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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Mar 14. 2022

바다

몰래 적는 사랑고백 2

 사는 건 바다같다. 언뜻 무한해 보이지만, 잠겨 죽지 않으려고 헉헉대며 뛰어도 밀물처럼 밀려온다. 힘에 부쳐 조금 쉬려고 하면 어느새 코끝까지 차올라 숨이 막힌다. 그렇다고 몸을 맡기고 잠겨있기엔 너무 차갑고, 전부 마셔버리기엔 너무 짜고 너무 많다.  

이런 생에서, 너는 이상하게 따뜻하고 부드럽다. 내 베개 위에 웅크리고 누워 눈을 가늘게 뜬 너를 보고 있자면 거기가 햇살 듬뿍 받은 단단한 뭍 같기도 하다. 복슬거리는 옆구리에 코를 묻으면 수확의 냄새가 난다. 차갑고 가난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함께 사는 고양이는 Y와 T, 두 마리지만 이번에는 Y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뮤지컬 '드라큘라'에는 'Loving you keeps me alive'라는 넘버가 있다. 제목과 '나를 살게 한 첫사랑'이라는 번역 가사를 들으면 언제나 Y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Y는 내가 처음으로 온전히 책임지고 사랑을 주고받은 인외존재이다. '온전히 책임졌다'는 점에서 생각하면, 앞의 '인외'라는 글자는 지워버려도 되겠다. 


 스물 한 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겠다는 조건으로 아버지를 설득해 너를 데려올 수 있었다. 당시 막 9주차였던 너는 어려서 호기심이 많았고, 금방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네가 처음으로 무릎 위에 올라와 자리잡았을 때 허벅지에 느껴진 것은 하나의 생명이었다. 겨우 15cm 자보다 조금 큰 그 몸은 따뜻하고 확실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존재를 생명과 연관지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서웠다. 너를 떠나지 않을 자신은 있었으나 네 존재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멍청하게도,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다짐을 지켰음에도 사랑을 말하는 건 빨랐다. 우리 모두 서로의 첫 '사랑해'를 기억하지 못할테다. 크게 아쉽지는 않다. 나로서는 지금 당장 한 번 더 말해주면 될 일이고,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너를 데려오고 일,이년동안은 집에서 나간지 4시간만 되면 네가 보고 싶었다. 온종일 바라볼 수도 있었지만 네가 싫어할테니 그러지 않았다. 몇달 후면 너와 함께한지 8년이 된다. 너는 이제 자라는 것도 멈추고 늙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스럽다. 나는 지금도 네가 허락한다면 온종일 너를 바라볼 수 있다. 네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살아있다. 내 이후 십여년간의 생을 틀어쥔 너에게 온전한 나만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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