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트리 아이들이 사는 스리랑카 '포투빌' 마을에는 화장실이 드물다. (운 좋으면 식당 밖에 푸세식 화장실이 있다. 당연히 전등이나 세면대는 없다.) 하물며 손 씻는 곳은 어떠랴. 그래서 우리는 스리랑카 현장에 갈 때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쌀 수 있을 때 싸고, 씻을 수 있을 때 씻자'를 철칙으로 한다.
스리랑카에서도 콜롬보 같은 대도시로 가면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사는 마을 '포투빌'에는 음식 종류가 매우 한정적이다. 게다가 우리가 포투빌로 출장 가는 시기는 주로 10월~3월.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포투빌 인근 아루감베이가 딱 비수기일 때라대부분 식당이 휴업한다. 결국 식당 3~4곳에서 한 달 동안 끼니를 해결한다.
(좌) 스리랑카의 주식, 라이스 앤 커리 / (우) 스리랑카의 '로띠(난)'와 달 커리, 삼볼(강판에 간 코코넛)
현지 주민들은 주로 집에서 쌀, 카레, 로띠(얇게 부친 밀 반죽인데 인도 요리 전문점에서 먹는 ‘난’보다 스리랑카 로띠는 더 두껍다)를 먹는데, 밥 위에 콩 커리(달 커리), 콩깍지 무침 등을 올려 ‘오른손으로 잘 비벼 먹는 게’ 포인트다. 가끔 우리가 현지 직원분들 집에 초대받거나 코인트리 학교 학부모님, 선생님들이 모여 요리해 주시는 날에는 특식이 나온다. 맛있게 삶은 달걀, 새우나 참게 볶음, 생선이다.
역시 카레는 손맛!
처음 맨손으로 카레와 밥을 먹는 방식을 접한 건 코인트리 스리랑카의 지부장 '올리스'가 콜롬보까지 마중나와 우리와 처음 만났던 날이다. 뭐가 먹고 싶냐는 말에, 당연히 ‘스리랑카 음식'이라고 답했더니 올리스는 현지인들만 가는 식당으로 우릴 안내했다. (우린 현지 음식 먹는 것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로컬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입구부터 설렜다. 일단 간판부터 알파벳따윈 없고, 메뉴판에 내가 아는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로컬 음식빠로서 이건 매우 성공적인 진행)
그런데 아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식사법이 있었다. 바로 맨손으로 밥과 카레를 먹는 것. 현지인들만 찾는 식당에 외국인이 들어오니, ‘숟가락 필요하냐’며 묻는 식당 주인분께 패기있게 '노땡큐'라고 하고, 올리스가 먹는 방법을 눈치껏 따라하며 한 술(한 손?) 뜨려는데…
야무진 손놀림으로 커리 앤 라이스 한그릇 뚝딱하는 모습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잘 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아.. 젓가락질은 서툴러도 밥 먹는데 지장 없지만 스리랑카에선 손놀림이 서툴면 밥 먹기 힘들더라고요…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밥과 카레가 야무지게 모이지 않았고, 손으로 떠서 입으로 넣는 순간 뜬 밥알의 절반 이상이 손가락에서 후두둑 새어 나갔다. 결국 올리스가 반 그릇을 뚝딱하는 사이 밥 양은 거의 줄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배고파하고 있었다.
결국 올리스에게 먹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친절한 올리스는 손으로 밥과 반찬을 긁고, 둥글게 모은 손으로 집어올린 밥과 카레를 엄지로 입 안에 밀어 넣어야 한다고 했다.
유레카!!!! 맨손으로 먹는 법을 배운 우리는 이후부터 스리랑카 밥과 카레는 한그릇씩 뚝딱 비운다. 게다가 현장에 오신 코인트리 한국인 꽃주주(후원자)님들께 우쭐대며 손으로 밥 먹는 요령을 가르쳐 드리거나 카레는 역시 손맛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진짜 한 식구가 된 것 같은 스리랑카의 밥상 공동체. 정겹고 정말 좋다❤️
스리랑카에서 현지 직원, 주민과 함께 밥 먹을 때는 정말 ‘한 식구’가 된 것 같다. 보통 돗자리를 깔고 다 같이 둘러 앉아 식사하는데, 내 앞에 놓인 빈 접시에 밥, 카레 등을 퍼와서 먹으면 된다. 다 먹은 후엔 내 앞접시를 아래에 두고 물을 부어 음식 묻는 손을 씻어 버리면 끝.
스리랑카에서의 식사는 정겹고도 효율적이다. 서로 쌀밥과 카레를 손으로 뭉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고, 씻고-먹고-씻는 과정이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이루어져 번잡스럽지 않아 좋다. (식후 손 씻는 과정을 생각하면) 그릇을 깨끗이 비울 수 있을 만큼의 음식만 내 앞접시에 담게 되는 것도 좋다.
코인트리 우라니 학교 어머님들이 직접 만들어 주신 저녁.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학교를 운영해주어 감사하다며 달걀과 새우까지 들어간 특식을 대접받았다. 참 감사하다.
그런데 이 ‘밥상 공동체’ 느낌이 물씬 나는 문화를 특정 시기에 가게 되면 즐기기 어렵다. 바로 ‘라마단’ 기간이다.
우리 스리랑카 아이들이 사는 마을은 대다수가 무슬림(힌두교, 불교, 기독교를 믿는 주민들이 서로 어울려 살지만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다)이라, 라마단 기간 중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한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정해져서 매년 다른데, 아뿔싸! 2023년 3월 말쯤 스리랑카 현장에 출장 갔을 때 라마단 기간과 딱 겹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금식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웠다. 직원들, 주민들도 평소처럼 식사를 꼭 챙기라고 한다. 하지만 체감온도 35도가 넘는 한낮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올리스와 마파스(코인트리 스리랑카 지부 사무국장), 현지 선생님과 주민들 앞에서 보란듯이 물을 마시거나 밥을 먹는 일은 당연히 꺼려졌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엔 식당도 대부분 문을 닫고 쉰다.
해가 떠 있을 때 음식을 먹는 건 물론 물조차 마시지 않는 라마단 기간. 여전히 한낮은 35도가 넘는 '땡볕 더위'였다.
한편 ‘무슬림’, ‘라마단’, ‘금식’에 대한 편협한 프레임과 달리 이슬람교의 어떤 모습은 굉장히 유연하고 합리적인데, 예를 들어 어린 아이나 임산부, 산모, 노약자, 환자나 부상자, 심지어 생리 중인 여성은 당연히 금식에서 예외고, 구호 활동을 하거나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제외된다.라마단 기간 중 탈수 현상이 올 정도로 더운 날씨에 우린 올리스, 마파스와 그늘이 전혀 없는 정글 마을을 약 3시간 정도 걸어다닌 적이 있었는데, 툭툭으로 돌아오자마자 서로 물을 챙겨주고, 올리스와 마파스가 주민들 눈에 띄지 않게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가려준 적이 있었다.
라마단 기간 중 어린 아이들은 당연히 금식에서 제외다.
왜 라마단 기간에 금식을 할까?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과 고통을 직접 느끼고, 해가 지면 가난한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베풀고 삶과 음식의 소중함을 알라는 의미라고 한다. 라마단을 처음 겪어보고, 이렇게 금식하는 이유를 알고 나서 우리는 현지 직원, 선생님, 마을 주민들의 문화를 진심으로 존중하게 되었다.
(나아가 우린 라마단 기간에 현지 직원들 밥 셔틀을 해준다. 구호 활동을 하고 일하는 중이라 해도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금식하는 라마단 기간에 직원들이 대놓고 밥을 사 먹기엔 눈치가 보일 수 있으니.. 밥 셔틀이 필수다. 다들 먹어야 힘내서 일하니까, 한국인인 우리가 밥을 사와서 안 보이는 데로 현지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같이 먹는 요상한 풍경이 펼쳐진다.)
금식을 깨는 이프타르(Iftar). 이프타르의 시작은 대추야자(dates)와 함께.
해가 지면 금식이 끝되고, 다 같이 모여 ‘이프타르(Iftar)’라는 시간을 갖는다. ‘이프타르’는 단식을 깨는(break fast) 첫 끼이자 저녁 식사를 가리키는 말인데, 가족, 이웃,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이기도 하다.
라마단 기간, 우리는 낮 동안 굶지도 않으면서 감사하게도 이프타르 때마다 초대를 받아 현지 주민들의 집에 간다. 코인트리 학교 선생님들은 마을에서도 형편이 더 어려운 빈민 가정의 우리 학교 아이들을 불러 몽키 바나나 하나, 사모사(튀김 만두) 한 조각씩이라도 꼭 먹여 보내려고 한다. 이 아름답고 정겨운 축제에 어찌 가지 않을 수 있으랴!
라마단 기간 중 스리랑카 아이들을 만나러 온 코인트리 꽃주주(후원자)님, 현지 직원(올리스, 마파스), 학교 선생님들과 이프타르 시작!
우리는 이프타르를 즐기러 현지 가정집에 찾아갈 때마다 양손에 ‘대추야자(dates)’ 한 봉지씩을 사들고 간다. 웬 대추야자냐고? 일출부터 일몰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 속에 바로 음식물이 들어가면 속이 상할 수 있어서 대추야자 세 알과 물 한 잔을 먼저 먹고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는 게 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라마단 중 금식과 이프타르는 오랜 전통답게 건강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라마단의 백미는 가족, 이웃과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배고픈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거다.
라마단의 의미도 훌륭하고, 단식을 깨는 첫 식사 '이프타르'에 가족, 이웃, 어려운 사람들과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정겹다.
무엇보다 스리랑카의 카레(라이스앤커리)는 정말이지 “Finger Lickin’ Good”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