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km 뉴질랜드 로드트립. EP9-1
글 & 사진,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 & 여행 블로거 거대곰돌이
뉴질랜드에는 'Great Walks'라고 하는 산행코스가 있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트래킹코스인 이 코스는 DOC(Department of Conservation), 뉴질랜드 국가기관인 '자연보호부'가 특별관리를 하고 있다. 비정기적으로 코스의 숫자를 늘리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는 총 10개의 코스가 있다. 북섬에 3개, 남섬의 7개의 코스가 있고, 북섬의 1개 코스만 카약이나 카누 등을 통한 강을 따라 이동하며 즐기는 워터 스포츠이고, 나머지 9개의 코스는 모두 두 발로 걷는 트래킹 코스이다.
'Great Walks'에 속해 있는 북섬의 코스 중에, 가장 유명한 코스는 통가리로 노던 서킷(Tongariro Northern Circuit)이라는 코스이다. 전체 44.9km의 루프를 도는 코스로, 하루에 그 긴 코스를 다 클리어하는 코스는 아니고, 코스를 정식으로 다 돌면 3~4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코스 내에서 숙박을 해야 하는 트레킹 코스이기 때문에, 산장예약을 해야 하는데, 그 산장의 예약을 DOC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렇게 예약도 필요하고, 산에서 먹고 자며 움직여야 하니 그 준비도 필요하고, 여러모로 난이도가 높은 트래킹 코스이다.
통가리로 노선 서킷은 화산활동을 했던 국립공원 내의 산을 중심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트래킹 코스이기 때문에, 그 풍경 자체가 아름다워서 오래전부터 유명한 코스였다. 또한, 뉴질랜드 자체가 트레킹의 천국이기도 하고, 관련된 시스템이 잘 되어있기도 해서 산행에 관심 있는 이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아마 많이들 뉴질랜드에 와서 이 코스를 체험했을 것이다. 통가리로 노선서킷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통가리로 노선 서킷보다 훨씬 더 대중적으로 유명한 또 다른 Great Walks에 속해있는 코스의 경우는, 6개월에서 1년 이전에 예약을 해야 원하는 시간에 산장을 예약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항상 매진을 거듭하는 코스도 있다. 그만큼 Great Walks의 유명세는 크다.
요즘이라도 말하기엔 시간이 꽤 오래 지나긴 했지만, 아무튼 요즘 들어서는 통가리로 노던 서킷과 관련하여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바로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촬영한 아주 유명한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촬영지가 바로 통가리로 국립공원 내에 있기 때문이다.
통가리로 노던서킷은 화산활동을 한 산을 중심으로 걷는 트레킹 코스이고, 당연히 그 중심이 되는 산이 있을 텐데, 코스의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그 '산'이 한 영화 시리즈 출시 이후로 엄청 유명해졌는데, 그 영화는 바로 '반지의 제왕'이다.
영화의 기본 서사는 이렇다. 최종보스인 '사우론'을 물리치기 위해 그의 힘이 담긴 '반지'를 파괴하러 떠나는 모험이 주된 스토리인데, 반지는 아무 곳에서나 파괴할 수 없고, 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사우론의 근거지인 '모르도르'에 있는데, 그 모험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모드로르 안에 있는 '화산'이고, 극 중에서 불리는 화산의 이름이 'MT Doom'인데, 통가리로 노던 서킷의 중심이 되는 산 중에 하나인 '나우루호에 산'이 바로 그 마운트 둠이다.
영화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산에서 마그마를 뿜어낸다거나 그런 모습은 아니지만, 엄연히 활동을 하던 화산이고, 나우루호에 산의 경우는 1977년 이후로 분화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코스를 이루고 있는 또 주변의 또 다른 화산인 '통가리로 산'의 경우는 가장 최근인 2012년에 화산이 분화해서 화산재를 분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진짜 휴화산을 끼고 있는 트레킹 코스이다.
통가리로 노던서킷은 숙박을 해야 하는 코스라서 초보자가 갈 수 있는 코스는 아니다. 대신 어느 정도 기본 준비만 할 수 있다면 통가리로 노던 서킷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마운트 둠을 제대로 느끼면서 걸을 수 있는 당일치기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그 코스는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이라고 부르는 코스이다. 노던 서킷은 대략 전체 45km 정도를 4일에 걸쳐서 걷는 코스이고,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은 19.4km를 6~8시간에 걸쳐서 걷는 코스이다. 일일 트레킹이기 때문에, 따로 입산과 관련해서는 예약 등을 할 필요는 없고, 코스를 오가는 셔틀만 예약을 하면 되는 트레킹 코스이다. 뉴질랜드의 북섬에서 트레킹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도전하는 코스이고, 그래서 코스 이름 그 자체로만 두고 본다면, 어찌 보면 노던서킷보다 훨씬 더 유명한 코스일지도 모르는 게 바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이다.
이번 뉴질랜드 여행을 준비하면서 북섬에서 준비한 메인이벤트는 바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이었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여행에 있어서는 최대한 기회가 될 때 가볼 수 있는 곳은 가보려고 하는 주의라서, 북섬의 여행 계획도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에 많이 할애를 했다.
코스 자체는 하루면 끝내는 코스이기 때문에 트레킹을 하는 이들은 보통 도착해서 당일은 다음날 새벽에 출발할 준비를 하고, 그다음 날 트레킹을 다녀온 뒤에 바로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떠나 지역을 이동하는 식으로 여행하는 게 보통이다. 아침 일찍 트레킹을 출발하면 2~3시면 보통 산행을 끝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체력이 약해서 도착하는 날 도시락 등, 산행할 준비하고, 그다음 날 산행을 하고, 그다음 날은 반드시 몸이 아플 것이기 때문에 하루 쉬고, 그렇게 3박의 일정으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준비했다. 숙소는 미리미리 예약을 했어야 했기에 대충 1~2주 전에 미리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할 수 있는 베이스가 되는 마을에 숙소를 잡았고 여행을 이어가며 조금씩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야심 차게 산행을 준비했고, 한국에서 등산장비까지 불편하게 다 들고 간 여행이었지만, 통가리로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고, 또 걱정스러웠다. 트레킹은 대략 우리식으로 비교를 하면, 해발 1100미터쯤의 산 중턱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한라산을 넘는 산행이다. 쉽지 않은 코스인데, 그래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할 때는 날씨가 굉장히 중요하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으로 들어갈 때의 날씨는 너무 좋지 않았고, 예약한 3일 일정 내내 일기예보 상으로 비가 오는 상황이었다. 뉴질랜드가 과거에 비해 유독 비가 많이 왔고, 그 비는 고스란히 여행 일정에 악영향을 준 것이다. 세계의 여러 나라의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고, 비가 와도 걸을 수 있는 코스들이 있지만,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은 비가 오면 국립공원 관리소에서도 산행을 중지시킨다. 어차피 노련한 산행가라서 산을 올라도 앞에 보이는 건 없다. 안전펜스 같은 게 없는 길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어렵게 국립공원에 도착했지만, 일정은 몹시 꼬였다. 비 때문에 도착 첫째 날 아무것도 못했고, 도착 둘째 날,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비가 어느 정도 왔냐면, 숙소에서 주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야외를 대략 1~20미터 건물 밖으로 돌아서 갔어야 했는데, 그 사이에 우산을 쓰지 않으면 비에 흠뻑 젖을 만큼 비가 왔다. 일기예보 상으로 3일 차에도 비가 어느 정도 내린다고 표시가 되어 있었고, 여차하면 그냥 숙소에서 잠만 자고 지역을 떠날 수준이었다.
3일 차, 아침까지 거칠게 비가 왔는데 오전을 지나고 그림처럼 날씨가 풀렸다. 완전히 풀렸다고 하긴 좀 어렵고, 3일 만에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만약 3일 차에 미리 준비를 했더라면 트레킹을 떠났어도 됐지만, 아무런 준비가 안되어있었다. 오후쯤에 비가 그쳤기에 어차피 준비했더라도 새벽에 그냥 포기했었을 것이다.
그냥 뭐라도 해보자, 전문가에게 가서 문의라도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미적거리며 통가리로 국립공원 내의 안내센터로 향했다. 안내센터는 거점으로 잡은 내셔널 파크(마을 이름 자체가 내셔널 파크이다)에서 차로 2~30분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에 있다. 주요 일일 트레킹 출발 지점의 중심쯤에 있는 안내센터이다.
안내센터에서는 두 가지를 문의했다. 지금 당장 오늘 내로 짧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가 무엇인가, 그리고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날씨는 트레킹 하기에 어떤가, 이 두 가지였다. 여러 코스를 안내받았고, 그중 6km를 2시간 코스로 걸을 수 있는 코스가 있어서 일단 그 코스를 이 날 걷기로 했다. 코스는 '타라나키폭포' 트레일로, 중간에 멋진 폭포가 있는 코스이다.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에 대한 날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거의 '못 가겠다'라는 마음이 컸기에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다.
타라나키 폭포 코스가 참 좋았다. 길이 잘 닦여있었고, 아름다웠고, 멀리 보이는 나우루호에 산도 멋있었고, 목적지인 폭포도 너무 멋있었다. 아마, '여기 진짜 좋다'라는 그런 감흥은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걸으면 더 크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짧고 쉬운 코스를 걸으면서 여자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그랬다. 어렵게 뉴질랜드로 장기여행을 왔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를 할 수는 없다, '뭐라도 더 해보고 포기하자'
타라나키 코스를 빠져나가서 다시 안내센터로 가는 그 순간까지 짧은 몇십 분의 시간 동안, 계속 머릿속으로 일정을 조정하며 여자친구의 토론을 했다. 탄력적인 여행일정으로 다니고 있었기에 기다리라면 기다릴 순 있었지만, 뉴질랜드 여행에서 '불가항력'적인 코스가 바로 기다리고 있었기에,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맘만 먹는다면 그냥 마냥 기다릴 순 있었다. 날씨를 기다리면서 쉬고 있으면 짧은 코스들 하나씩 돌아보면서 쉬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기다릴 수 있지만, 하필이면 이 당시에 남섬으로 건너가는 페리가 연달아 고장이 나서 1~2주씩 걸쳐있는 많은 이들이 페리 예약이 취소되거나 뒤로 밀리고 있던 상황이라, 우리가 예약한 그 날짜도 제대로 탈 수 없을 시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만약 제때 못 건너면 남섬여행기간이 쓸데없이 줄어들지도 모를 순간이라서, 무조건 북섬의 마지막 목적지인 웰링턴으로는 제시간 내에 가야 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웰링턴여행'을 다 포기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너스레를 떨며 '웰링턴 별거 없다, 그냥 웰링턴을 포기하고 국립공원에서 더 머물자', 이후에 여유롭게 잡아두었던 남은 북섬 코스들을 다 정리하고 그걸 통가리로 국립공원에 다 연결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안내센터에 도착을 했다.
DOC의 직원에게 다시 자세하게 문의했다. 앞으로 일주일 사이에 날씨는 어떤지, 날씨는 또 어떻게 봐야 하는지, 갈만할지 등등, 우리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어차피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은 날씨가 수시로 바뀌니까 당일의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건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예 입산 자체가 불가할 수 있는 상황이 있으니, 그걸 중점적으로 문의를 했다. DOC의 직원의 답변은 그랬다. 내일 가던가 3~4일 더 기다렸다가 가라,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숙소에 돌아와서 숙박 연장을 확정하고, 바로 다음날 아침에 떠나는 셔틀을 예약하고, 산을 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새벽 5시 30분,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아침,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을 위한 셔틀에 탑승했고, 그렇게 우리의 10시간 트레킹은 멋진 일출과 함께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 & 여행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내용은 70여 일간 여행한 뉴질랜드 여행기로, 좀 더 블로그스러운 여행 후기와 정보들은 블로그에서 현재도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사진과 여행후기를 보시려면 메인 블로그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뉴질랜드 여행은 2022년 12월 26일 출국, 2023년 3월 11일 호주로의 출국으로 마무리되었으며, 3월 22일 한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여행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