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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대곰돌이 Jul 09. 2022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

EP6. 쿠스코 탈출 & 그리고 미국 

Write & Photo by 거대 곰돌이


쿠스코 생활 거의 마지막 라면 3종 파티. 나 포함 직원이 3명이었다. 최후의 만찬.

여자 친구를 만나고 칠레에서 돌아온 뒤, 다시 쿠스코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날짜는 2월 초였고, 한국의 여행 성수기는 어느 정도 꺾이긴 해서, 12월 중순에서 1월처럼 정말 폭발적으로 사람들이 방문하진 않았다. 그래도 제법 많은 손님들이 계속 다녀갔고, 며칠 간의 공백기 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서류 작업 등으로 정리를 시작하며 다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중요한 것은 폐업에 대한 회사의 결정이었고, 복귀 후에 좀 더 강력하게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결과, 폐업에 대한 나와 회사의 의견이 어느 정도 일치를 봤다. 그렇게 호스텔을 '정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폐업 준비이다.


폐업이라고 하면 최대한 남아있는 업장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것을 뽑아내고 정리하는 게 수순인데, 회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처음부터 바쁘게 일처리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숙소의 기물 전체와 영업에 대한 권리금 같은 느낌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길 기대했던 회사는 여러 루트로 호스텔을 통째로 정리할 방법을 찾았다. 그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일이 생기면 빠르게 마무리를 할 수 있게 조금씩 정리정돈을 할 뿐이었다.

당시의 한국의 신규확진자 평균 하루 10명, 전세계 확진자 평균 2200여명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날짜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쿠스코로 돌아와서 어느 정도 지난 시점에서, 회사는 미지근하던 폐업 준비에 대한 입장을 '속전속결'로 변경했다. 비로소 시작된 '코로나' 때문이었다. 코로나의 위험성에 대한 이슈는 한국에서 더 빨리 퍼졌고, 회사는 중남미 여행을 핵심 여행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여행사였기에, 순식간에 출발 예정인 여행의 취소가 되는 것을 직접 겪기 시작했을 터라, 체감은 훨씬 더 빨랐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바빠졌지만, 사실 쿠스코에서는 그 바쁨이 당시까지도 체감이 되진 않았다. 현지에 있더라도 한국의 뉴스는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한국에서 출국한 개별 손님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인터넷 뉴스로 보는 한국의 상황이 현지의 느낌과는 달라서 큰 감흥은 없었다. 숙소에 한해서 보면, 이미 남미로 나와서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쿠스코를 지나는 손님이 많았기 때문에 '이미 나와있는 손님'이라서 예약을 취소하는 인원이 거의 없는 편이었고, 좀 더 손쉬운 현지의 상황을 말해보자면, 당시까지만 해도 쿠스코에서는 어느 누구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았다.


어찌 됐든 영업은 2월 안에 완전히 종료를 하기로 하고, 3월 이후의 예약자에게 연락을 하면서 예약을 취소하는 것부터 본격적인 폐업 업무가 시작이 됐다. 건물주와 관련 업무로 복잡한 다툼도 있었고, 이불이며, 침대 프레임 등 팔 수 있는 것들은 헐값에 팔더라도 최대한 빨리 다 내다 파는 방식으로 최대한 정리를 했다. 회사가 기대하던 권리금 같은 건 더 이상 없었다. 기한 안에 다 판매하고 완벽하게 철수를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내 사무실. 주방 옆 테이블.

폐업 관련해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폐업 준비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식자재 처리였다. 숙소는 아침 조식으로 시리얼과 우유, 계란 프라이 같은 간단한 핫푸드, 빵 등을 컨티넨탈 조식으로 제공했었고, 빨리 상하는 걸 제외하면 한 번 갈 때 많이 사서 쟁여놓고 쓰는 편이었다. 식자재가 굉장히 많이 남아서 마지막 폐업까지 함께 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 현지 직원에게 남은 식재료를 그냥 다 줬다. 우유랑 시리얼, 과자 같은 거만 생각해도 4 식구가 아침식사로만 먹어도 거의 한 달은 넘게 먹을 양이었다. 그걸 넘길 때도 그냥 아까운 물건의 처리이지, 코로나에 대한 심각한 마음 자체가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폐업으로 직업을 잃은 직원에게 그 무엇보다 훌륭한 퇴직금의 일부가 되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당시에 페루는 결국 도시 별로 이동 자체를 봉쇄하고 집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게 했었기 때문이다.


함께 마지막까지 고생했던 부 매니저의 일도 기억이 많이 남는데, 쿠스코에 오자마자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숙소가 문을 닫게 되었는데, 역시 코로나에 대한 체감이 없던 부 매니저 역시 여행 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결정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4~5일 정도 뉴욕 여행을 하고, 포르투갈로 넘어가서 현지의 한인숙소의 스텝으로 일을 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포르투갈의 일자리는 잡았고, 항공편을 최대한 저렴하게 예약해서 뉴욕을 경유해서 유럽으로 갔는데, 결국 그 친구도 미국만 짧게 여행하고 포르투갈에서 며칠 동안 여행한 뒤에, 한국으로 쫓기듯 귀국하게 되었다.


개인 인스타그램 캡처라서 화질이 떨어집니다. 리마에서 미국으로 떠나던 날.

코로나에 대한 체감이 적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코로나는 신경 쓰지 않고 쿠스코를 떠난 후의 여행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는 호주 &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있었고, 나는 쿠스코에 있었고, 둘 다 현지에서 그 어떤 코로나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낄 수 없었고, 중요한 것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쿠스코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한국으로 들어가서 정리를 좀 한 뒤에 다시 여행을 나올지, 아니면 어딘가로 바로 이동해서 같이 여행을 할지, 폐업을 준비하면서 그런 계획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나는 날짜를 바꿀 수 있는 미국의 귀국 편 항공권을 이미 갖고 있었고, 한국을 들렀다가 나오면 또 일정이 길게 늘어질게 뻔하니, 여자 친구도 아예 미국으로 와서 미국 여행을 같이 하고 귀국을 하는 방향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각자 한국으로 돌아가서 어딘가를 왕복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항공권 비용을 아껴서 그걸 여행경비에 보태는 게 훨씬 더 저렴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긴 고민 없이 같이 미국을 여행할 계획을 세웠다.


나도 최대한 빠르게 쿠스코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출국하고 싶었지만, 페루를 떠나는 날짜에 임박해서 숙소 내의 가장 큰 기물이 판매되어 나가게 되었고, 결국은 미국행 항공편을 타야 하는 당일날까지 쿠스코에서 관련된 일을 정리하고 리마행 항공편을 탔다. 그리고 연이어 새벽 비행기로 미국행 항공편까지 무사히 탑승했다. 리마 공항에서도 여전히 코로나에 대한 심각성은 그때까지는 느낄 수 없었다. 무난한 출국이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발생한 일. 한국행 항공편 취소.

무사히 미국에는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바로 취소가 되었다. 미국은 그때도 아직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기 전이고, 미국 자체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거나 하는 현지인들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국가에서 방역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고 그에 따른 조치였던 것이다.


2년 넘게 코로나 시대를 겪은 뒤인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미 내륙에서 확진자 발생이 시작되었다면 손쓸 단계는 넘어선 상황이었겠지만, 아무튼 국경을 최전선에서 막아야 하는 항공사 입장에서는 방역에 대한 정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이때쯤이 신천지로 인한 한국의 1차 대유행 이후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점 이후였을 것이고, 한국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던 전 세계의 국가 중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거의 최상위권 국가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에 따른 조치로 발 빠르게 한국발 항공편을 막았을 것이다. 다만, 댈러스 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AA항공이 취항이 중단된 상태였고, 그때 시점까지는 아직 다른 많은 항공편이 미국의 각 지역의 공항으로 입국되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 여자 친구의 취소된 항공노선

내 항공편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고, 여자 친구의 항공편도 함께 문제가 생겼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끝이 날 예정이었다. 여행이 모두 끝이 난 뒤에 나는 델러스로 가서 한국으로 가고, 그녀는 하와이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떠나는 노선이었다. 그녀가 미국으로 들어올 당시에 조회했던 가장 저렴한 귀국 편이었다. 난 회사에서 마련해줬던 티켓이라서 귀국 편이 있었던 경우였고, 그녀에게 같은 항공편은 너무 고가의 노선이었다. 따로 귀국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경비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렇게 각자의 노선으로 귀국을 할 예정이었는데, 그녀의 귀국 노선도 나를 미국에서 만나기 전후의 시간쯤에 취소되었다. 내 귀국 편이 먼저 취소되었는지, 그녀의 귀국 편이 먼저 취소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녀의 경우는 노선이 하와이, 즉 '섬'을 경유하는 노선이었고, 방역에 취약한 섬의 우선적인 항공노선 차단 조치였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서 다시 만났지만, 우리는 모두 귀국 편을 잃은 상태로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LA에서 머물렀던 호텔 힐튼 체커스

어찌 됐던지 칠레에서 헤어진 지 한 달여만에 다시 미국에서 만날 수 있었고, 이제는 같이 미국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지만, 나도 여행사 직원이고, 그녀도 그에 준한 경험이 있는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고, 우리의 결론은 간단했다.


'여행이나 잘 하자. 어찌 됐든 항공편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 EP6 FIN -


안녕하세요.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이 브런치의 시리즈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는 코로나로 2020년 3월 미국에서 입국한 이후, 다시 해외로 떠날 예정인 2022년 12월 여행 글을 위한 인트로 성격의 글입니다. 본격적인 여행 글은 여행 출발이 임박해지는 시점에 본격화될 예정이고, 그 이전에 연재되는 글들은 제목처럼 파이어족으로 새롭게 살아보려고 시도 중인 블로거 거대 곰돌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생업 블로거로의 도전을 시도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준 과거의 많은 여행 이야기들과 코로나 시절 이어간 국내여행은 지난 2년여 동안 제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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