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km 뉴질랜드 로드트립. EP4
글 & 사진,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 & 여행 블로거 거대곰돌이
뉴질랜드에 입국해서 처음 여행했던 오클랜드를 떠나, 자차와 함께 이동한 첫 목적지는 북섬의 북단에 있는 ‘파이히아’라는 도시이다. ‘베이 오브 아일랜드’라고 부르는 뉴질랜드의 유명한 휴양지역 내에 있는 대표 도시 중 하나이고, 오클랜드에서 230여 km 정도 떨어져 있는 지역이다.
파이히아로 떠난 날짜는 사실 계획보다 많이 지체되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떠나기 전 대략 열흘치까지 나오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결과, 파이히아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비가 내릴 예정이었고, 계획한 숙박기간 내내 비가 올 예정이었다. 원래 계획대로 숙박을 한다면 정말 숙소 안에서 비구경만 하고 파이히아 여행을 끝낼 것 같아서, 어차피 똑같이 비가 오는 거라면 파이히아보다는 오클랜드가 훨씬 생활 인프라가 좋으니 더 있자,라고 계획을 변경하고, 오클랜드에서의 숙박을 3박 정도 늘렸다. 그렇게 여행일정을 변경하고 오클랜드에서 비를 좀 더 맞고 난 뒤에 파이히아로 출발했는데, 떠나는 날도 일기예보에서 한치의 틀림도 없이 파이히아 가는 길은 흐렸고, 거의 다 도착했을 때는 계속 비가 오고 있었다.
파이히아로 가는 길은 날씨도 안 좋아서 운전 자체가 참 조심스러웠는데, 생각보다 가는 길도 너무 구불구불해서 더 신경이 쓰였던 구간이었다. 무엇보다 운전석이 한국과 정 반대인 도로를 처음 달리는 가운데, 새 차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렇게 필수적이었던 차의 적응기를 거치면서 계속 북으로 향했다. 중간쯤에 있었던 한 도시에서 휴식 타임으로 생필품도 살 겸 잠시 정차했는데, 그런 시간 포함하더라도 3시간 30여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었던 거리를 거의 5시간 걸려서 갔다. 그만큼 어려웠던 첫 운전이었다.
체크인 후 배정받은 객실을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객실은 너무 좁았다. 2개의 벙커침대가 있고 싱글 침대가 1개 있는 5인실이었는데, 1층 자리가 아예 없어서 숙박하는 내내 2층에서 지냈다. 숙소를 배정받고 객실을 확인한 뒤, 혹시 돈 더 내고 트윈룸이나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다른 객실로 변경이 가능한지 물어봤는데, 최근 며칠 동안 계속 비가 와서 숙소에 눌러앉은 여행객이 많아서 체크인 날짜 기준으로 2~3일 정도는 전 객실이 모두 만실이라고 안내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그 객실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고, 파이히아에서는 내내 불편한 숙소 생활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 숙소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가성비'였다. 나와 여자친구 둘 다 호스텔에서 지내는 거에 불편한 사람은 아니었고, 애초에 우리가 만난 것도 내가 페루에서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뉴질랜드 여행 이후에도 계속 지속 가능한 여행을 꿈꿨던 터라 경비는 최대한 아껴야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 있었고, 쓸데없이 숙소에 과한 비용을 투자하는 걸 계속 경계했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었다. 오클랜드에서 떠난 후 첫 숙소도 그렇게 결정된 숙소였다.
여담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예약했던 호스텔 중에서 아마 가장 저렴했던 호스텔은 아니었을 텐데, 전체 숙소 중에서는 가장 컨디션이 나빴던 호스텔이었다. 파이히아의 숙소를 예약할 당시, 예를 들어 파이히아에서 둘이 숙박하는데 하루에 5~60달러 정도면 해결이 됐다고 하면, 이 호스텔 다음으로 파이히아에서 저렴한 숙소가 1박에 130달러, 이런 식이었다. 어쩔 수 없이 호스텔을 선택해야만 했다. 내 여행 경험 속에 있는 모든 호스텔 중에 1박에 만원, 5000원 하는 중남미의 정말 허름한 호스텔을 제외하면 그동안 지내봤던 호스텔들과 비교해서도 너무 시설이 열악했고, 그래도 혼자 여행을 했다면 어떻게든 참고 지냈을 텐데, 여행을 혼자 하는 게 아니었기에 파이히아의 숙소를 계기로 숙소 예약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됐다.
전체 여행을 돌이켜 봤을 때, 뉴질랜드 로드트립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단연 ‘주차’였다.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지냈던 모텔과 블레넘의 홀리데이 파크를 제외하면 객실당 차 1대를 주차할 수 있는 규모의 주차장을 갖고 있는 숙소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에어비앤비도 객실 대비해서 100% 주차를 제공하지 못하는 숙소들이 있을 정도였다.
파이히아의 호스텔도 주차공간이 비교적 많은 편이긴 하지만 모든 객실을 다 커버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숙소 체크인 전후로 마련된 주차장을 선점하지 못해서 대로변에 주차를 해야 했는데, 대로변 주차도 그냥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안 됐고, 주차라인이 있는 장소에 해야만 했다. 그 라인에 주차를 하더라도 그냥 방심할 순 없었는데, 일과 시간에는 정해진 시간만큼만 주차를 할 수 있었고, 일과 시간이 끝나야 밤새 주차를 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숙소 앞 도로변은 120분까지 주차를 할 수 있는데 한 블록 옆으로 가면 180분이고, 반대쪽 블록으로 가면 60분이고, 그런 식으로 무언가 통일되지 않은 규칙들이 있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천천히 올라오느라 숙소 도착시간도 제법 늦은 편이었고, 그래서 숙소 내부와 바로 앞에는 주차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체크인하는 사이에 여자친구는 주변을 돌면서 주차할 공간을 찾았고, 대략 2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날 바로 일어났다. 체크아웃 시간쯤 되자 숙소 내부에 주차할 공간이 생겼고, 그래서 우리는 차를 끌고 오려고 주차를 해놓은 곳으로 갔다. 차 키를 열심히 돌렸지만,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비도 추적추적 계속 오고 있는 상황, 그렇게 우리의 차는 단지 230km를 운전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나와 여자친구 모두 순식간에 백지가 되었다. '차를 잘못 산건가?', '사기당한 건가?' 등,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일단 이전 차주였던 카센터의 사장님께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찾아봤다. 사장님이 추측하는 것은, 운전을 했던 날에 비가 내렸고, 뉴질랜드 도로 규정상 빗길 운전이라서 전조등을 켰을 텐데, 아마 차에서 내리면서 그런 부분을 정리하지 않고 내려서 배터리가 방전이 된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입한 차량은 2004년식 일본차량인데, 창문을 닫는 것도 수동으로 해야 할 정도로 오래된 차량이었다. 여자친구가 한국에서 운전하는 차량도 연식이 아주 최근 차량은 아니었지만, 시동을 끄면 전조등이라던지, 차량을 운행하면서 사용하던 것들이 다 자동으로 꺼지는, 요즘 도로에 다니는 차라면 당연히 탑재되어 있는 전자식 작동이 되는 차량이었다. 그래서 여자친구도 그 차에 맞는 운전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뉴질랜드에서 샀던 차량은 그런 점에서 확실한 단점을 갖고 있던 차량이었고, 우리는 차를 살 때 오직 '가격'을 중심으로 봤지, 그런 부분은 간과했던 것이다.
'점프를 뛰면 아마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을까?'라는 게 사장님과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만약, 점프를 뛰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응급서비스를 불러야 한다고 알려주셨고, 그렇게 우리는 차를 살릴 다음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보험은 들어놨으니까 차량 서비스를 불러야 하나,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일단 호스텔의 리셉션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다행히 호스텔 오너가 힘 좋은 큰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고 또한 중년의 아저씨라서 그런 일이 충분히 익숙한 분이셨고, 선뜻 차를 끌고 와서 도움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방전돼서 다른 차를 연결해서 시동을 걸 때, ‘배터리 점프를 뛴다’라는 식으로 표현을 하는데, 영어로 배터리가 방전되었다는 표현을 ‘Battery is flat'이라고 표현한다는 것도 이날 처음 배웠다. 다행히 금방 차량에 시동이 걸렸고, 적어도 5~10분 정도는 시동 걸어놔야 한다는 호스텔 오너의 추천을 더해서 불안한 우리는 대략 20분 정도를 공회전과 시운전으로 동네를 빙글빙글 돌면서 이 날의 해프닝을 마무리했다.
호스텔 오너뿐만 아니라 다른 고마운 현지분도 계셨는데, 우리가 비가 엄청 내리는 와중에 보닛을 열고 끙끙거리고 있으니까, 주차해 뒀던 곳 바로 옆에 사시는 할머니가 나오셔서 친히 말을 걸어주시고, 집에서 차량용 보조배터리 같은 걸 가져와서 도와주려고 노력을 하셨었다. 할머니는 운전을 하시고 그래서 자세히 아시겠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는 면허도 없고, 태어나서 자동차의 보닛을 처음 열어본 사람이라서 할머니의 도움을 능숙하게 캐치할 수 없었다. 할머니의 도움으로는 아쉽게 시동을 거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새삼 뉴질랜드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날 이후부터 차를 내릴 때는 무조건 차량을 전체적으로 다 훑어보는 습관이 생겼고, 여행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더 이상 차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파이히아에 온 지 2일 차의 저녁쯤 되었을 때 비로소 비가 그쳤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파이히아에서 이렇게 흐린 하늘과 함께 일주일 넘게 비가 그치지 않고 매일매일 왔던 것은 10여 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한다. 올해의 뉴질랜드 날씨는 너무나 예측 불가능한 날씨가 많았고, 그렇게 우리의 여행의 시작은 하나의 해프닝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 & 여행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내용은 70여 일간 여행한 뉴질랜드 여행기로, 좀 더 블로그스러운 여행 후기와 정보들은 블로그에서 현재도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사진과 여행후기를 보시려면 메인 블로그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뉴질랜드 여행은 2022년 12월 26일 출국, 2023년 3월 11일 호주로의 출국으로 마무리되었으며, 3월 22일 한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여행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