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스리랑카 엄마들이 우리에게 요청한 한 가지
등교시간, 오늘도 가볍고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야자수 그늘이 드리워진 모래 바닥을 건너,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교실 입구에는 작은 신발들이 늘어서고, 꼬깃한 노트 위로 몽당연필이 바삐 움직인다. 백열전구 하나로 밝히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눈빛이 더욱 반짝인다.
수업이 끝날 무렵,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를 발견한 아이는 "엄마!" 하며 달려가고, 엄마의 환한 웃음소리가 더해져 교실 앞 모래 바닥은 잠시 꽃밭으로 변한다.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뒷모습은 그 시간 저녁놀의 주황빛과 어우러져 더욱 따스하다.
다만, 이토록 행복해 보이는 일상에서 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빠'다.
우리 학교가 있는 스리랑카 동남부에는 아빠가 없는 가정이 많다. 아빠가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엄마가 출산하기도 전에 아빠가 출국하기도 하는데, 카타르, 사우디 등 중동 부국에서 3D(Dirty, Dangerous, Difficult) 업에 종사하며 돈만 집으로 보낸다. 그 기간이 적어도 2~3년이다. 결국 아빠들은 아이의 유아기를 함께 하지 못 한다.
수년 뒤, 반가운 아빠가 돌아온 뒤에도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벌어온 돈은 금방 바닥난다. 작은 가게나 툭툭(삼륜차) 한 대라도 마련하지 못했다면 아빠는 새우잡이 같은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새끼손가락 만한 새우를 손으로 잡는 일이다.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익이다. 결국 아빠는 외국으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된다. 빠른 해외 취업을 위해 불법 브로커에게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빠는 다시 떠나고, 본의 아니게 또 '싱글맘'이 된 엄마만이 아이 곁에 남아 육아를 전담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를 향한 아이들의 그리움은 클 수밖에 없다. 학교에 있다 보면 '성인 남자'인 나를 유난히 따르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바짓가랑이에 찰싹 붙어 따라다니거나, 내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돈해 주는 아이의 손길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기쁨뿐만은 아니다. 이 아이도 언젠가 부모가 되면 먼 나라로 떠나거나 홀로 아이를 돌보아야 할까. 그전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이 밀려온다.
우리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했다. 학부모 회의를 열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 당장에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것이 너무나 많겠지만, 그중에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길 바랐다.
나는 엄마들이 당장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현금 지원이나 물품을 요청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지원이 가장 시급해 보이기도 했다. 한 아이는 우리가 간식으로 사 온 비스킷을 먹지 않고 가방에 넣더라. 이유를 물으니 엄마랑 같이 먹어야 한단다. 엄마에게 드리라고 하나를 더 챙겨주면 그것도 가방에 넣었다. 그 아이가 집에서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걱정이 되어 쌀 한 포대를 남몰래 그 아이의 엄마에게 전달했다. '남몰래' 말이다. 이런 집이 한두 곳뿐이랴. 온 마을에 쌀을 배급할 여력은 없었던 까닭에 다른 주민들에게는 비밀에 부친 것이다.
학교에 엄마들이 모였다. 영어에 유창하지 않은 엄마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최대한 간단한 문장으로 물었다. 그래서 나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다.
"Mothers. What do you need... for children?"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를 바라보던 엄마들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Room... more big... children study."
서툰 발음이었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다른 엄마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작은 떨림을 느꼈다. 더 넓은 교실. 엄마들은 더 많은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랐다.
현금도, 물품도 아닌 '교육'을 선택한 엄마들. 그들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뒤집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가장 잘해줄 수 있는지 엄마들은 잘 알고 있었다. 더 큰 교실, 더 나은 학습 환경, 더 많은 학생들. 그것은 오늘을 위한 걱정을 넘어선, 다음 세대를 향한 염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본 가장 밝은 희망이었다.
엄마들이 원한 '단 하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이 이야기를 한국에 와서 알리며 하나 둘 소중한 마음을 모으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더 넓어진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은, 엄마들이 그려온 미래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교실을 가득 채우는 연필 소리처럼, 이 마을의 새로운 이야기도 조금씩, 하나둘 써 내려가고 있다. 우리는 그 첫 장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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