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셨군요~ 이게 얼마 만이야.”
피부관리실에 도착하자 원장이 큰소리로 환영 인사를 한다. 반가움과 함께 왜 이제 왔냐는 원망이 담긴 목소리다.
작년 봄, 점점 짙어지는 눈가의 기미와 늘어나는 주름이 눈에 거슬리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피부관리실이었다. 평소 피부 미용에 관심 없는 스스로를 알기에 강제성을 부여해야겠다는 생각에 덜컥 10회 쿠폰을 결제했더랬다. 일단 피 같은 비상금을 털어 결제했으니 성실하게 다닐 거라는 예상을 깨고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겨우 방문했다. 마흔이 넘어가니 이젠 돈도 게으름을 이기지 못하나 보다.
그 사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원장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피부관리실에 가는 일이 점점 귀찮고 번거로워졌다. 어쩌면 그때. 스스로의 게으름을 인정하고 일찌감치 환불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발길을 끊은 지 반년이 훌쩍 지나고 나니 원장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이 계약의 끝을 보고 싶어 했다. 남은 회차는 여섯 번. 지인과 함께 써도 되냐고 문의했더니, 일단 와서 얘기해 보자고 했다. 얼굴에 팩을 바르고 누워 있는데 원장이 손을 마사지하며 본론을 꺼낸다.
쿠폰에 유효기간이 있는데 그게 지나서 남은 여섯 번을 다 인정해 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나는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원장이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쿨하게 인정했다. 그래서 두 번을 빼고 네 번만 받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를 끝내고 마음이 홀가분해진 원장은 좀 전과는 달리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얼굴의 팩을 벗겨낸다. 그리고 내 얼굴을 이쪽저쪽 꼼꼼하게 살펴보더니 진심을 담아 조언했다.
“회원님, 눈 옆에 기미는 가을에 정리하셔야겠다. 봄에는 온도가 올라가니까 체온도 올라가서 피부 시술은 안 받으시는 게 좋아요. 가을에 하세요.”
원장은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이어갔다.
“저렴하게 점 빼주는 곳들 많은데. 회원님은 피부가 예민해서 그런 곳은 안 되고요. 좀 가격대가 있는 피부과 병원에서 여러 번 나눠서 하시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많이 끊지는 마시고요. 다른 회원님은 제가 말렸는데 무턱대고 시술 10회권 끊어놓고 그거 채우느라 고생 중이세요. 10회 하면 할인해 준다고 해도 그런데 현혹되지 마시고,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피부 상태를 봐가면서 몇 회만 받으세요.”
마치 친한 지인의 상담 같은 원장의 충고에 내심 감동받고 있었다. 잠시 후, 나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며 현란하게 손가락을 튕기던 원장이 말했다.
“그런데 회원님. 혹시 10회 더 이어서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그러면 제가 남은 여섯 번도 차감 없이 다 해드릴 수 있는데.”