진을 몇 십장이나 보내주더라고요, 어쩌다 후문이 닫힌 날이었는데 하교하는 학생들이 정문까지 돌아가지 않고 죄다 이렇게 갔다는 코멘트와 함께 말이죠.

이런 일상의 기록들이 이 친구들에게는 고등학교 때 추억과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진행을 했었습니다. 서울국제고등학교는 전국구 학생들이 오다 보니 나의 역사, 내 주변의 역사로 좀 방식을 바꿔봤어요.


저는 EBS 강의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EBS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면 전국 동아시아사 선택한 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수강을 합니다. 그 친구들에게 SNS로 연락이 오는데, 그 많은 친구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긴 솔직히 쉽지 않아요. 그런데 그 내용에 자신을 수식하는 딱 한두마디 더 넣어주면 진짜 기억이 나요. 제가 그렇게 부탁하거든요. 제일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앞에 넣어주거나 아니면 자신의 학교나 혹은 지역에 대해 수식해주면 내가 기억하는데 진짜 도움이 된다고 말하죠. 예를 들면 “선생님 전 춘향이와 몽룡이로 유명한 지역 남원의 어느 학교 다니는 ○○예요.” “선생님 분당 제자들 많으셔서 헷갈리시죠. 천당 밑에 분당, 분당 00고 잔나비보다 유명해질 000입니다.” “선생님, 전 첨성대 바로 앞에 있는 00학교 000예요.” “우리 동네는 딱히 뭐가 유명한게 없어서 유적지도 없고 이거 뭔... 그런데요. 저희 집 창문에서 동해바다가 보여요. 절도 하나 있네요.” 이런 짧은 문장이요. 그게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Q5.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영상자료를 보여주시거나, 설화나 이야기를 섞어 설명해주시는 등 학생들이 역사를 좀 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 수 있게 어떤 활동을 추진하시고,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야외로 데리고 나가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코로나19로 쉽지 않지만, 올해는 서울국제고 부설인문영재원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정동길 답사를 다녀왔어요. 한번 가본 곳, 한번 들어본 사람을 수업 시간에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거든요. 반대로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나가서 보게 되면 그 또한 기억에 오래 남고요. 그 반가움이 앎이 되는 과정, 그걸 안내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6. 설국도성이 활동을 하며, 서울 내에 위치한 경복궁이나 숭례문과 같은 문화재에 비해 한양도성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또한 ‘마을 속 유적지 찾기’를 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며 관심을 가지게 된 경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들을 학생들이 어떤 방향으로 인식하길 바라는지 알려주세요.


A. 제가 방향은 설정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심을 갖도록 안내하는 역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산에 갈 때 세르파가 필요한 경우가 있잖아요. 저로 인해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후 스스로 그 관심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다 보면, 자신의 적성과 관심분야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뻗어나갈 것 같아요. 아주 꽤 오래전부터 사용되는 문구지만 이만한 게 없어요. “아는 만큼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에 보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죠.


Q7.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양도성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가 되기도,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가 되기도, 모임의 순성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정선아 선생님에게 한양도성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A. 몇 가지가 떠오르네요. 먼저, 우리 동네, 우리집을 지켜주는 울타리 같은 존재입니다. 국제고 학생들에게는 우리를 지켜주는 곳이겠죠. 그리고 또한 한바퀴 꼭 돌고 싶은 곳이기도 하고, 나 역시 산책, 데이트 하는 곳이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작정하고 가야하는 곳이 아니라, 내 일상의 공간과 맞닿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선아 선생님의 문체는 마치 선생님의 수업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학생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따뜻한 스승님이자, 역사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훌륭한 교육자임을 알 수 있었다. 미래를 이끌 아이들이 역사의 소중함을 실감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선박의 키와 같은 분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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