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yellow-green dog
2024년 새해부터 하는 일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해온 배달일과 결별하고 1월부터 서울시 동물보호과 소속으로 개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됐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대하지만 또 그만큼 개들을 만나는 일이라 일의 즐거움과 기쁨이 꽤나 크며, 무엇보다
잃어버린 나의 유년시절을 자꾸 소환해 와서 묘한 설레임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일을 하고 있다.
'반려견'이란 단어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개'란 표현이 훨씬 정겹게 다가오고 친근하다.
그런 맥락에서 '견주'보다는 개주인이 더 익숙하다.
나는 중년이다. 77년 생으로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인가부터 개를 키우기 시작해 2007년 12월 19일, 나의 땡순이가 죽은 이후로 개를 키우지 않게 됐다. 숫자를 더듬어보면, 20년 조금 넘게 개와 함께한 셈이다. 그래서 개에 대한 추억과 친밀함은 꽤나 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사람'인지라 요즈음의 반려견 문화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무지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개에게 따로 사료를 먹인 적도 없고 (우리가 먹던 음식을 잘 비벼서 주었으며, 고기집에 가면 따로 고기를 싸와 특식으로 주었다), 개를 집 안에서 키운 적도 없는 세대의 사람이다.
(개를 안에 들일 때는 어미가 새끼를 낳아 아기 강아지들을 따뜻하게 잘 보살펴야 하는 한 달 정도였다. 그때는 부모님이 용인해 주셨다.)
견종도 따로 없이 똥개였다. 요즈음은 믹스견이란 세련된 표현이 있지만 그 말도 사실은 그렇게 자연스런 표현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을 보고 저분 혼혈이에요, 혼혈인이에요,라고 굳이 말하지 않듯이~
그 표현을 굳이 쓸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과거 나의 개들과의 추억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은 대신 나의 연두색 개, 이름도 짓지 않은 연두색 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개
5월에 이사가 예정돼 있다. 그 전에 지금 사는 신사동 집의 물건들을 많은 부분 정리해야 한다. 오늘 방 정리를 하다가 옷장 위에 놓여 있는 이 연두색 개(위에 사진)와 눈이 마주친다. 이쁘지 않은 인형. 귀엽거나 고급스럽지도 않고, 소재가 훌륭하지도 않은 이 개인형은 이사를 가게 되면 가져가지 않고 버릴 것이다.
그럴거면 지금 버리지, 굳이 왜 이사갈 때가 돼서 버리냐?? 음... 그럴 수는 없다.
이 친구는... 사랑받지는 못해도 내 집의 수호개이기 때문이다.
2011년 봄, 구산동에서 신사동(새절역)으로 이사를 할 때 어머니가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쓰셨다. 구산동 집은 내가 혼자 살기에는 너무 방대한 공간이라 개별 가구로 산다기 보다는 처리되지 못한 집을 지키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사온 신사동 집은 진정으로 내가 독립생활을 시작하는 의미를 주는 곳이었다. 크기도 적당했다.
그때 어머니와 같이 쇼핑을 많이 했다. 잡다한 생활용품부터 가격이 꽤 나가는 가구까지 같이 고르고 샀다. 어머니는 아들이 훌륭하게 독립생활을 하고, 작가로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것들을 사서 채워주고자 애쓰셨다. 근사한 원목 책꽂이와 옷장, 세탁기와 밥솥, 전자렌지를 모두 새로 구비해 주셨다. 늘 받기만 하는 아들로서 면목이 없었지만 대신 열심히,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더 자주하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물건 살 때마다, 집안 일 할 때마다 어머니와 아들은 잘도 싸웠다.
집을 닦고 또 닦고 냉장고를 채우고도 또 채워주시면서도 어머니는 안심이 안되셨는지 이사하고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에 이 개인형을 사가지고 내 가슴에 밀어넣으셨다.
"이게 뭐야?"
"얘하고 친하게 지내! 심심하지 않게~"
"뭐야, 유치하게 인형은~ 색깔도 이상하고. 줄려면 진짜 개를 사주던가!"
"키울 능력은 있고오~ 얘하고 친하게 지내!"
참으로 어머니다운 발상이다.
30대 중반에 아들이 외롭게 혼자 사는 게 걱정된 어머니는 진짜 개를 주지는 않으시고, 예전에 개를 너무 좋아했던 내 유년시절을 떠올리시며 개인형을 선물해 주셨다. '이 개와 함께 잘 지내라고, 이 개가 널 지켜주고, 행운과 기쁨을 줄 거라' 기원하고 싶으셨던 거다.
개는, 개인형은 전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그 마음이 시큼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워 버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디 두기가 민망해 냉장고 위에도 두었다가, 책장 위에도 두었다가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옷장 위에놓여 있다. 녀석은 위에서 나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다. 원망하는 눈빛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어머니의 의도를 떠나 가끔 보면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의미를 깊게 따지고 따져 보면 우리집의 수호신이 맞긴 맞는 거 같다.
신사동 집에서 10년 넘게 살며 나쁜 일보다 좋은 일들이 많았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망설임 없이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정다운 이야기들을 밤새도록 나누기도 했다. 홀로 있고 싶을 때 충분히 홀로 있을 수 있었다. 나만의 삶의 스타일과 정서가, 나만의 시간감각이 지금 이 집에서 만들어졌다.
새삼 어머니가 사준 이 인형을 바라보게 된다.
그간 누려온 행복과 기쁨에 이 개의 지분이 없진 않은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