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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대곰돌이 Apr 19. 2023

EP5. 파이히아 - 케이프 레잉가 Cape Reing

5000km 뉴질랜드 로드트립. EP5

글 & 사진,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 & 여행 블로거 거대곰돌이


뉴질랜드 시골의 슈퍼마켓은 마트 안에 고양이가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파이히아를 떠나기 전 날, 4일 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루종일 비가 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날씨' 일기예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부분 부분 흐리거나 예상 못한 비가 내릴 수는 있었다. 그래도 강한 비와 함께 파이히아에서의 일정 절반을 날려버린 터라,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강수확률이 낮은 날씨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여행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마지막날까지 계속 날씨가 안 좋으면 당일에 상황을 보고 적당히 가볼 수 있는 곳은 가보자고 계획을 잡았었는데,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무튼, 풀린 날씨 덕분이 베이 오브 아일랜드에 온 가장 큰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파이히아에서 케이프 레잉아까지 편도 213km

베이 오브 아일랜드에 왔던 가장 큰 이유, 바로 뉴질랜드 북쪽 끝에 있는 케이프 레잉가 Cape Reinga, 한글로 다시 표현하면 '레잉가 곶'을 다녀오는 것이다. 케이프 레잉가는 뉴질랜드 북섬의 최북단에 있는 여행지로, 마오리의 신화와 함께 해평선을 배경으로 한 등대가 멋진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많은 여행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곳이다.


케이프 레잉가에 내려오는 마오리의 신화는 이렇다. 마오리가 죽으면 망자의 영혼은 이곳 케이프 레잉가로 모여들고, 이곳에서 뛰어내려 지하 세계로 내려와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들의 영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지 같은 곳이라서 의미가 깊은 곳이고, 그들의 영혼의 마지막은 이런 멋진 곳을 지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여자친구는 당연히 처음 가는 여행지이지만, 내가 케이프 레잉가에 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워킹 홀리데이로 뉴질랜드에 왔을 때 처음, 그리고 지금이 두 번째이다. 처음 갔을 때는 베이 오브 아일랜드의 한 도시에서 식당일을 했는데, 쉬는 날에 버스 일일투어로 다녀왔고, 이번엔 직접 운전해서 다녀오게 되었다.

뉴질랜드 주유소. 우리나라보다 확실히 비싼 편이었다.

목적지는 편도 200km가 넘는 거리였다. 제한 속도를 꽉꽉 채워서 운전을 할 정도로 뉴질랜드 운전이 아직 완전히 익숙하진 않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왕복 6시간보다는 더 긴 이동시간을 계산해야 했다. 가로등도 없는 뉴질랜드의 밤길을 운전이 미숙한 상태로 달릴 순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이른 아침에 파이히아에서 출발했다. 케이프 레잉가로 어느 정도 접근하면 거의 왕복 100km 이상 주유소가 없는 구간이고,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흔한 식당이나 편의점 같은 시설 자체가 없기 때문에, 파이히아를 벗어나서 지나치는 가까운 마을에서 간식거리도 사고, 주유도 하며 준비를 해야 하기도 했다.

오클랜드에서 파이히아로 올 때는 비가 계속 와서 창 밖의 풍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 길을 달리니까 비로소 방목하고 있는 양 떼들이 수도 없이 보였고, 비로소 '뉴질랜드에 왔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도 '이제야 뉴질랜드 와서 도로를 달리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뉴질랜드는 전체 인구의 5배 정도 되는 2600만 마리의 양을 키우고 있는 국가이고, 도시를 벗어나면 어딜 달리더라도 방목하고 있는 양 떼들을 만날 수 있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양고기를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고 또한 최대의 양모 수출국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2600만 마리도 많은 것 같은데, 1980년대에는 7000만 마리가 넘는 양을 키웠다고 한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길을 따라 계속 달리다 보니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또한 거대한 사구가 보였다. 꽤 긴 거리를 계속 앞만 보며 달려야 해서 지루한 일정이기도 한데, 케이프 레잉가 여행을 할 때, 이 정도까지 오면 비로소 거의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케이프 레잉가를 투어 하는 여행상품의 타이틀은 대부분 'Cape Reinga & 90 mile Beach'이다. 케이프 레잉가 하나만으로는 먼 거리를 달려야 해서 12시간이 넘는 투어임에도 꽤 심심한 투어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 투어는 다른 코스가 더 섞여있고, 멀리 보이는 사구도 버스투어로 오면 들르는 코스 중에 한 곳이다.


과거에 투어로 여행할 당시에는, 사구에서는 모래썰매를 탔었고, '90 mile Beach'라는 이름의 해변도 들러서 사진 찍을 시간을 주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의 우리는 그런 해변에 갈 생각은 없었고, 사구나 샌드보드 역시 관심 밖의 코스였기 때문에 그저 지금처럼 도착을 예상할 수 있는 멀리 있는 이정표 정도였다.

이윽고 200여 km를 달려 케이프 레잉가에 도착을 했고, 이미 차가 엄청 많아서 주차요원의 안내를 받아 겨우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주차 후 곧장 산책로에 진입할 수 있었고, 드디어 멀리 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케이프 레잉가 주차장에서 등대까지 1km가 조금 안 되는 짧은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는데, 짧지만 환상적인 주변 풍경을 즐기며 걷기에는 충분히 훌륭한 산책로였다.

뉴질랜드는 트레킹의 천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존재한다. 어딜 가도 길고 짧은 산책로에서 트레킹 코스를 안내하고 있고, 당연히 케이프 레잉가에도 그런 코스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케이프 레잉가와 연결되어 있는 트레일 중에는 특별한 코스가 있는데, 바로 'Te Araroa'라는 트레킹 코스이다. Te Araroa는 쉽게 말해서 뉴질랜드 남북섬을 종단하는 트레킹 코스로 2011년에 정식으로 개장한 초장기 트레킹 코스이다. 북섬 끝에서 남섬 끝까지 직선거리는 약 1,475km인데 반해, 이 Te Araroa라는 중간중간 들르는 코스가 많아서 총 3000km에 달하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트레킹 코스는 매년 수십만 명이 걷고 있다고 하는데, 케이프 레잉가에서 출발하는 Te Araroa 완주에 도전하는 트레커도 매년 1000여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 코스의 시작점이 바로 이 케이프 레잉가이다.

등대까지 가는 길은 짧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서 등산로를 오르내리며, 산책로를 걸으며, 케이프 레잉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등대에도 많은 이들이 주변 사진을 찍으며 멋진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고, 나도 그들 사이에서 쭈볏쭈볏 인증 사진을 찍고, 주변 바다를 구경하며, 10여 년 만에 돌아온 케이프 레잉가 여행을 즐겼다.

2008~9년의 이정표

뉴질랜드의 북쪽 끝에서 세계의 주요 도시로의 거리를 표시하고 있는 이정표를 보니, 어렴풋이 처음 왔던 그때의 케이프 레잉가의 모습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차도 없었고, 케이프 레잉가를 보러 가는 투어로만 여길 올 수 있었는데, 식당일을 하고 있었고, 날씨나 현지 컨디션과 별개로 내가 갈 수 있는 날에 무조건 여행을 다녀왔어야 했기 때문에, 현지 상황이 어떤지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버스투어를 참여했었다.


그렇게 어렵게 떠난 여행이었기에, 되도록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한 여행으로 마무리했으면 좋았겠지만, 당시의 등대 옆에 있는 이정표는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파손되어 있었다. '아~ 이렇게 멀리 왔는데, 하필이면 이때 이러냐!',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정표 하나 부서진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불만이었다.


'Remind'라는 영어단어가 있다. '상기시키다'라는 정도의 뜻을 갖고 있는 단어인데, 한창 여행사를 다니던 2010년 중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관광청에서 마케팅하고 있던 여행 트렌드를 대표하는 단어였다. 'Remind Travel'이라는 여행 콘셉트였는데, 쉽게 말하면 '왔던 여행지를 다시 또 가서 보면 더 좋다. 그러니까 또 오세요'라는 식의 내용이다. 당시엔 실무자인 나는 당연히 이 콘셉트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돈이 있으면, 최대한 가보지 않은 곳을 가지, 왜 갔던 곳을 또 가지?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 대만 같은 곳도 아니고, 비행기를 10시간은 타고 와야 하는 장거리 노선에서 'Remind'라는 것은 굉장히 힘든 여행 트렌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삶은 참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여행사를 떠난 수년이 지나고서야 그런 Remind Travel을 내가 직접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여행사를 다니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여행을 그만둔 내가 직접 해보니 새삼 느낌이 또 달랐다. 이번 여행은 과거와 다르게 좋은 사람과 함께 하기 때문에 또한 새로운 느낌이겠지만, 그건 제쳐두고서라도 20대의 젊음이 한창이었을 때와 40대에 접어든 나의 마음이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좋아했던 곳을 다시 찾아오며 20대에 느꼈던 즐거움을 40대에 다시 느끼며 즐거워하는 것은 참 생소하지만, 또한 참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된다.


케이프 레잉가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즉흥적으로 케리케리 Kerikeri를 들렀다. Remind Travel의 일환이었다. 케리케리는 파이히아와 더불어 베이 오브 아일랜드의 대표 도시 중 하나이고, 파이히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인구가 1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내게는 뉴질랜드 생활에 큰 영향을 줬던 도시기도 하다.


내 워킹홀리데이 시절의 뉴질랜드 생활은 그랬다. 처음엔 2~3달 오클랜드의 어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이후 겨울에 블레넘이란 곳으로 가서 와인농사를 짓는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거기서 또 몇 달, 뉴질랜드 남섬에서는 더 일자리가 없는 시기가 되어 다시 오클랜드로 올라왔고, 거기서 다시 몇 주 구직활동을 해서 옮겨간 곳이 바로 이 케리케리였다. 이곳에서 앞서 말한 식당일을 몇 달 동안 했고, 에피소드로만 꾸며도 하나 가득 채울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결국 식당의 폐업까지 함께하고 케리케리를 떠났었다.

당시에 일하던 레스토랑. 폐업할때는 건물주가 식당을 팔아서 양식당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축물인 스톤 스토어나 레인보우 폭포 같은 케리케리의 유명한 포인트를 둘러보는 것도 중요했지만, 20대의 그때를 추억하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었다. 비록 케리케리에서 머물던 시간이 1~2시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20대의 마음으로 잠깐 돌아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쩌다 보니 베이 오브 아일랜드, 그리고 케이프 레잉가의 일일투어는 어린 시절의 나를 추억하는 과거로의 여행이 되었다.

뉴질랜드 10대 피시 앤 칩스 레스토랑이라는 JFC. 마지막 식사였다.

그렇게 베이 오브 아일랜드 여행은 마무리를 했다. 비 때문에 여행기간의 절반을 날린 아쉬운 여행이었지만, 그것도 여행이다 생각하고, 우리는 다음 여행지로 달렸다. 목적지는 해밀턴이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 & 여행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내용은 70여 일간 여행한 뉴질랜드 여행기로, 좀 더 블로그스러운 여행 후기와 정보들은 블로그에서 현재도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사진과 여행후기를 보시려면 메인 블로그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뉴질랜드 여행은 2022년 12월 26일 출국, 2023년 3월 11일 호주로의 출국으로 마무리되었으며, 3월 22일 한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여행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blog.naver.com/ragun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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