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의 탄생》
《할배의 탄생》
최현숙 지음, 이매진, 2016
나와 너의 위치 가늠하기
《할배의 탄생》은 70대 남성 노인인 김용술과 이영식(가명), 두 사람의 구술사다. 저자 최현숙은 구술작업을 ‘위치 알기’, 즉 “세상 속 나의 ‘지금 여기’를 가늠하고, 주인공들의 ‘지금 여기’를 함께 가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서로의 위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이 당연하게 누리거나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상대방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 여기’를 가늠하려는 이유를 “진심으로 두 남자를 옹호하고 싶고, 두 사람이 세상의 주인임을 함께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만 해도 노인과 대화해 본 경험은 많지 않다. 어쩌다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보수적 정치 지향, 일방적인 대화 방식 등 몇몇 경험 때문이다. 노인의 빈곤, 소외 등 한국사회의 노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
다름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것은 너와 나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너와 나는 경험도 다르고, 설사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도 그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도 다르다. 오래 요양노동과 구술작업을 해 온 저자조차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이영식의 말에서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느낀다고 말했다. ‘할배에 대한 옹호’는 그래서 어렵다.
70대 남성 노인 김용술과 이영식의 구술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군대 이야기, 가족으로 대표되는 ‘정상적인 성 규범’에 대한 실패, 그리고 가난이다. 이들이 말하는, ‘군대가 훨씬 편해졌는데도 요즘 애들이 너무 편하게 커서 자살하는 거다’, ‘남자는 돈으로 여자를 리드해야 한다’, ‘결혼해서 자식 낳고 안 산 자신은 비정상이다’, ‘어쨌든 국익이 중요하다’ 등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멈칫하게 된다.
좌파이자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저자에게 위와 같은 발언들은 당연히 옹호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는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그 사람들의 경험과 처지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와 규범에 연관되는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무례, 보수적, 가부장 등 흔히 남성 노인에게 덧씌워진, 그래서 그들을 기피하게 하는 특성을 사회의 장 안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의 사회적 해석
개인의 잘못을 무조건 사회적인 요인 탓으로 돌려 면죄부를 준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 저자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세상 이치’라는 말로 과오를 정당화하려는 김용술의 태도에 대해 “세상에 침묵하고 공조하며 숟가락을 얹어왔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천박하다거나 (가난한 노인이) 계급을 배반하는 정치적 선택을 한다며 무지몽매하다고 낙인찍는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군사독재와 참전, 지금보다 훨씬 공고했을 가부장제 등 분명 서로는 다른 경험을 거쳐 왔다. 하지만 각자의 다른 경험들은 사회적인 장 안에서 함께 해석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해석되어야만 한다. 저자는 통렬히 지적한다. “가난하고 늙은 파월 장병의 통장 입금 내역에서든, 연예인 위문 공연에 눈물 줄줄 흘리는 새까맣게 탄 젊은 파월 장병의 가슴에서든 이영식들이 말하는 조국의 실마리 … 그 실마리를 푸는 작업 없이는, 내가 열망하다 실패했으면서도 다시 소망하는 진보 정치니 진보적 시민 운동이니 하는 것들도 이영식의 ‘조국’만큼이나 한 무더기의 허깨비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대화하는 것. 이영식이 말하는 것처럼,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상적이고 소박한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이 담고 있는 기록이 아니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이영식의 전쟁”은 이제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58세 여성이 70대 남성과 나눈 이 대화는 이제 독자에게로 이어진다. 대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책 《할배의 탄생》은 충분히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