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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Sep 27. 2021

한양도성과 사람들, 최순우 옛집 큐레이터를 만나다

"옛집이라는 이름처럼 말랑말랑한 공간"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마을답게 성북동은 서울의 다른 동네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북악산 어귀에 난 좁은 골목 사이로 한옥과 현대식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이야말로 한국적인 풍경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물 하나하나에 깊은 역사가 담겨있는 성북동에서도 최순우 옛집만큼 풍부한 이야기와 예술성을 가진 곳은 찾기 쉽지 않다. 이 집의 옛주인이셨던 최순우 씨가 국립중앙박물관의 관장으로 지내시며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예술의 부흥을 위해 힘쓰셨다는 사실은 이 집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를 수긍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최순우 옛집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곳이 시민의 손으로 문화재를 지키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첫 성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희 설국도성 팀은 온전히 시민의 힘으로 문화재를 지켜낸 사례라는 점에 주목하여 최순우 옛집 측과 문화재의 보호와 활용에 대해 이야기할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질문의 양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송지영 사무국장님께서는 본인의 경험을 아낌없이 풀어주시며 매 질문마다 뜻깊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다음의 내용은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으로, 실제 인터뷰와는 조금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Q1. 요즘 우리 전통과 같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요소들이 국내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는 것 같아요. 최순우 옛집이 그러한 맥락에서 지닌 특징이 있을까요?


최순우 옛집은 근대 문화유산입니다. 사실 그동안 대중적으로 근대 문화유산의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1930년대에 지어진 근대유산이라는 점에서 최순우 옛집에서 ‘전통적 맥락’은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순우 옛집이 지닌 가치는 ‘최순우’라는 인물이 살던 자취가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점에서 옵니다. 집주인의 성격을 반영하듯 집 곳곳에서는 조선시대 선비처럼 조촐하고 소박한 멋이 드러납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서 전통을 연구하는 동시에 현대미술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한 분답게 당대 문화적인 맥락이 집안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이러한 근대 문화유산이 서울에 많이 남아있지 않으며, 특히 이곳이 전통적인 가치와 현시대의 보존의식이 결합되어 시민 문화유산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2. 최순우 옛집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시민의 손으로 살린 사례입니다. 지금도 전국의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최순우 옛집의 보존 과정에서 배울 만한 점들이 있을까요?


처음에 중요한 것은 ‘추진력’과 ‘구심점’입니다. 최순우 옛집이 처음 시민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때와 같은 시기에, 원서동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첫 서양화가이셨던 고희동 씨의 한옥 자택이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에 미술계와 지역 주민들로부터 보존 요구가 있었으며 결국 서울시에서 이를 매입했습니다. 그러나 고희동의 한옥 자택은 오랜 시간 적절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2012년에 내셔널 트러스트 측에서 고희동 씨의 유족 분과 만나 이를 활용하기 시작하며 현재는 종로구립미술관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문화재를 ‘활용’하는 것이 지켜내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지만 있다고 끝이 아니라, 적절한 예산과 활용방안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순우 옛집’이 좋은 사례이기는 하지만 다른 문화재에 적용하기에는 조금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가 지닌 가치와 이를 지켜냈을 때 품고 있던 마음가짐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오래된 건물을 카페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켜 활발하게 활용하는 좋은 사례들이 많은데, 이를 오랜시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각계의 역할이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Q3. 최순우 옛집이 다른 문화유산들에 비해 ‘시민문화유산 1호’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아무래도 방문객의 구성이 다른 문화유산들과 조금 다를 것 같은데, 혹시 방문객들의 특징이 있을까요?


오히려 ‘시민’ 유산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유산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목적이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다른 문화유산보다도 생활 가까이에 있는 장소이다 보니 동네에 사는 어린 친구가 태어나고 커가는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숙하고 거창한 문화재가 아니라 생활 가까이의 장소로 남아 후손들과 공유하는 것이 ‘최순우 옛집’의 목표인데, 그러한 목표에 맞게 지인과 동행하는 반복관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명절 때가 되면 4~50대 분들이 가족을 데리고 오셔서 자신도 옛날에 이런 집에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 분들이 결혼해서 아이와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아주시기도 합니다. 최순우 옛집의 방문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곳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4. 최순우 옛집은 특별전 개최, 다양한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음악이 꽃 피는 한옥 등 다양 한 문화예술행사들이 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떠한 행사가 열리는지, 또한 가장 인상깊었던 행사는 무엇이었는지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순우 옛집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고 개최되고 있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음악회, 최순우 선생님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 최순우 옛집의 식물을 테마로 한 행사… 1년에 5번 정도 시민축제를 여는데, 이 때는 정말 시민분들께서 재능기부를 해주셔서 행사를 풍부하게 만들어주십니다. 행사를 열 때는 정원의 식물과 같이 ‘최순우 옛집’의 콘텐츠를 활용하고, ‘시민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또한 저희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예술인분들과의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상깊었던 사례로는 한 예술인 팀이 저희 집에 찾아오는 길고양이를 바탕으로 게임을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지금까지 진행했던 모든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인상깊습니다. 하지만 ‘행사’와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사와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최순우 선생님께서 쌓아오신 역사를 지켜나가고 알리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곳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만들어온 역사가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5.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이곳이 ‘시민’ 문화유산이라는 점도 있지만, 최순우 선생님의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다양한 예술인들을 도와주셨고, 지금은 저희가 그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문화재를 많이 ‘활용’할수록 문화재를 ‘보존’하기는 더 힘들어질 것 같은데, 이러한 마찰은 어떻게 해결하고 계신가요?” 문화재를 ‘보존’할 것인지, ‘활용’할 것인지는 판단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보존’이 우선이었다면, 요즈음은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궁궐에서도 야간 개장, 음식 체험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활용’ 방침이 위험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기에 서로의 배려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저희의 경우에는 나머지 내부 공간은 모두 개방하면서도 사랑방 안쪽은 막아서 양측이 불편할 상황을 사전에 막고 있습니다.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겠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지고 관리자들의 인식도 이에 맞춰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최순우 옛집이 ‘집’이기 때문에 저희가 ‘활용’에 적극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오히려 더 빨리 망가집니다. 겨울에는 너무 춥기도 하고, 집과 나무들도 잠시 쉬게 하자는 의미에서 휴관을 하지만, 나머지 기간에는 집에 계속해서 ‘살아있도록’ 자주 관리하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보존’과 ‘활용’은 결코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문화유산과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은 상충된다고 생각하시지 않을 겁니다.


Q6. 최순우 옛집은 서울에서도 문화유산이 풍부한 지역 중 하나인 성북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양도성 등 주변의 문화유산과 연계되는 프로그램들이 있을까요?


사실 한양도성과 관련된 활동은 많이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순우 옛집은 오랜시간 시민문화유산으로 자리하면서 성북구의 다양한 문화유산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2009년부터 성북구청에서 성북구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을 조사하는 책을 총 6권 출판했는데, 이 때 저희가 도움을 드렸습니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자취를 찾는 활동에서도 성북구에서 시작해 돈암동과 정릉동으로 확장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북구의 문화자원을 새롭게 발굴하기도 했고, 답사코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성북동 야행이라는 행사도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 기간에는 밤에도 최순우 옛집을 개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건너편에 위치한 자수박물관이나 선잠박물관 등을 서로서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북구의 경우 주민모임이 활발한 편인데, 주민분들과 함께 운동회를 하기도 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킹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Q7.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소개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내셔널 트러스트의 모토는 ‘시민이 함께 누리고 시민이 같이 지키자’, ‘미래세대를 위한 100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채 사라진 유산도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까지도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재단은 2004년 최순우 옛집을 개관하면서 발족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유산’ 보호는 환경부 관할이며 ‘문화유산’ 보호는 문화재청 관할이기 때문에 저희 재단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같은 사단법인 안에서 보호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저희 재단은 ‘문화유산’ 보호에 초점을 맞추어 최순우 옛집 이외에도 ‘도래마을 옛집’을 매입하고 ‘권진규 아뜰리에’를 기증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직접’ 보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컨설팅이나 전시를 하거나, 위탁운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윤국영 선생님의 집을 서울시가 매입했을 때 저희가 소장품을 정리하고 전시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 공공한옥을 저희가 컨설팅부터 위탁운영하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최순우 옛집’과 같이 ‘역사인물 가옥박물관’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활동하며 ‘장옥진 가옥’, ‘심우장’, ‘한무숙 기념관’ 등과도 교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8. 문화유산은 국가의 관리를 받는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시민문화유산 1 호로 등재되어 있는 최순우 옛집처럼 시민문화유산으로 관리되는 문화유산들은 관리, 지원, 운영 측면에서 다른 문화유산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왜 나랏돈을 받지 않고, 직접 힘들게 하냐고 묻는 분들이 계세요. 사실 지정문화재는 종류가 다양해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방법도 각기 다릅니다. 등록문화재의 경우, 소유자의 의지가 보존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유자나 관리단체가 관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순우 옛집’도 등록문화재이기 때문에 보수가 필요할 때 경중과 긴급도를 따져서 ‘보수 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지난 번에 ‘권진규 아뜰리에’의 천장이 떨어지려 해서, 긴급 보수지원을 신청했는데 탈락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다행히 네이버 해피빈으로 모금을 받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긴 했습니다. 저희 재단의 경우 기본적으로 후원금을 통해 운영해왔는데, 최근에는 이를 모금으로 바꾸려는 추세입니다.

Q9.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역사문화보존 활동중에서도 특히, 역사 인물의 삶인 담긴 역사가옥과 전통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고있는데요, 최순우 가옥뿐만 아니라 현재 시민문화유산으로 2호 도래마을 옛집과, 3호 권진규 아틀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시민들의 관심과 함께 보존해야 할 또다른 역사가옥과 전통마을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부천 엽곡동의 주택단지 개발 부지 내에 있는 오래된 한옥에 사시는 분께서 연락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한옥 보존에 대해서 부천시 측에도 의견을 냈지만, 결국 이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한옥은 조립식이라 이전하는 것이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집이라는 것이 장소도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최순우 선생님이 사시던 이곳 성북동도 다양한 문화예술인이 거주했던 것이죠.


더군다나 요즘은 문화재의 존재로 인해 주택단지의 가치가 올라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많이 아쉽습니다. 울산시에서도 오래된 한옥을 지키고 싶어하시는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개발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가구만 보존하기는 어렵다는 점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생각보다 전국에 집성촌의 한옥과 같은 오래된 역사 자산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성북구 같은 경우에는 다행히 그러한 자산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데요, 그럼에도 모든 문화재가 지켜진 것은 아닙니다.


가령 박경리 선생님이 '토지'를 처음 집필한 집은 현 소유주의 반대로 보존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이러한 문화유산의 경우, 소유자분들의 사유재산이자 생활터전이기 때문에 보존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역으로, 보존하겠다고 말하면 실제 주택의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대를 부르시는 분도 계십니다. 저희가 앞서 말씀드린 사례처럼 싼 가격에 집을 파시거나 기증해주시는 경우는 사실 원래 사시던 분들의 후손이 아닌 이상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그분들께는 '문화재'보다 '본인의 주거지'라는 인식이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처럼 문화재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해나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전국에 수많은 문화재가 개발과 함께 사라지고 있지만, 반대로 의외의 장소에 의외의 문화재가 남아있기도 합니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Q10. 보존에 여러 애로사항이 있는 것 같은데, 최순우 옛집이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렇게 보존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희 활동에는 키맨의 힘이 크셨던 것 같아요. 저희 키맨은 이화여대 교수이자 첫 국립중앙박물관 여성관장이셨던 김홍남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분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예술과장으로 지내셨을 때 맺은 여러 인연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최순우 선생님의 집이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십시일반 모금하는 것으로는 사실 많이 힘듭니다. 이 경우에는 키맨의 힘이 중요하고, 김홍남 선생님의 역할이 크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최순우 옛집을 거쳐간 60여명의 자원봉사자분들의 힘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Q11. 선생님께 최순우 옛집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습니다.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저는 시민단체 활동가를 할 생각이 아니었고, 학예사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일을 하면서 여러 고마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무실이자 직장이라는 일상적인 장소임에도 문화에 관심 있어서,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다양한 분들이 찾아주시고 있고, 그러한 기운이 모인 집이라고 생각해요.


Q12. 이름에 고택이나 가옥 대신 '옛집'이 들어가는 것이 특이한 것 같아요.


공식 명칭은 고택일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이름을 정한 분들께서는 옛집이라고 하셨습니다. 확실하지 않 지만 가옥이 일본식 한자라고 해요. 최순우 선생님이 일본어 교육을 받은 세대이면서도 그렇게 식민지 시절에 일본어 교육을 받고 유학을 가신 분들 중에서 최순우 선생님만 거의 유일하게 우리말을 쓸 줄 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말인 '옛집'이 최순우 선생님의 인생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입말이 많이 살아났으면 한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새는 가옥을 붙이는 것 같지만... 또한, 코로나 아닐때는 뒷뜰에서 직원들끼리 부침개도 부쳐먹는 등, '옛집'이라는 이름처럼 말랑말랑한 공간이 되어 왔습니다. 한양도성이 단순한 문화재를 넘어서 주민들의 산책로가 된 것처럼 말이죠.


Q13. 그렇다면, 선생님께 한양도성은 어떤 의미이신가요?


한양도성은 밥 먹은 뒤, '산책이라도 해야지' 하는 곳입니다. 한편으로는 숙정문을 갈 때 올라가고 또 자주 보는데도, 오히려 가까이 있어서 잘 안 가게 되는 그런 곳 같기도 해요.

소중한 유산을 보존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최순우 옛집 큐레이터 님과 함께한 인터뷰는,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것들의 가치와 우리의 역할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보존하겠다는 의지 뿐 아니라, 이를 활용하고 그 의미를 알리는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설국도성은 우리의 운치와 분위기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주변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역사에 관심을 가져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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