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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욱 Aug 12. 2021

안보 논리와 여성혐오

『나는 분단국의 페미니스트입니다』

『나는 분단국의 페미니스트입니다』
수지·추재훈·영민 지음, 들녘, 2019


“당시 여성들이 겪었던 성범죄 또한 책임을 물어야할 것이나 당시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이 먼저 다뤄져야 할 일입니다.” / “여성의 성이 동원되고 착취됨은 ‘위안’ 활동이 아니라 그냥 성범죄입니다. 이는 절대로 전쟁을 수행한 것이 아닙니다.” / “여성과 민간인을 위해 총칼 들며 싸운 대다수의 군인은 생각 안하고?”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전시의 문제점과 대안 3차 토론회 <한국전쟁의 기억에서 여성의 자리를 다시 묻다> 홍보 게시물에 달린 댓글 중 몇 가지를 발췌한 것이다. 댓글의 지적으로부터 시작하자. 전쟁경험의 위계는 당연한가? 만약 당연하지 않다면, 도대체 어떤 의도로 설정된 것일까?


『나는 분단국의 페미니스트입니다』에서 수지는 위계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왜 할머니의 전쟁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까? 다음과 같은 차이는 근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구분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이와 아닌 이. 전쟁에 대한 말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전방과 후방. 지키는 자와 보호받는 자. 남자와 여자. 전쟁은 이처럼 남녀라는 젠더 간 이분법적 차이가 극대화되는 시기다.”


전방의 남성과 후방의 여성. 여기서 전방과 후방은 단순히 위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전선에서 치러지는 전투만이 전쟁이며, 그 외의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부차적이라는 가치판단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 전쟁이 전선에 국한될 때, 승리가 최우선의 목표가 된다. 승리를 위해 싸우는 남성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한국전쟁 시기 승리로만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성차별을 강화시켰다. 사실 앞서 언급한 이분법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자(혹은 남자). ‘지키는 자와 보호받는 자’라는 프레임에서 보호받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로 치부된다. 한국전쟁 당시 여성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력한 존재로 이미지화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주1).


하지만, 정말 전쟁이 그러한가? 승리지상주의 전쟁관에서 군인의 죽음은 국가적 추모의 대상이 되지만, 민간의 피해는 ‘부수적 피해’로 명명되고 여성의 ‘위안’ 활동과 같은 성착취는 필요한 것이라며 정당화된다. 피해에도 위계가 발생한다. 추재훈은 이러한 승자 지향성이 ‘분단국 남성성’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분단국 남성성을 말하려면 추재훈이 분석한 ‘승자남성’과 ‘패자남성’의 구도를 짚어야 한다.


승자남성-패자남성의 구도에서 여성은 마치 전리품이나 소유물처럼 취급되며 여성에 대한 소유 정도가 남성의 승패를 가르는 척도가 된다. 가령, 승자는 예쁜 여성을 얻고, 패자는 자신의 소유물을 승자에게 헌납하거나(성 접대), 아무 여성도 소유하지 못한다(성 경험이 없는 남성에 대한 비하).


남성(여기에서의 남성은 모든 남성이 아니라 승자-패자 구도를 승인하고 재생산하는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남성을 뜻한다)은 패자가 되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지만, 여기에 여성의 위치에 대한 고려는 없다. 여성은 패자남성의 차원보다 더 아래에 있는 소유물로만 취급된다. 이러한 남성성이 분단이라는 특정한 체제와 결합하여 분단국 남성성으로 변모한다.


남북 공통으로 분단체제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안보다. 분단체제에서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며, “전후는 또 다른 전쟁 준비를 위한 시간”이다. 전후 한국사회의 안보 논리는 동맹 강화를 위한 성 접대(기지촌 미군 ‘위안부’)을 정당화하는데 기능했다.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를 가는 상황에서 전쟁은 오로지 ‘남성’의 일이 되었다. 또한 군대 내의 강력한 위계질서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사회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이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와 영향을 미쳤다. 전쟁 시기 성 역할의 고정이 계속 유지되어온 것이다.


물론 남성 또한 피해를 입었다. 군복무의 고됨을 비롯해, 전선에서의 죽음과 전투 생존자의 외상 등은 충분히 기억되고 보상받아야 한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피해를 비롯한 전쟁 경험에는 위계가 존재했다. 위계를 부여했던, 승리지상주의 전쟁관 아래에서 남성에게만 주어진 권력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주어진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부터 여성혐오는 강화된다. 한국사회의 안보 논리와 여성혐오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글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나는 분단국의 페미니스트입니다』는 한국사회가 북한을 바라보는 방식(‘여성화’, ‘비정상화’)과 더불어 탈북 여성을 비롯한 북한 여성의 상황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주1 이임하, 「한국전쟁과 여성 : ‘용산 전쟁기념관’ 무엇을 전시해야 하나?」,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편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전시의 문제점과 대안 3차 토론회 자료집』, 2019,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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